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년 10월 국방과학硏 파견소 분실… 대사관 40여곳 동일장비 긴급 회수
정부, 넉달동안 도난 사실조차 몰라… 오간 비밀팩스 암호 해독됐을 수도
한국 정부가 해외에서 암호장비를 도난당한 뒤 1년째 이를 못 찾고 있는 것으로 확인됐다. 특히 4개월이 지나도록 도난당한 사실 자체를 몰랐던 것으로 나타나 그 사이에 정부의 암호체계와 관련 비밀사항들이 새나간 게 아니냐는 우려가 커지고 있다.
외교 소식통은 11일 “A국가에서 운용하던 비밀문서 송수신용 암호장비가 지난해 10월 사라졌다”고 밝혔다. 암호장비가 설치됐던 곳은 A국가에 파견된 국방과학연구소(ADD) 현지 사무소로 밝혀졌다. 전 세계 한국대사관 무관부에 설치해 운용하고 있는 것과 같은 암호장비 ‘NX-02R’가 이곳에서 없어진 것이다. NX-02R는 비밀문서를 팩스로 주고받을 때 평문(平文)을 암호로 바꿔주는 장비다. 본보는 사안의 민감성 등을 고려해 A국가의 이름은 밝히지 않기로 했다.
더 큰 문제는 이 장비를 정확히 언제 잃어버렸는지, 누가 손댄 것인지조차 모른다는 데 있다. 소식통은 “팩스 송수신 기록을 보면 마지막 시험통신이 있었던 게 지난해 6월이었다”며 “그 이후부터 분실 사실을 알게 된 10월 사이에 장비가 없어진 것”이라고 설명했다. 평소 관리를 제대로 하지 않다 보니 암호장비를 잃어버리고도 4개월이 지나도록 그 사실조차 몰랐다는 얘기다. 누군가 의도적으로 장비를 훔쳐갔다면 4개월간 이 장비의 성능과 기능을 분석했을 것으로 추정된다. 또 4개월 사이 전 세계 40여 곳에 나가 있는 한국대사관 무관부에서 오간 비밀팩스의 내용들이 고스란히 해독됐을 가능성이 있다. 암호장비 1개만 잃어버려도 전체 암호체계가 무너지는 위험을 안고 있다.
정부 당국은 A국가에서 NX-02R가 사라진 직후 다른 국가에 있던 NX-02R를 전부 회수했고 암호체계 보완 조치도 했다고 해명했다. 정부 관계자는 “담당자의 출장이 잦다 보니 보안을 철저히 하는 데 어려움이 있었다”며 “지금은 장비가 모두 회수돼 보안에는 문제가 없는 상태”라고 말했다. 당국은 지난해 11월 관련 부처 주관으로 보안조사를 실시하고 암호장비 ‘분실사건’으로 사건의 성격을 규정한 뒤 이듬해 2월 관련자를 징계하는 선에서 일단락했다. 이 때문에 사건을 은폐하려 했던 게 아니냐는 의혹도 일고 있다.
조숭호 shcho@donga.com·정성택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