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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슈&뷰스]처칠의 결단과 보험산업 규제개혁

입력 | 2015-10-12 03:00:00


이수창 생명보험협회 회장

제2차 세계대전이 시작된 1939년 영국 총리 윈스턴 처칠은 아주 무모하지만 창의적인 제안 하나를 받아들임으로써 연합군 승리에 결정적인 카드를 손에 쥐게 된다. 당시 27세에 불과했던 수학자 앨런 튜링이 독일군의 ‘에니그마(Enigma)’라는 난공불락의 암호체계를 깨뜨릴 기계를 만들겠다는 계획이었는데 처칠이 거금을 지원키로 해 연구에 착수했던 것이다. 오늘날 컴퓨터의 효시가 된 ‘봄브(Bombe)’라는 암호 해독기 덕분에 영국은 독일군의 암호를 풀어냈고, 덕분에 종전(終戰)을 2년 정도 앞당기고 1400만 명의 목숨을 구하는 역할을 했다고 한다. 튜링의 업적도 훌륭하지만 그런 창의적인 발상을 꿰뚫어보고 적극적으로 지원했던 처칠의 결단도 크게 와 닿는다.

얼마 전 금융위원회는 ‘보험산업 경쟁력 제고 방안’ 로드맵을 발표했다. 보험상품의 사전신고제를 폐지하고, 표준약관을 재정비하는 한편 복잡한 상품설계 기준을 대폭 완화하는 게 핵심이다. 또 타 업종이나 국제적으로 유사 사례가 없는 보험상품 가격 통제도 전면 재정비하기로 했다. 자산운용 규제도 사후적 간접적 통제로 전환하고, 외국환과 파생상품 관련 규제도 획기적으로 개편하기로 했다. 이와 함께 핀테크 시대에 부응해 보험 가입 절차를 온라인 환경에 맞춰 간소화할 방침이다.

보험업계에 몸담고 있는 필자로서는 이번 방안이 매우 시의적절한 조치라고 본다. 왜냐하면 보험업계는 현재 심각한 어려움에 처해 있고, 새로운 변화가 시급한 상황이기 때문이다. 보험업계는 현재 저금리로 인한 역마진의 수렁에서 시달리고 있으며, 국제회계기준(IFRS4) 도입이라는 폭풍에 직면해 있다. 일부 학자와 언론은 향후 5년간 45조 원의 자본 확충이 필요하고 상당수의 보험사가 퇴출될 수 있다고 경고하고 있다.

실제로 일본의 경우 2000년대 초반 저금리 상황을 겪으면서 7개 보험사가 시장에서 퇴출됐다. 이런 상황에서 낡은 규제를 선제적으로 허물고, 질적 성장의 토대를 만들겠다는 정부의 의지는 의미가 크지 않을 수 없다.

보험업계 입장에서 결코 이번 규제 개혁이 환영하기만 할 일은 아니다. 자율성과 창의성의 보장에는 결과에 대한 단호한 책임이 뒤따르기 때문에 어깨가 더 무거울 수밖에 없다.

이제는 생보업계도 스스로 변해야 한다. 경쟁시대가 된 만큼 소비자 친화적인 상품과 서비스를 위해 선의의 경쟁을 하고, 해외 투자능력 등 자산운용 성과도 개선시켜야 한다. 여전히 높은 수준인 소비자의 불만과 민원을 줄이는 것도 시급한 과제이다. 무엇보다 시스템 선진화를 통해 체질을 강화하고, 안정적인 재무건전성을 유지해 시장의 신뢰가 흔들리지 않도록 해야 할 것이다. 이와 관련해 제도 개혁 초기에 경쟁이 격화될 경우 시장의 혼선과 이로 인한 폐해도 우려되는 만큼 방안 확정 전에 대비책을 마련해야 한다는 점은 정부에 제안하고 싶다.

변화의 시대에는 한번 때를 놓치면 영영 돌이킬 수 없다. 조선 순조 때 참외 값을 더 받고 팔려는 욕심에 한양과 의주, 개성을 오가다가 참외가 썩어 팔지 못했다는 ‘송도 참외장수’와 같은 우를 범할 수는 없다. 이번 규제개혁을 선진화의 전환점으로 삼아 우리나라에서도 창의적인 역량을 가진 글로벌 보험기업이 출현하기를 기대한다.

이수창 생명보험협회 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