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로야구 넥센 이장석 대표의 별명은 ‘빌리 장석’이다. 영화 ‘머니볼’의 실제 주인공인 미국 프로야구 오클랜드의 빌리 빈 단장의 이름에서 따온 것이다. 두 사람의 접점인 머니볼은 100여 년 빅리그의 ‘게임 법칙’을 뒤흔들었다. 돈이 지배하는 시장에서 저평가된 가치(출루율 등)를 찾아내 경제적으로(보다 적은 비용으로) 승리를 사는 원칙을 제시했다.
가난한 구단 오클랜드의 2000~2003년 연봉 순위는 메이저리그 30개 구단 중 25, 29, 28, 26위였다. 그런데 그 기간 오클랜드는 가을잔치에 한 번도 빠지지 않았다. 국내 구단 중 유일하게 모기업이 없는 팀 넥센도 2013~2015년 연봉 순위는 8, 7, 7위였지만 재벌가 구단들 틈에서 3년 연속 가을 무대에 초대 받았다. 빌리 빈과 이 대표는 그렇게 연결된다.
그런데 두 사람은 이제 악평마저 공유하게 됐다. 정규시즌은 잘하는데, 가을 무대에서 초라하다는 점도 같아졌다. 오클랜드는 머니볼 시대에 4년 연속 가을 무대에서 쓴 맛을 봤고, 넥센 역시 14일 처참한 패배로 3년 연속 가을에 울었다. “나의 이론(머니볼)은 가을에는 통하지 않는다”는 10여 년 전 빌리 빈의 넋두리가 이제는 이 대표의 가슴을 후비고 있다.
결과는 흥미로웠다. 실점을 막는 것(수비력)은 포스트시즌 성공과 관련이 크지만, 득점을 하는 것(공격력)은 전혀 관계가 없었다는 것이다. 방망이가 약해도 마운드(수비)가 좋은 팀은 이 기간 7번이나 우승을 차지했다. 그러나 수비가 약한 팀은 단 한번도 정상에 오르지 못했다. 실버가 제시한 우승 3요소(마무리 투수, 탈삼진, 팀 수비)에 모두 수비가 관련된 것도 그 때문이다.
‘한국판 머니볼’ 넥센의 가을 잔혹사도 이 분석틀로 설명된다. 넥센은 전형적인 타격의 팀이다. 최근 3년간 팀 홈런과 득점 등에서 대부분 1위를 차지했다. 하지만 같은 기간 팀 방어율과 실점 등에서는 5~6위권으로 평균 이하였다. 실버의 분석대로 가을잔치에 돌입하자 박병호 등 무시무시한 타자의 강점은 전혀 두드러지지 못했고, 취약한 마운드의 약점은 고스란히 드러났다.
‘타자(공격)는 관중을 기쁘게 하고, 투수(수비)는 감독을 기쁘게 한다’는 야구계의 격언을 비켜 가지 못한 것이다. 그렇다면 넥센은 왜 마운드 구성에 실패했을까. 결국 자본의 한계였다. 넥센은 구단 운영이 어려웠던 2010년 즈음 장원삼(삼성)과 이현승(두산) 등 귀중한 선발 투수 자원을 현금을 받고 팔았다. 그리고는 그 빈자리를 복구하지 못했다. 그럴 수밖에 없다. 타자는 길러 써도 되고, 시장에서 영입하더라도 몸값이 그렇게 비싸지 않다. 그런데 투수는 쉽게 육성되지 않을 뿐만 아니라, 사려고 해도 너무 비싸 좀처럼 엄두를 낼 수 없다. 마운드 구축을 하지 않은 게 아니라, 할 수 없었던 것이고, 복구하기에는 시간이 더 필요했던 것이다.
넥센은 지난해 강정호를 메이저리그로 보냈고, 올해는 박병호가 빅리그 진출을 앞두고 있다. 유한준과 이택근 등도 자유계약(FA) 자격을 얻기 때문에, 클린업 트리오가 해체될 수도 있다. 어쩔 수 없이 새 틀을 짤 수밖에 없는 시기가 됐다. 게다가 넥센은 내년부터 고척 돔구장에서 새로운 여정을 시작한다. 새 부대에 새 술이 담길지 주목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