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보진영 정용욱 서울대 교수 “국정화 세력이 되레 편향… 대안 교과서 제작 나설것”
최근 ‘한국사 교과서 국정화에 반대하는 역사·역사교육 연구자 성명’을 이끈 정용욱 서울대 국사학과 교수(55·한국역사연구회 회장·사진)는 13일 이렇게 말했다. 정 교수는 서울대 자신의 연구실에서 가진 인터뷰에서 “역사교육에 관한 유엔 인권이사회 보고서 기준에서 봐도 국정 교과서는 반인권적”이라고 말했다.
정 교수는 현행 검정 교과서가 이념적으로 좌편향돼 있다는 정부 여당의 주장에 대해 “맥락을 제거한 채 일부 표현만 문제 삼는 것은 억지”라며 “더구나 현 정권이 검정한 교과서들”이라고 말했다. 정 교수는 “학자들이 친일을 친일로, 독재를 독재로 쓰는 것은 그것이 객관적 연구 성과이기 때문”이라며 “편향된 것은 오히려 국정화를 추진하는 세력”이라고 말했다. 그는 “언제부터 우리가 정권이 역사에 대한 정파적 이해를 관철하기 위해 역사학계 전부를 좌파로 매도하는 비상식적인 사회가 됐느냐”고 덧붙였다.
학계의 절대다수가 국정화에 반대하고 있어 집필진 구성이 어려울 것이란 전망에 대해 정 교수는 “역사교육의 발전과 무관하게 정치적 의도로 추진되는 국정 교과서의 집필에는 평소 정치 성향과 관계없이 역량 있는 집필진이 참여하기 어려울 것”이라고 말했다.
국정 교과서 편찬을 국사편찬위원회가 맡게 된 것에 대해선 “교과서 편찬은 정부로부터 독립된 기구에서 이뤄져야 한다”며 “국편은 정부의 입김에서 자유롭지 않아 부적절하다”고 말했다. 그는 “검인정 시행 뒤 경쟁을 통해 교과서에 창의적 편집이 도입되는 등 발전이 있었는데 국정 체제는 근본적으로 경쟁이 불가능하다”고 덧붙였다.
정 교수는 “거의 모든 대학에서 국정화 반대 의견이 나오고 있다”며 “끝내 국정 교과서가 만들어진다면 역사학계는 대안 교과서를 포함한 대안적 역사 교재를 개발해 교육 현장에 제공할 것”이라고 말했다.
보수진영 강규형 명지대 교수
강규형 명지대 기록정보과학전문대학원 교수(51·사진)는 “현 한국사교과서가 검정제 취지와는 달리 다양성을 담아 내지 못했고 획일적으로 쓰여졌다”며 “기존 검정제에 문제가 많았다”고 말했다.
강 교수는 기존 한국사교과서가 반사회적 정체성을 만드는 데 일조했다고 주장했다. 그는 “현재 대부분의 검정제 한국사교과서를 보면 대한민국이 바른 사회가 아니라는 인식으로 서술됐다”며 “교과서만 보면 대한민국이 왜 발전했는지 알 수 없고, 오히려 망했어야 하는 국가라는 생각까지 든다”라고 말했다. 또 최근 한국사교과서도 1970, 80년대 국사학계에 큰 영향을 미친 ‘식민지 반봉건사회론’ 기조로 서술되면서, 다른 의견이 흡수될 여지가 없었다고 주장했다.
강 교수는 “국사학계가 군사 정권 시절의 투쟁적 역사관을 벗어나지 못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이로 인해 오늘날 한국 사회를 꿰뚫는 새로운 역사관을 만들지 못했다는 것. 강 교수는 “근현대사의 쟁점이 되는 부분에 대한 서술을 경직된 국사학계에만 맡겨 놓을 수 없기 때문에, 현 시점에서는 국정화가 불가피한 측면이 있다”고 말했다.
국정 교과서 논란 속에 집필진 구성이 쉽지 않을 것이란 전망에 대해 “집필진 구성을 다양화하는 계기로 삼아야 한다”고 말했다. 쟁점이 되는 근현대사를 정치학, 사회학, 국문학 등 다양한 학문의 관점으로 시각을 넓혀 바라보면서 공동체의 정체성을 확립할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강 교수는 “한시적으로나마 국정제를 통해 컨센서스를 이뤄 공동체의 정체성을 확립한 이후에 다양성을 논의하는 게 바람직하다”고 말했다.
국정 교과서가 정권이 원하는 내용으로 채워질 것이라는 우려에 대해선 “친정권, 반정권을 떠나 우리가 어떻게 국력 성장을 이룰 수 있었는지 ‘대한민국 정체성’이라는 키워드로 접근해 집필 기준을 마련하면 큰 논란이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조종엽 기자 jjj@donga.com
임현석 기자 lhs@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