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1008호/커버스토리 | 폭풍전야 디젤게이트 01] 국내 자동차도 과다 배출가스 지적…ICCT “이대로는 유럽 시장 퇴출”
국내의 시선은 자연스레 경쟁사인 현대자동차로 쏠린다. 최근 많은 증권사 보고서가 폴크스바겐 사태를 거론하면서 현대차 주식 목표가를 상향 조정했다. 내년 한미 자유무역협정(FTA)에 따른 관세 인하 개시로 가격 경쟁력도 높아질 전망이다. 그러나 현대차는 폴크스바겐과 함께 거론되는 것을 꺼리며 조심스러워하는 분위기다.
르노닛산 회장 “이번 사태는 미국의 음모”
디젤 배출가스 파문은 이제 시작일 뿐이다. 세계 각국은 후속조사에 착수했다. 디젤 차량에 대한 규제도 더욱 강화될 조짐이다. 문제는 이번 사태를 초래한 ‘꼼수’ 문화가 자동차업계 전반에 만연해 있다는 것. 국내 자동차업계도 이러한 풍토로부터 자유롭지 못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유럽 자동차업계는 폴크스바겐 사태가 불러올 파장을 막고자 안간힘을 쓰고 있다. 10월 1일 유럽자동차공업협회(ACEA) 회장이자 르노닛산 얼라이언스 회장인 카를로스 곤은 유럽연합(EU) 경쟁력이사회(COMPET) 측에 협회장 명의로 보낸 서한에서 이번 사태에 대해 규제를 과잉 신설하지 말 것을 당부했다. EU 경쟁력이사회는 EU 회원국의 역내 시장, 산업 관련 정책을 협의하는 기구. 서한에서 곤 회장은 ‘유럽에서 121만 개 일자리를 제공하는 자동차업계의 경쟁력을 해칠 수 있는 조치는 피해야 할 것’이라고 당부했다.
한편, 곤 회장은 이번 사태가 미국 측 음모일 수도 있다는 언급을 남겨 화제가 됐다. 언론에 유출된 서한의 초안에서 곤 회장은 ‘미국은 유럽 자동차업계의 디젤 기술 리더십에 도전하려 한다’고 했다. 실제로 전해진 서한의 최종본에선 해당 언급이 ‘오해 여지’가 있어 삭제됐다고 한다.
곤 회장의 언급이 보도된 이후, 이번 폴크스바겐 사태와 관련해 자국의 자동차산업을 보호하려는 미국 측 의도가 깔려 있다고 보는 시각이 더욱 힘을 얻었다. 가속페달 결함으로 도요타 자동차 1000만 대를 리콜한 2009년에도 이를 미국 자동차업계와 정부의 음모라고 보는 시각이 있었다. 폴크스바겐과 도요타 두 업체 모두 세계 자동차시장 1위를 석권한 직후 이런 위기에 직면했다는 묘한 우연의 일치도 이런 분석 여론의 확산에 불을 지폈다.
폴크스바겐의 디젤 배출가스 조작은 명백한 소비자 기만행위인 까닭에 이번 사태를 미국 정부의 음모로 단정하기에는 아직까지 무리라는 시각도 있다. 하지만 앞으로 미국 정부가 이 사건을 어떻게 다룰지에 관심이 쏠리는 이유도 이 사태가 끝이 아니라는 강한 추측 때문이다.
앞으로도 세계 자동차시장에서 관련 규제와 규제위반이 문제시될 경우 배출가스와 연비가 이슈가 될 가능성이 높다고 전문가들은 경고한다. 김필수 대림대 자동차학과 교수는 “충돌시험 같은 다른 규제와 달리 (배출가스와 연비 문제는) 변수가 굉장히 많아서 앞으로도 문제제기가 있을 여지가 크다”고 말했다.
