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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근혜 정부 식 남북한 군사력 비교

입력 | 2015-10-15 12:00:00

[주간동아 1008호/국방]
“남북 군사비 30 대 1은 잘못” 한민구 장관 지론 따라 실물작업 구체화




19대 국회 국정감사 마지막 날인 10월 8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국방위원회 국정감사에 앞서 한민구 국방부 장관과 이순진 합참의장, 장명진 방위사업청장이 질의에 답변할 내용 등을 보고받고 있다(왼쪽부터).


8·25합의로 안정세를 보이는 듯싶던 남북관계가 다시 격랑 속으로 빠져들고 있다. 10월 10일 북한 조선노동당 창건 70주년을 앞두고 한국과 미국, 중국과 일본까지 가세하며 쏟아낸 다양한 관측은 평양의 다음 행보에 쏠렸다. 열병식 퍼레이드에 등장할 각종 무기체계와 장거리 로켓 발사, 4차 핵실험에 대한 시나리오가 안보당국과 전문가들을 긴장케 한 것 역시 똑같은 패턴. 10월 16일 한미 정상회담 시점까지 두 나라 정상의 논의를 압박하기 위한 김정은 조선노동당 제1비서의 계가 싸움은 당분간 지속될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2004년 청와대, 2008년 국정원

그리고 이쯤 되면 언제나 반복되는 미스터리 하나. 세계 최빈국에 속하는 북한의 군사력은 왜 이리도 집요하게 놀랄 만한 위력을 자랑하는가. 남한과 북한의 엄청난 경제력 차이, 군사비만 따져도 수십 배 격차가 나는 상황에서 북한의 위협을 제어할 대응책이 여전히 마땅치 않은 이유는 또 무엇인가. 국회와 언론은 물론 인터넷 댓글을 통해서도 반복적으로 제기되는 물음에 군 당국 역시 뾰족이 할 말이 없기는 마찬가지다.

이와 관련해 국방부가 5월부터 남북한 군사력 비교평가를 경신하는 작업에 착수한 것으로 확인됐다. 한민구 국방부 장관의 직접 지시에 따라 기획된 이번 비교평가는 국방부 국방정보본부와 국군정보사령부를 중심으로 국방과학연구소(ADD) 등 산하 연구기관까지 참여하는 입체적인 작업이라고 당국자들은 전한다. 2000년대 이후 정부가 남북 군사력 비교평가 작업에 돌입한 것은 2004년과 2008년에 이어 세 번째. 노무현 정부 시기였던 2004년의 경우 청와대 국가안전보장회의(NSC) 사무처가 한국국방연구원(KIDA)에 의뢰해 관련 작업을 진행했고, 이명박 정부 시기였던 2008년에는 국가정보원이 주축을 맡았다. 말하자면 이번 비교평가 작업은 ‘박근혜 정부 버전’으로의 업그레이드 작업에 해당하는 셈이다.

국회 국방위원회와 안보당국 관계자들의 설명을 종합하면 이번 프로젝트의 결정적 계기는 올해 초 국회를 중심으로 벌어졌던 남북 군사비 논쟁이었던 것으로 보인다. 2월 24일 미국 헤리티지재단이 펴낸 ‘2015 미국 군사력 지수 보고서’가 ‘한국이 북한에 비해 엄청난 열세’라고 평가했다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촉발된 논란은 “여전히 열세라는 게 말이 되느냐”는 여론의 호된 질타를 받아야 했다. 국방부는 “헤리티지재단 보고서는 북한의 노후한 장비까지 포함해 재래식 무기 수량을 단순계산한 결과일 뿐”이라고 반박하며 진화에 부심했지만, 논란은 쉽게 가라앉지 않았다. 경제력 규모와 군사력 사이의 역설을 명확하게 설명할 근거를 만들 필요성이 대두된 셈이다.

1년짜리 장기 사업으로 알려진 이번 프로젝트는, 이전의 군사력 비교평가가 주로 청와대 ‘뜻’에 따라 전문 연구기관이 수행한 것과 달리 국방부 차원에서 결정한 것으로 전해졌다. 특히 이번 비교평가 작업의 주안점은 북한 환율을 ‘제대로’ 가늠해 이를 실제 전력(戰力)에 대한 평가로 연결하는 작업으로, 이는 한민구 장관이 개인적으로 관심을 기울여온 부분이기도 하다. 공직을 떠나 있던 시기인 2012년 한 장관은 기자에게 “실무자 시절부터 (이 문제에 대해) 깊이 고민해왔다”고 말한 적이 있다.


