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교과서 국정화]제 할일 못한 역사학계-교육부
○ 자기 세계에 갇힌 역사학계
한국사 교과서를 둘러싼 편향 논란이 번진 데에는 진보-보수 역사학자들 사이에 제대로 된 논쟁이나 대화가 부족하기 때문이라는 분석이 나오고 있다.
현재 근현대사를 연구하는 역사학계는 여러 시대를 종합적으로 다루는 대규모 학회를 비롯해 지역 학회까지 수십 개가 있다. 이 중 한국역사연구회, 역사문제연구소, 역사학연구소 등 1987년 6월 민주항쟁을 전후해 설립된 학회 및 연구단체는 진보 성향으로 분류된다.
성향이 다른 양측 역사학자들이 만나 한자리에서 토론한 것은 2011년이 처음이자 마지막이었다. 당시 교육부가 역사 교육 과정에 ‘자유민주주의’라는 표현을 삽입하자 학회 단위는 아니지만 진보 측의 ‘민주화를 위한 전국교수협의회’와 한국현대사학회가 공동 토론회를 개최했다. ‘보수와 진보가 보는 민주주의-한국의 자유민주주의 이론, 헌법, 역사’를 주제로 4·19혁명기념도서관 강당에서 양측의 학자들이 발제를 했는데 300명이 넘는 청중이 몰리는 등 큰 관심이 쏠렸다.
한국근현대사학회 회장인 박걸순 충북대 교수는 “대한민국을 긍정적으로 보자는 데에는 이견이 없다”며 “그러나 그분들(우파 역사학자) 주장은 사실에서 너무 벗어나 있어 함께 논쟁할 학술적 가치를 못 느낀다”고 말했다.
반면 한국현대사학회장을 지낸 권희영 한국학중앙연구원 교수는 “2011년 같은 토론회가 많아야 하는데 기존 역사학계는 자신들과 다른 가치를 추구하는 연구자들을 학술대회 등에 부르려고 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하지만 한국현대사학회 역시 학술대회에 진보 진영 학자를 초청한 적이 없다.
본격적인 논쟁이 활성화되기에는 우파적 입장을 가진 연구진의 수가 적고 연구 성과가 부족하다는 의견도 있지만, 그럴수록 자주 만나 토론해 근현대사에서 모두 공감할 수 있는 영역을 넓혀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 ‘부실 검정’ 교육부-국사편찬위 ▼
최근 벌어지고 있는 역사 교과서 국정화 논란의 원인 가운데 하나는 결국 교육부와 국사편찬위원회(국편)의 부실 검정이다. 교육부와 국편이 현재 고교에서 쓰고 있는 한국사 교과서에 대해 2013년 검정을 실시하면서 오류와 편향을 바로잡지 못해 문제가 촉발됐기 때문이다.
교육부는 지난해 1월 약 1년간의 검정 과정을 거쳐 한국사 교과서 8종의 수정 및 보완 결과를 발표했다. 당시 교육부는 “수정 보완한 사항은 모두 2250건이며 맞춤법 등의 단순한 오류뿐만 아니라 대한민국 정체성, 6·25전쟁, 일제강점기 미화, 북한 문제 등의 서술도 수정했다”고 밝혔다. 이 검정 결과에 대해 교육부는 “우리 학생들의 올바른 역사인식 형성에 도움을 줄 것으로 기대한다”고 자화자찬했다. 이후 1월 10일부터 발행사별로 인쇄에 들어갔고 학생들에게 배포됐다.
하지만 약 1년 9개월이 지난 지금 정부와 새누리당, 그리고 당시 검정을 진행한 교육부조차 이때 검정을 통과한 교과서들이 “지나치게 좌편향이며 주체사상을 여과 없이 학생들에게 가르친다”고 자가당착적 비판을 하고 있다. 스스로 “올바른 역사관 형성에 도움이 될 것”이라고 자화자찬했던 내용이 지금에 와서는 좌편향 교과서가 된 셈이기 때문이다.
위원 수도 문제다. 2012년 진행된 중학교 역사 교과서 검정심의 위원이 총 32명이었던 것과 비교하면 훨씬 민감하고 예민한 고교 한국사 교과서의 검정위원은 중학교의 절반에도 못 미치는 것. 인력이 부족하다 보니 객관적 사실 오류와 이념편향 서술을 제대로 잡아낼 리 없다. 학부모와 시민단체로부터 외부 인사를 추천받아 검정심의위원으로 위촉할 수 있는 제도도 있었지만 국편은 이를 전혀 활용하지 않았다.
이런 부실 검정 우려가 꾸준히 불거지던 와중에도 2013년 9월 서남수 당시 교육부 장관은 기자회견에서 “국사편찬위원회는 주어진 여건에서 최선을 다했다고 생각한다”며 “소홀한 부분이 있었다는 사실이 확인되면 그 문제는 그때 가서 판단하겠다”고 말했다. 일각에서는 2년 전 교육부가 문제의 심각성을 깨닫고 검정체계 전반을 전면적으로 개선했으면 지금의 ‘국정화 폭풍’은 막을 수 있었다는 지적이 나온다.
조종엽 기자 jjj@donga.com
이은택 기자 nabi@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