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사 교과서 국정화는 여권분란 해결에 지지층 결집 총선까지 계산한 다목적 카드… 국가관 통제하는 독재국가처럼 “박정희 美化” 공격에도 한풀이하듯 강행할 건가 좌편향 교과서도 문제지만 합격시킨 정부는 더 문제다
김순덕 논설실장
야당의 무기인 안심번호를 덜컥 받아와 또 배신의 정치냐, 대통령과 보수층의 의심을 샀던 김무성 대표는 “국론 통일시키는 역사 교과서를 만들어야 한다”며 당론 통일에 앞장섰다. 공천권을 놓고 다투던 친박(친박근혜) 비박(비박근혜)도 하나같이 국정화의 기수가 됐다.
경제에서 성과를 못 내는 보수정권에 실망했던 보수층도 “아들딸 국사 교과서 본 적 있느냐” “우리 아이들에게 주체사상을 가르쳐서 되겠느냐”는 데는 바짝 긴장하는 눈치다. 야당이 국정화 결사반대라며 설령 장외투쟁에 나선대도 대통령은 눈 하나 깜짝하지 않을 것이다. 어차피 노동개혁 관련 법안 같은 걸 순하게 통과시켜 줄 것 같지도 않다. 예산안 연계 투쟁을 해봤자 11월 30일까지 여야 합의안이 도출되지 않으면 12월 1일 정부안은 자동으로 본회의에 부의된다. 되레 야당이 역사전쟁으로 확대시켜 제 할 일 안 한다고 여론만 들끓을 공산이 크다.
교과서 좌편향 논란의 원조라고 함 직한 2008년 금성사 교과서의 저자 김한종 교원대 교수는 ‘해방 후 3년’으로 좌우 사관(史觀)을 설명했다. ‘기존 관점은 분단이 됐다, 통일된 국가 설립에 성공하지 못했다는 것’인데 “이 3년이 우익사관에선 한국이 공산화될 수도 있는 위기를 극복하고 38선 이남에라도 자유민주주의 국가를 만든 성공의 역사가 된다”고 시사인과의 인터뷰에서 밝힌 것이다. 그럼, 당시 우리나라가 자유민주주의 아닌 공산주의를 좇아 지금 북한 김정은 밑에서 살아야 옳단 말인가?
그럼에도 나는 한국사 교과서 국정화엔 반대다. 그들의 사관에 동의하지 않지만 역사전쟁을 벌여 사람의 머릿속을 바꿀 수 있다고는 생각지 않는다. 나처럼 교과서 문제를 국정화로 풀 순 없다고 보는 청와대 참모나 여당 의원도 분명 있을 텐데 아무도 입을 열지 않는 건 대통령의 불행이다. 국정화 불가 이유를 열 가지도 대겠으나 딱 하나만 들자면, 박 대통령을 위해서다.
‘이해관계 충돌’이라는 게 있다. 다수에게 이익인 일이라도 나와 이해관계가 있으면 피하는 게 도리다. 진실화해를 위한 과거사정리위원회 위원장을 지낸 안병욱 가톨릭대 명예교수는 2013년 초 “박근혜 정부에서 역사전쟁이 전개될 것”이라고 한 인터뷰에서 예견한 바 있다. 박 대통령이 정치를 하는 것도 아버지의 명예회복을 위해서라며 “복수, 자기 나름대로의 원한에 대한 앙갚음, 그것밖에는 없기 때문에 무슨 일이건 할 것”이라고 했다. 교과서 국정화가 ‘박정희 미화’ 의도로 보인다면 박 대통령은 하지 말아야 한다.
진정 교육적 목적이라도 교과서 국정제인 나라는 주로 독재국가다. 국사 국정화도 유신 직후인 1973년 단행됐다. 박 대통령이 제발 엮이지 말아야 할 단어가 유신 회귀, 그리고 독재다. 5년제 단임 대통령이 무슨 영화를 보겠다고 온갖 비판을 무릅쓰고 국정화를 강행하는지 답답하다.
정부가 무능하면 국민이 고생한다. 이념전쟁으로 나라를 분열시키지나 말기 바란다. 다음 정권이면 사라질 국정교과서와 의원들에게 바치는 내 혈세만 아깝다.
김순덕 논설실장 yuri@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