림펜스
그 밖에도 난 수년간 프랑스 음악 잡지 ‘레쟁로큅티블’ 구독자였고 대학교 3, 4학년 땐 친구들과 대학 라디오방송국을 운영하느라 공부를 안 하는 통에 낙제할 뻔했다. 당시 난 여전히 록 애호가였지만 내 취향은 일렉트로니카, 힙합, 현대음악 등으로 다양하고 넓어졌다. 졸업하고 직장생활을 하면서도 나는 계속 새로운 음악에 관심을 가지며 거의 매주 공연을 보러 다녔다.
이처럼 음악 없는 일상생활이란 내겐 상상할 수 없을 정도였다. 하지만 한국에 와서 몇 년 간은 음악에 대한 나의 애정을 망각해버린 듯 살았다. 하도 바빠서. 한국에 오면 당연히 벨기에에서보다 급박한 생활을 하게 될 줄은 알았지만, 이 정도로 바쁘게 지낼 줄은 전혀 예상치 못했다. 서울 생활은 브뤼셀에서보다 2배 정도 격렬하고 빨라졌다. 주중엔 야근이 기본이었고 주말엔 휴식과 더불어 새로운 친구들을 만나 노느라 정신없었다. 내게 주어진 자유시간은 턱없이 부족했지만 틈틈이 한글 공부에도 몰두해 봤고. 새로운 인생에 푹 빠진 나는 내 삶 속에서 갑자기 드물어진 음악이 이상하게도 전혀 그립지 않았다.
‘하지만 없어도 되는 것이라고 꼭 없애야 하는 건 아니잖아.’ 나는 음악이 없어도 괜찮다는 사실을 한국에 와서 알았지만 음악을 포기할 의사가 없었다. 내 열정이 당분간 쉬고 있을 뿐이지. 나의 CD 컬렉션이 여전히 내 부모님 집 다락에 보관된 상자들 안에 신데렐라처럼(‘CD렐라’로 불러도 좋겠다) 긴 잠을 자고 있는데 이것들을 언젠가 다시 듣게 될 것이 확실하다. 음악과 나의 관계가 한국에선 확 달라졌지만 우리는 언젠가 소생시킬 수 있는 옛정이 든 친구 사이와 같다. 자주 못 보는 친한 친구를 만나면 반가운 것처럼 좋아하는 노래도 오랜만에 듣게 되면 얼마나 좋은가.
내가 10년 동안 한국에서 살아오면서 ‘음악적 하이라이트’라 일컫는 순간도 꽤 있다. ‘곱창전골’이란 홍익대 앞 LP바에서 김정미의 ‘봄’을 처음 듣게 된 그 밤, 2006년 포크 가수 아톰북의 미니 공연, 합정 요기가 표현 갤러리에서 매달 하는 ‘불가사리’라는 실험적인 즉흥연주, 악스코리아 공연장에서 패티 스미스를 마주한 날, 상수역 제비다방의 소규모 콘서트 현장들…. 출퇴근길 언제나 만원이 되는 2200번 버스 안에서 라디오로 퀸의 프레디 머큐리가 ‘나는 나의 자전거 타고 싶다’라는 노랫말을 부르는 걸 들었던 순간, 고속도로 휴게소에서 친구와 쉬다가 들은 김광석의 명령과도 같은 목소리가 흘러나왔던 곡 ‘일어나’, 언니네이발관의 ‘헤븐’, 강산에의 매력적인 목소리와 밴드 ‘위댄스’의 에너지 넘치는 연주를 들었을 때 등…. 마지막으로 홍익대 앞 LP바 ‘수지 Q’에 우리 아버지를 데리고 간 날, 그가 신청한 브루스 스프링스틴의 곡이 나왔을 때 아버지의 기쁜 표정을 마주한 순간까지.
※벨기에 출신인 필자(39)는 벨기에 명문 루뱅대 법학과와 브뤼셀 KUB대 대학원을 졸업했다. 김&장 법률사무소에서 근무하다 현재 출판사 열린책들 해외문학팀 차장으로 근무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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