맹인 부부를 묘사한 무신도. 1800년대 서울
세월은 흘러 가믄장아기의 나이 십오 세. 어느 하루 비 오는 날 부부는 방에만 앉아 있자니 너무 심심해, 누구 덕에 먹고 입고 잘사느냐고, 세 딸을 차례로 불러다가 물었다. 첫째와 둘째 딸은 모두 부모님의 덕이라고 대답했다. 그러나 셋째 딸의 대답은 달랐다. “내 배꼽 밑에 있는 선의 덕으로 먹고 입고 잘삽니다.” “이런 불효막심한 자식이 어디에 있느냐? 나가거라.” 부모의 갑작스러운 노여움에 가믄장아기는 입던 의복 거둬 검은 암소에 싣고서 집을 나섰다. 그렇지만 어머니는 딸자식을 보내는 것이 못내 섭섭했다. 식은 밥에 물이라도 말아 먹고 가라며 첫째와 둘째더러 나가보라고 했다. “불쌍한 아우야, 빨리 가라. 아버지 어머니가 널 때리러 나오신다.” 두 언니의 태도에 심히 못마땅한 가믄장아기. 청지네와 용달버섯 몸으로 이들을 환생시켜버렸다. 이후 부부는 두 딸이 소식이 없자 문 밖으로 나가려다 문지방에 걸려 넘어져 장님이 되었고, 앉은 채로 먹고 입고 쓰다가 마침내는 도로 거지가 되었다.
이 고개 저 고개 넘어, 쫓겨난 가믄장아기는 깊은 산속으로 들어갔다. “부엌이라도 좋으니 하룻밤만 머물게 해주십시오.” 수수깡 기둥에 거적문을 단, 아주 허름한 초막집엔 노부부뿐이었다. “그렇게 하십시오.” 가믄장아기가 부엌에 있는데, 바깥에서 와르릉 탕탕 하는 소리가 갑자기 들려왔다. 초막집 세 아들이 마를 파서 돌아오는 소리였다. “마를 파다 배부르게 먹였더니 부모님은 계집애를 데려다 놀음놀이를 하고 있구나.” 큰아들과 작은아들은 욕설부터 내뱉었다. 그러나 막내아들은 웃으며 말했다. “이거, 우리 집에 난데없이 검은 암소랑 사람이랑 모두 들어와 있으니 어느 하늘에서 돕는 일이 아닌가?” 이번에는 세 아들이 마를 삶는데, 큰아들과 작은아들은 모가지는 부모에게 드리고 자기들은 잔등이를 먹었지만 막내아들은 그 반대로 했다. 가믄장아기가 생각해보니 쓸 만한 사람은 막내아들뿐이었다. 가믄장아기는 꽃 본 나비와 같이 막내아들을 만나 백 년 동거를 약속하고 한 방에서 잠을 잤다. “마 파던 데를 구경 갑시다.” 다음 날 가믄장아기가 막내아들에게 말했다. 그런데 막내아들이 마를 파다 자갈이라며 던져버린 건 온통 금덩이였다. 가믄장아기 부부는 순식간에 부자가 되었다.
최원오 광주교육대 국어교육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