이미 현대차는 지난해 ‘연비 과장’ 문제로 미국에서 벌금 총 3억 달러(약 3000억 원)를 내기로 미 EPA와 합의한 바 있다. 그렇다면 디젤 배출가스 문제에 대해서는 어떨까. 결론부터 말하자면 현대차는 디젤 배출가스 문제에서도 위험요소를 안고 있다. 이번 사태는 EPA가 폴크스바겐 디젤 차량 일부가 배출가스 저감장치를 시험주행 시에만 가동하고 실제주행 시에는 끄는 ‘임의설정’을 적용했다는 판정을 내리고 이를 통보하면서 벌어진 일이다(21쪽 상자기사 참조). 그러나 규제 이행 여부를 판단하기 위해 실시하는 검사에서 나온 배출가스양과 실제주행 시 나오는 배출가스양의 차이가 크다는 점은 이미 오래전부터 디젤 차량 전반에 대해 지적돼왔다.
독일 자동차연맹(ADAC)에서 자체적으로 실시한 검사에 따르면, 현재 유럽에서 시판되는 현대차를 비롯한 타사 디젤 차량들도 유로6 기준(22쪽 상자기사 참조)을 통과했음에도 실제주행과 유사한 방식(WLTC·22쪽 상자기사 참조)으로 검사할 경우 질소산화물 배출량의 차이가 기준치의 최대 10배 이상까지 나는 것으로 드러났다.
10월 1일 인천 서구 국립환경과학원 교통환경연구소 직원들이 아우디 A3 모델의 배출가스 검증 조사를 준비하고 있다.
국내에서도 디젤 배출가스 논란
현대차 디젤 차량들도 독일 ADAC 자료의 질소산화물 배출량 부문에서 볼보, 르노와 함께 상위권을 차지하고 있었다. 현대차 i20 1.1 CRDi와 싼타페 2.0 CRDi는 WLTC 방식으로 주행할 경우 기준치의 6배가 넘는 질소산화물을 배출하는 것으로 기록됐다(22쪽 표 참조). 현대차 관계자는 이에 대해 “WLTC 방식은 현행 측정 방식이 아니며 당사는 유럽을 비롯한 각국의 현행 관련 기준을 준수하고 있다”고 답했다.
검사 방식에 따른 배출량 차이가 ‘배출가스 조작’을 의미하는 것일까. 폴크스바겐의 디젤 배출가스 조작 가능성을 미 EPA에 처음으로 제보한 국제청정교통위원회(ICCT)는 “그렇지는 않다”고 말한다.
“운전 조건이 부담스러워지는 경우 (급가속, 경사로 등) 디젤엔진의 질소산화물 배출량이 급증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중략) 유로6 기준 인증을 받은 차량의 질소산화물 배출량이 높다는 점은 (배출가스 조작보다) 현행 규정의 맹점에 대해 시사하는 바가 더 크다.”
피터 목(Peter Mock) ICCT 유럽지부 국장도 질소산화물 배출량 차이와 관련한 다른 자동차제조사의 임의설정 가능성에 대한 ‘주간동아’ 측 질의에 “ICCT는 타 제조사들이 임의설정을 사용한다고 주장하는 것이 아님을 강조하고 싶다”면서 “실제 도로주행에서 차량을 검사하겠다는 세계 각국 정부의 발표를 환영하며 검사 결과를 면밀히 분석하길 권한다”고 답했다.
과거 현대·기아차도 국내에서 디젤 배출가스 논란에 휘말린 적이 있다. 2012년 5월 환경부는 현대차 투싼 2.0과 기아차 스포티지 2.0이 일부 고속 구간에서 운전 패턴을 달리하는 경우 질소산화물이 기준 대비 18% 이상 초과 배출되는 결함이 있다고 발표했다. 당시 환경부는 “100km/h 이상 고부하 구간에서 출력 및 가속 응답성 향상 등을 위해 질소산화물을 저감하는 배출가스 재순환장치(EGR)의 작동이 축소된 것으로 보인다”고 밝혔다. 이번 폴크스바겐 사태 또한 배출가스 재순환장치를 임의설정으로 조작해 불거진 일이다.
현대차는 이에 대해 “당시 환경부의 시험 조건에 대해 자동차제조사와 전문가들의 이견이 있었지만, 당사는 환경정책에 협조하고 대기오염원 저감 차원에서 자발적 시정에 착수했던 것”이라고 밝혔다. 또한 2011년에는 투싼, 싼타페, 스포티지를 비롯한 현대·기아차 디젤 차량 12종 총 87만 대가 에어컨 작동 시 질소산화물이 과다하게 배출되는 현상이 환경부 시험 결과 확인됐다. 이 또한 배출가스 재순환장치와 연관된 것으로 당시 분석됐다. 현대차 관계자는 “2011년 건은 폴크스바겐 사건과 본질적으로 다르다. 폴크스바겐은 배출가스 조작 사실을 은폐하려 했고 우리는 리콜을 통해 실수를 모두 고친 것”이라고 해명했다.
