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덕수 전 STX그룹 회장은 경영자 시절 ‘비주류’라는 말을 종종 썼다. 대학생들과의 만남에서도 “늘 비주류에 속해 있었지만 그것을 약점으로 생각하지 않고 이뤄야 할 꿈을 위해 달려왔다”고 했다. 1973년 쌍용그룹 평사원으로 입사해 부장까지는 탄탄대로를 달리다가 임원 승진 문턱에서 세칭 일류대 출신이 아니어서 뒤늦게 ‘별’을 단 아픈 경험도 털어놓았다.
▷그는 쌍용중공업 임원이던 2000년 회사가 경영난으로 외국계 자본에 인수되자 다른 직원들과 함께 사재(私財)를 털어 주식을 다시 사들인 뒤 이듬해 STX를 출범시켰다. 50대 초반에 직접 사업에 뛰어드는 모험을 감행한 것은 ‘청춘을 바친 회사가 사라지거나 전혀 연고 없는 자본에 넘어가는 것이 안타까워서’였다. 재계 서열 10위에 육박할 만큼 STX를 키웠던 그에게 자금난에 따른 2013년의 경영 퇴진과 지난해 구속은 인생에서 경험한 최악의 시간들이었을 것이다.
▷서울고법 형사5부는 그제 항소심에서 징역 6년의 실형을 선고한 1심보다 형량을 낮춰 징역 3년, 집행유예 4년을 선고해 강 전 회장을 석방했다. 재판부는 검찰이 적용한 혐의 가운데 2조 원대의 분식회계 혐의는 모두 무죄, 배임 혐의는 80% 이상 무죄로 판단했다. 경영정상화를 위해 개인 재산까지 내놓으며 노력한 점도 감형에 참작됐다.
▷강 전 회장은 석방 후 경영 재기 의지를 조심스럽게 내비쳤지만 쉬운 일은 아니다. 보유했던 그룹 지분은 대부분 없어졌고 남은 사재도 많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1, 2심의 유죄 판결도 걸림돌이다. 다만 STX의 전직 임직원과 노조 간부, 미화원, 경비원들까지 몰락한 전직 경영자의 선처를 호소하는 탄원서를 재판부에 제출한 점은 눈여겨볼 만하다. ‘실패한 기업인’이긴 했지만 함께 일한 사람들의 마음까지 잃지 않았다는 점은 만만찮은 무형의 자산이다. 구속 후 1년 반 만에 수의(囚衣)를 벗고 사회로 복귀한 강 전 회장이 어떤 식으로든 재기에 성공해 추락한 ‘샐러리맨 신화’를 복원할 수 있을지 주목된다.
권순활 논설위원 shkwon@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