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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터로 돌아온 독일의 경단녀… 가정도 나라도 행복

입력 | 2015-10-12 03:00:00

[2015 리스타트 다시 뛰는 기업들]
<1>경제성장 이끄는 독일-네덜란드의 ‘유연 근로제’




출산 여성 “육아 걱정 없어요” 독일 함부르크의 물류기업 하르트로트에서 아니타 마이스 씨가 업무를 보고 있다. 2013년 출산 후 지난해 복귀하면서 시간선택제로 전환한 그녀는 “자녀가 어느 정도 성장하고 나면 전일근무로 돌아갈 것”이라고 말했다. 아니타 마이스 씨 제공

기자가 최근 방문한 독일 프랑크푸르트 상공회의소(IHK). 프랑크푸르트 지역 기업들을 대표하는 단체다. 라인하르트 프롤리히 IHK 홍보국장은 “1980년대 이후 여성 노동자들을 뒤늦게나마 일터로 끌어들인 것은 독일 경제성장에 매우 중요한 의미를 가진다”며 “현재는 일할 수 있는 여성의 70%가 직업을 갖고 있을 정도로 여성의 노동력 비중이 높아졌다”고 말했다.

프랑크푸르트 IHK도 직원 200여 명 가운데 여성이 110여 명으로 남성보다 더 많다. 특히 여성 직원 중 절반 정도는 ‘일주일에 3일’이나 ‘매일 오전 4시간’ 등의 시간선택제로 일하고 있다. 프롤리히 국장은 “프랑크푸르트 시내 임대료는 독일에서도 매우 비싼 편”이라며 “재택근무 비율도 높아져 사무 공간 활용도 좋아졌다”고 설명했다.

○ 노동 유연성이 뒷받침한 경제성장

2003년 게르하르트 슈뢰더 독일 총리가 추진한 ‘하르츠 개혁’은 10여 년이 지난 현재 한국을 포함한 각국이 벤치마킹 대상으로 삼는 성공적인 노동개혁으로 평가된다. 페터 하르츠 박사를 위원장으로 재계, 학계, 정계, 노동계, 기타 등 각 부문 전문가들이 모인 ‘하르츠 위원회’(15명)는 실업자 감축을 위해 고용형태 유연화 및 다변화를 추진했다. 고용안정을 보장받는 시간선택제 일자리가 크게 늘어났고, 인력파견 회사와 계약해 임시직을 활용하는 기업도 많아졌다.

점차 사회진출 기회를 엿보고 있던 여성들은 시간선택제 일자리가 늘어나자 대거 취업전선에 뛰어들었다. 또 과거엔 출산과 동시에 직장을 그만두던 여성들도 근무시간 조정을 통해 커리어를 이어나갔다. 지난달 14일 독일 함부르크의 물류회사 하르트로트에서 만난 아니타 마이스 씨(37)가 그런 경우였다. 2013년 자녀를 출산한 마이스 씨는 출산휴가를 마치고 지난해 초 복귀하면서 주당 25시간만 일하는 시간선택제로 전환했다. 그는 “육아에 전념하고도 싶었지만 새로 집을 장만하느라 경제적 부담이 커 직장생활을 이어나가기로 했다”며 “또래 친구들도 대부분이 전일근무에서 시간선택제로 전환해 일과 육아를 병행한다”고 말했다.

실제 독일 내 고용률(15∼65세 기준)은 2003년 47.9%였지만 하르츠 개혁의 효과에 힘입어 2008년 50%대로 올라섰다. 이후에도 매년 꾸준히 증가해 지난해 고용률은 55.8%에 이르렀다. 2005년 11%가 넘었던 실업률은 절반 이하로 떨어졌다.

막스 콘제미우스 독일연방고용주협회(BDA) 사회정책 담당자는 “고용주들도 자꾸 사람이 바뀌어서 생산성이 낮아지는 것을 원치 않는다”며 “일하는 시간을 줄이더라도 기존 직원들을 그대로 남겨두기 위해 기업들이 시간선택제 정책에 적극 동조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 시간선택제로 행복감도 상승

네덜란드는 유럽에서도 가장 행복감이 높은 나라로 꼽힌다. 영국 경제전문지 이코노미스트는 그 이유를 ‘높은 시간선택제 비율’에서 찾기도 했다. 실제 네덜란드는 전체 취업자의 절반 이상이 시간선택제로 일하고 있다. 특히 여성은 70% 이상이 시간선택제 직이다.

네덜란드에서 시간선택제 일자리가 급격히 늘어난 것은 1990년대 중반 이후부터다. 여성 고용을 늘리기 위해 정부가 주도하는 캠페인을 벌였고, 1996년에는 ‘근로시간에 따른 차별 금지법’도 제정했다. 실제 총 인구가 1700만 명인 네덜란드에서 1995년 이후 10년간 늘어난 시간선택제 일자리만 50만 개에 달했다. 네덜란드는 이것도 모자라 2008∼2009년 무렵 정부 주도 태스크포스(TF)를 만들어 ‘파트타임 플러스’라는 캠페인을 추가로 진행하기도 했다.