고부하 구간 또는 에어컨 작동 시 배출가스 저감장치 작동 축소는 임의설정에 포함되는 것일까. 당시 시험을 주관했던 국립환경과학원 교통환경연구소 관계자는 “당시 전문가들이 협의할 때 (당시 주행방식이) 규정에 있는 조건이 아니었기 때문에 임의설정은 아니라고 결론 내렸다”고 답했다.
그러나 제작자동차 인증고시 제2조는 임의설정에 대해 ‘일반적인 운전 및 사용조건에서 배출가스 시험모드와 다르게 배출가스 관련 부품의 기능이 저하되도록 그 부품의 기능을 정지, 지연, 변조하는 구성부품’으로 정의하고 있다. ‘100km/h 이상 가속‘이나 ‘에어컨 작동‘을 일반적인 운전 및 사용조건으로 해석하느냐 여부가 관건인 셈이다.
현대차는 미국 시장에서 디젤 차량을 판매하고 있지 않다. 가솔린 연료가 디젤보다 저렴해 미국 시장에서 디젤 차량은 인기가 없기 때문. 결과적으로 디젤 배출가스 규제와 관련해 현대차가 타격을 입을 가능성은 전무하다고 봐도 된다. 문제는 유럽 시장이다. 유럽 시장은 신규 자동차시장의 절반 이상을 디젤 차량이 점유하고 있다. 현대차 또한 디젤 신차를 출시하면서 유럽 시장에서 공세를 펼쳐왔다. 폴크스바겐 사태로 추후 유럽의 디젤 관련 규제가 강화될 경우 현대차 제품이 규제를 통과할 수 있을지가 관건이다.
▼‘클린디젤’ 홍보하려다 드러난 폴크스바겐 배출가스 조작▼
마르틴 빈테르코른 폴크스바겐 최고경영자. 배출가스 조작 파문으로 9월 23일 사임했다.
연구자들은 이 결과를 2014년 5월 미국 환경보호국(EPA)과 캘리포니아 주 대기보전위원회(CARB)에 보고했다. 폴크스바겐은 EPA가 해당 사실을 인지한 이후 약 1년 동안 배출량 차이가 기술적 오류에 불과하다고 주장해왔다. 그러나 EPA가 ‘임의설정’ 증거를 제시하고 폴크스바겐과 아우디의 2016년형 디젤 차량에 대한 승인을 보류하겠다고 으름장을 놓자 그제야 조작 사실을 인정했다. 마르틴 빈테르코른 폴크스바겐 최고경영자는 처음에는 사임 압박에 반발하다 9월 23일 결국 사임했다.
유럽, 미국에서 뺨 맞고 한국에 화풀이?
현재까지 결과만 놓고 볼 때 한국 자동차의 유럽 시장 진출 전망은 그리 밝지 않다. ICCT는 9월 초 독일 ADAC 자료를 토대로 ‘유로6 디젤 승용차의 질소산화물 저감 기술’ 백서를 발표했다. 실험차량에는 현대차 제품도 포함돼 있는데 볼보, 르노, 현대차 실험차량이 WLTC 방식 검사에서 질소산화물을 많이 배출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ICCT는 “이들 차량은 실제주행(RDE) 방식을 통과하지 못할 개연성이 매우 높아(very likely) RDE 방식이 오늘날 적용됐을 경우 EU 시장에서 퇴출됐을 것”이라고 밝혔다. 보고서에는 현대차 실험차량의 명칭이 나와 있지 않지만 명기된 엔진출력과 배기량으로 볼 때 싼타페 2.0으로 추정된다.
업계 관계자는 이번 폴크스바겐 사태로 큰 타격을 입은 독일 자동차업계가 한국 업계를 겨냥할 수 있다고 말한다. “현대차에 대한 부정적인 시험 결과가 모두 독일 ADAC에서 나왔고, 영국 언론(‘가디언’)을 통해 보도됐다는 점을 상기할 필요가 있다.” 미국에게 뺨 맞은 독일이 한국에게 화풀이하는 촌극이 벌어질 수도 있다는 것.