선뜻 이해하기 쉽지 않은 이 사안을 상세히 들여다보자. 북한은 매년 최고인민회의를 통해 군사비의 구체적 금액을 밝히지 않고 국가 총예산에 대한 증감률로만 발표해왔다. 이를 토대로 유추할 수 있는 북한의 한 해 군사비는 대략 10억 달러(약 1조1600억 원) 내외다. 반면 한국의 국방예산은 40조 원에 육박하는 규모. 남북한 군사비가 30배 이상 차이 난다는 분석의 이유다.

그러나 이러한 단순계산은 상황을 정확히 반영한 것이 아니라는 게 국방부 측 시각이다. 먼저 공식 군사비 외에 ‘숨은 예산’이 적잖고, 환율 역시 공식 환율은 북한 돈의 실제 가치를 반영하지 못하므로 실질 구매력평가지수(PPP) 개념으로 접근해야 한다는 것. 이러한 관점에서 상당한 보정을 거치고 나면 북한의 실제 군사비 규모는 2013년 경우 102억 달러(약 11조8300억 원)에 이른다는 게 국방부 측 설명이다. 남북한 군사비 차이가 실제로는 3~4배 수준에 불과하다는 뜻이다.

KIDA가 2014년 수행한 연구 결과에 기반을 둔 이러한 전제는, 한 걸음 더 거슬러 올라가면 앞서 설명한 2004년 남북한 군사력 비교평가 작업에 바탕을 두고 있다. 당시 분석과정에서 연구팀은 북한이 보유하고 있는 주요 장비와 시설을 서구국가에서 제작 혹은 구매할 경우 어느 정도 비용이 드는지 유추하는 방식으로 총량을 추측한 바 있다. 이번에 군 당국이 진행하고 있는 새로운 버전의 군사력 비교평가는 이렇듯 북한 군사비에 실질 구매력이라는 개념을 적용한 다음, 이를 구체적인 실제 전력 평가로 연동하는 작업으로 풀이할 수 있다.

“있는 그대로” vs “면피용 행보 우려”


특정 국가의 군사력을 평가하거나 다른 나라와 비교할 때, 그간 투입된 예산을 누적해 총량으로 비교하는 개념은 학계의 고전적인 방법론 중 하나다. 여기에 이전 평가 당시 무기체계나 주요 장비, 군사시설이 아직도 실전배치돼 있는지 따져 감가상각을 적용하고, 이후 새로 등장한 KN-08 대륙간탄도미사일(ICBM)이나 300mm 방사포, 개발 작업이 궤도에 오른 것으로 확인된 잠수함발사탄도미사일(SLBM) 등에 투입됐을 군사비를 추산해 반영하는 작업도 함께 진행될 것으로 보인다.

이번 군사력 평가 작업과 관련해 군 당국 수뇌부는 ‘있는 그대로를 국민에게 설명하고 납득할 수 있는 결론을 제시하라’는 취지를 관계부서에 전달한 것으로 전해졌다. 국회 등에서 남북 군사비 격차 문제가 제기될 때마다 국방부 실무자조차 제대로 대답하지 못하는 모습이 반복돼선 안 된다는 게 기본적인 인식이라는 것이다. 그러나 연이어 발생한 무기체계 도입 관련 난맥상으로 국방예산 문제에 대한 여론이 냉랭하기 짝이 없는 상황에서, 자칫 이러한 움직임이 섣부른 ‘면피용 행보’로 읽힐지 모른다는 목소리도 만만치 않다. 국회 국방위원회 한 관계자는 “결과가 나올 내년 상반기면 명확해지겠지만, 어쨌든 ‘여전히 우리가 열세’라는 식의 결론을 쉽게 받아들일 국민은 많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황일도 기자·국제정치학 박사 shamora@donga.com 
<이 기사는 주간동아 2015.10.14.~10.20|1008호 에 실린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