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국 런던 금융가와 멀지 않은 ‘올드 스트리트’(Old Street)의 출근길은 대학캠퍼스 앞처럼 바삐 움직이는 젊은이들로 붐빈다. 그들의 눈빛과 말투는 열정으로 가득 차 있다. 바로 이곳이 영국의 디지털 창업 생태계를 이끌고 있는 ‘테크시티’다.
이곳은 불과 5년 전만 해도 쇠퇴한 도시의 뒷골목처럼 범죄가 끊이지 않는 빈민지역이었다. 하지만 영국 정부의 강력한 정보기술(IT) 창업 육성 정책에 힘입어 신흥 벤처타운으로 탈바꿈했다. 1980년대 마거릿 대처 전 영국 총리가 개발한 런던 동부의 도크랜드 지역이 글로벌 금융허브로 자리매김한 것처럼 말이다.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영국 정부는 금융산업에 대한 의존에서 벗어나고 미래 신성장동력을 육성하기 위해 테크시티를 구상했다. 구글, 페이스북 같은 글로벌 IT기업을 육성한 미국의 실리콘밸리를 벤치마킹했다. 이후 5년 만에 테크시티는 실리콘밸리에 뒤지지 않는 디지털 창업 열풍의 중심으로 도약하고 있다. 현재 이곳에 입주한 기업은 2000여 곳, 투자규모는 약 2조 원에 이른다.
이런 성공의 배경에는 정부의 든든한 지원 정책이 있었다. 각종 세금 감면 혜택은 물론이고 창업 관련 규제와 절차를 간소화해 창업자들이 아이디어만 있으면 언제든지 도전할 수 있는 발판을 제공했다. 또 창업에 실패하더라도 청산이 용이하도록 해 재창업할 수 있는 기회를 줬다. 실패하더라도 창의와 열정이 식지 않도록 창업자 중심의 생태계를 조성한 것이다.
또 기업과 대학들도 참신한 아이디어가 비즈니스로 연결될 수 있도록 아낌없이 투자와 교육 프로그램을 지원하고 있다. 최근에는 구글, 아마존, 인텔 등 글로벌 IT기업들이 기술연구소와 창업지원센터를 세워 이곳의 창업 열기를 한층 높이고 있다.
무엇보다 아이디어와 기술을 보유한 인력들이 이곳으로 몰려들고 있다. 영국 내 인재를 비롯해 꿈과 열정으로 뭉친 전 세계 청년들의 러시가 이어지면서 테크시티는 계속 확장하고 있다. 이민자에 대한 규제가 강화되고 비자 발급도 쉽지 않은 상황이지만 기술만 있다면 큰 문제가 되지 않는다.
영국도 한국처럼 청년 일자리 문제가 사회적 이슈로 대두되고 있다. 하지만 영국은 금융위기 이후 유럽지역에서 가장 빠른 경기 회복 속도를 보이고 있으며 최근 실업률도 최저 수준으로 떨어졌다. 테크시티를 발판으로 기술대국을 향한 경쟁력을 끌어올린 것이 원동력이 됐다. 한국도 다르지 않다. 실패를 두려워하지 않고 도전을 즐기는 젊은 기업가들과 이들의 성공사례를 보면서 더 큰 열정을 불태우는 젊은이들이 늘어날수록 다시 역동적인 경제를 만들 수 있을 것이다.
고영완 삼성증권 런던법인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