최근 시간선택제 일자리가 급증하고 있는 산업은 헬스케어와 교육 등이다. 주로 여성들이 많이 필요로 하는 산업들이다. 특히 인구 전체의 고령화가 갈수록 빨라지면서 헬스케어 산업은 네덜란드 내에서 급성장 중이다.

네덜란드 대기업들을 대표하는 단체인 MKB의 톤 스훈마에커르스 인사정책 담당자는 “정부가 시간선택제 일자리에 대한 차별을 철폐하면서 청년들 사이에서도 시간선택제에 대한 편견은 거의 사라지고 있다”며 “현재 25세 미만의 젊은 취업자 중 70%가 시간선택제 근무일 정도”라고 말했다.

○ 시간선택제 확대가 남긴 과제

최근 네덜란드, 독일 등 시간선택제 비율이 높은 유럽 국가들 사이에서는 이들의 비차별적 승진이 주요한 이슈 중 하나로 떠오르고 있다. 시간선택제 비율이 급격히 높아진 지 길게는 20년, 짧게는 10년이 넘어가면서 공통적으로 직면하게 된 문제다.

각 나라는 전일근무와 시간선택제 간 차별을 줄여 많은 여성을 노동시장으로 끌어들이는 데는 성공했다. 그러나 시간선택제로 일하는 직원들을 관리자 등급으로 승진시키는 데는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다. 정보기술(IT) 등 전문 분야에서는 크게 문제될 것이 없지만 일반 사무직에서는 더욱 그렇다.

스훈마에커르스 MKB 인사정책 담당자는 “유럽연합(EU)에서는 이런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기업들에 일정 비율 이상의 여성 임원을 쓰도록 법으로 강제하는 방안까지 강구하고 있다”고 전했다.

▼ 출산 육아기엔 단축 근무… 아이 자라면 다시 전일제 ▼

노사가 만든 스웨덴의 유연근로… 근로자 여건따라 자유롭게 선택


스웨덴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가운데 여성 고용률(지난해 발표 기준)이 82.5%로 가장 높다. 합계 출산율(여성 1명이 평생 낳을 것으로 예상되는 자녀 수) 역시 1.92명으로 2명에 육박한다. 출산과 육아는 물론이고 근로자의 삶의 질을 높이기 위해 국가와 기업이 지원을 아끼지 않은 결과다.

스웨덴 근로자들은 대부분 ‘유연근무’로 일한다. 학업과 육아 등 개인의 여건과 상황에 따라 전일제와 시간제 근무를 자유자재로 전환하는 형태다. 전일제와 시간제 근로라는 개념이 엄격히 구분되지도 않는다. 본인 희망에 따라 근로시간을 자유롭게 선택할 수 있다.

스웨덴 최대 은행인 SEB는 이 같은 유연근무제를 폭넓게 활용하고 있는 기업으로 꼽힌다.

전일제 직원도 학업, 간병, 육아, 출산 등 개인 사정에 따라 특정 요일에는 단시간 근로를 하고, 다른 요일에는 장시간 근로를 할 수 있다. 주당 근로시간(38.5시간) 내에서 근로시간을 탄력적으로 쓸 수 있는 것이다. 여성은 물론 남성도 부인의 출산과 육아기에 단축 근무를 할 수 있고 또 본인 희망에 따라 언제든지 전일제 근무로 전환할 수 있다.

일단 전일제 근로자로 입사한 뒤 결혼하고 아이가 생기면 시간제 근로로 전환하고, 아이가 자라면 다시 전일제로 복귀했다가 정년이 가까워지면 다시 근로시간을 단축하는 근로자가 대부분이다. 근로시간 단축으로 줄어든 급여는 국가가 보충해 주고, 은퇴 이후에도 다양한 사회복지제도와 연금으로 안정된 생활을 누릴 수 있다. 이런 근무 형태가 자리 잡다 보니 굳이 정부가 나서서 ‘노동 개혁’을 선도하거나 임금피크제를 도입할 필요도 없다. 이 때문에 SEB는 여성 근로자의 비율이 54%로 남성보다 높다. 특히 여성뿐만 아니라 고령 직원들에게도 유연근무제가 폭넓게 활용되고 있다.

이처럼 스웨덴의 유연근무제는 고용의 유연성보다는 일과 가정의 양립이라는 목표 아래 도입됐다는 것이 특징이다. 또 정부가 밀어붙였거나, 하루아침에 이뤄진 것도 아니다. 노사가 수십 년간 대립하고 협의하고 합의하는 과정을 겪은 뒤 자발적으로 규범을 만들어 냈고, 정부가 이를 측면 지원하면서 구축해 온 것이다. 배규식 경제사회발전노사정위원회 수석전문위원은 “정부가 주도하기보다는 노사의 자발적 참여와 합의 하에 노동시장의 규범을 공동으로 설정하는 것이 바람직하다”며 “기업과 노조의 적극적인 참여를 유도하기 위한 정부의 노력 역시 지속적으로 이뤄져야 한다”고 말했다.

<특별취재팀>

▽김선미 소비자경제부 차장(팀장)

▽김범석 박선희 한우신 최고야 김성모(소비자경제부) 이지은 유성열(정책사회부) 박민우(경제부) 김창덕 이샘물 기자(산업부) 장원재 도쿄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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