유럽 시장에서 디젤 규제는 강화되고 있다. 유럽 위원회(EC)는 2017년부터 단계적으로 실제주행 시 배출량을 디젤 차량 규제에 포함할 계획이다. 한국-EU FTA에 따라 디젤 차량 배출가스 기준과 시험방법을 EU와 동등하게 관리하고 있는 우리나라도 마찬가지로 2017년 9월부터 기존 인증시험에 더해 실제 도로조건 하에서 배출가스 인증제도를 도입할 예정이다.
폴크스바겐 사태 이후 디젤 차량에 대한 규제가 강화될 것임은 분명해 보인다. 자칫하면 규제 강화로 한국 자동차업계가 해외 시장에서 밀릴 위험 또한 지적되고 있다. 이는 지금까지 우리 환경부의 관련 규제에 따른 제재가 미미했던 탓도 있다. 김필수 교수는 2011년 당시 현대차의 질소산화물 과다 배출 건을 언급하면서 “(폴크스바겐 사태와 달리) 우리나라에선 벌금 수천만 원만 내면 끝”이라며 “당국의 더욱 엄격한 제재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현행 자동차관리법은 안전 기준 부적합 자동차 판매에 대한 과징금 상한선을 10억 원으로 한정하고 있어 미국에 비해 너무 낮다는 지적이 많다.
환경(배출가스)과 효율(연비)은 서로 상반되는 관계에 있다. 폴크스바겐이 배출가스 조작이라는 ‘꼼수’를 부린 것도 효율을 앞세워 미국 시장을 공략하기 위해 무리하게 계산한 탓이라는 게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그러나 기술은 규제와 함께 발전한다는 사실을 잊어서는 안 된다. 우리나라가 ‘정책적 고려’로 규제 개발을 게을리할 경우 우리 자동차업계 전반이 세계 시장에서 뒤처질 수 있음을 상기해야 할 것이다.
▼디젤 배출가스 규제…韓과 EU 유로6 기준 동일 적용, 美는 절반 수준으로 엄격▼
독일 자동차연맹(ADAC)의 WLTC 방식 질소산화물 배출 결과.
한편 미국의 디젤 배출가스 규제는 우리나라와 유럽보다 엄격하다. 질소산화물 허용량은 유로6의 절반 수준인 0.044g/km다. 시험방법도 더 엄격하다. 우리나라와 EU는 NEDC(New European Driving Cycle)라는 주행모드로 검사를 하는데, 실내온도 20~30도의 실험실에서 에어컨을 끈 상태로 시속 0~120km 범위에서 일정하게 가속 운행을 한다. 미국은 FTP-75라는 주행모드를 사용한다. 여기에는 급가속, 에어컨 가동, 고속주행, 저온주행(영하 7도)이 포함된다.
한국과 EU 규정에서 시험주행과 실제주행 간 배출량 차이가 크다는 것은 이미 많은 관계자가 누차 지적해온 점이다. 이 때문에 유엔 유럽경제위원회(ECE)에서는 실제주행과 좀 더 비슷한 효과를 얻을 수 있도록 만든 WLTP(Worldwide harmonized Light vehicles Test Procedures) 방식을 제정 중이다(2015년 10월 중 완성 예정). 기사 본문에서 소개한 독일 자동차연맹(ADAC)의 시험방식이 바로 이것이다.
EU 또한 자체 규제를 강화할 방침이다. 2017년 9월부터는 실제주행에서 측정된 배출가스양도 규정에 포함된다. 이때는 시험주행 시의 2배까지 허용되며 2019년 9월부터는 시험주행 시 허용량에 가깝게 바꿀 예정이다. 우리 환경부는 아직 자세한 관련 정책을 발표하지 않았으나 ‘한-EU FTA 자동차 작업반’ 실무회의에서 관련 사항을 EU와 논의하고 있으므로 EU와 동일하게 규제가 적용될 것으로 보인다.
김수빈 객원기자 subinkim@donga.com
<이 기사는 주간동아 2015.10.14.~10.20|1008호 에 실린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