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동아 10월호/포커스] 제3국 망명 北 노동당 간부들 ● 2014년 이후에만 10여 명 제3국 망명 ● “한국에 와 좋을 게 뭐가 있습니까”
북한 노동당 간부로 일하다 망명한 A씨는 이렇게 말했다. 외환 전문가로 유럽에서 일하다 탈북한 B씨의 얘기도 비슷하다.
“한국 사람이 탈북자와 대화할 때 관심 갖는 것은 딱 하나예요. 북한이 어떤 곳인지 확인하는 것 외에는 대화를 나누려고 하지 않아요. 비즈니스 파트너로 여기는 사람은 없다고 보면 됩니다.”
고위급 망명자 2명뿐
“한국 사람과 다를 게 아무것도 없는 아들이 취업을 못해요. 아들보다 못한 녀석도 합격한다더군요. 큰 기업이 탈북자에게는 일자리를 잘 안 줍니다. 입사하면 국정원이 이런저런 간섭을 하지 않겠느냐는 걱정도 한다더군요. 아이들은 차별받지 않으리라 여겼는데…. 그렇지 않더군요. 혼자 탈북해 북한으로 돈을 부쳐주며 살았으면 좋았을 텐데….”
B씨는 “아들이 북한에서보다 훨씬 나은 교육을 받았으되 아버지 탓에 인생은 꽝이 됐다”면서 눈시울을 붉혔다. 김일성대를 졸업한 C씨는 이렇게 말했다.
“요즘 북한 경제도 좋아졌다 하고, 중앙당 간부들이야 먹고살 만한데 한국에 올 이유가 없죠. 선생 같으면 위험 부담을 감수하겠어요?”
7월 초순 북한군 장성을 포함한 고위급 인사들이 북한을 탈출해 한국에 들어왔다는 보도가 쏟아졌다. 한 일간지가 “김정은 공포 통치에 탈출 러시가 인다”고 보도한 후 망명설이 연거푸 터진 것. 군부 실력자 중 하나인 박재경 대장 망명설이 돌더니 박승원 상장의 이름도 거론됐다.
정부가 고위급 인사 망명은 사실이 아니라고 공식 확인하면서 언론만 머쓱하게 됐다. 앞서 7월 17일 발행된 ‘신동아’ 8월호는 “김정은 집권 후 한국에 망명한 고위급 인사는 단 1명도 없다”고 보도한 바 있다(‘평양판 엑소더스의 진실-北 고위급 망명 全無’ 제하 기사 참조).
“1년에 1명 남짓 꼴로 망명한 셈인데 남북의 체제 격차와 김정은 집단의 행태를 고려할 때 매우 적은 숫자다. 최근에는 영향력 있는 사람들이 탈북하지 않느냐는 견해도 사실에 어긋난다. 두어 사람이 꽤 많은 돈을 갖고 망명했는데, 돈 가져온 것만 보고 영향력이 있다고 잘못 판단한 것으로 보인다. 김정일 집권 이후로 범위를 넓혀도 한국에 망명한 북한 고위인사는 달랑 2명뿐이다. 한국의 정보기관이 도대체 무슨 일을 하는지 모르겠다.”
한국 언론이 ‘탈북 고위 인사에 따르면’ ‘고위급 탈북자가 밝혔다’ 식으로 보도한 것은 황장엽(1923~2010) 전 노동당 비서와 함께 ‘유이’한 고위급 탈북자인 ○○○ 씨를 인용한 것이 아니면 취재원의 신상을 과장한 것이다. 김정일 집권 이후 한국 기준으로 차관급 이상 직위에 있다가 망명한 고위 인사는 ○씨와 황 전 비서가 전부다.
CNN의 오보
5월 11일 미국 CNN에 ‘고위급 탈북자’라는 박모 씨가 등장했다. CNN은 서울에서 인터뷰를 진행했다. 방송은 ‘북한 최고위층이던 사람 중 한 명’이라고 박씨를 소개했다. 어두운 실내에서 뒷모습, 옆모습만 촬영하거나 실루엣으로 처리했으나 평양 말씨의 음성은 변조 처리하지 않았다. 박씨는 “지난해 5월 5일이나 6일 김정은이 김경희를 독살하라고 지시했다. 처음에는 김정은의 경호를 맡는 974부대 정도만 독살 사실을 알고 있었으나 현재는 고위 관리들도 알고 있다”고 주장했다.
올 초 한국에 입국한 박씨는 ‘북한 최고위층이던 사람 중 한 명’이 아니다. 박씨의 북한 정보에 대한 당국의 시각도 이 인터뷰로 인해 교정된 것으로 알려졌다. 정부는 ‘김경희가 살아 있는 것’으로 파악한다. 박씨는 김경희의 안위를 파악할 수 있는 위치에 있지도 않았다.
복수의 정통한 대북 소식통에 따르면 김정은 집권 후 숙청을 비롯한 공포 정치가 이어지면서 김정일 집권 시기보다 훨씬 많은 당·정·군 간부가 북한을 이탈했다. 국정원은 2월 “김정은이 ‘튀다튀다 보위부까지 튄다’는 말을 했다”고 국회에 보고했다. “김정은 집권 이후 총살된 당·정·군 간부가 70명이 넘는다”는 게 국정원의 설명이다. 당 간부들이 북한을 이탈하는 것은 신변에 위협을 느꼈거나 비위 사실이 적발되거나 적발될 소지가 있을 때인 경우가 많다고 한다. 더 나은 삶을 찾거나 소신에 따라 탈북한 경우도 있을 것이다.
“왜 서울에 와서 고생합니까”
정통한 대북 소식통은 “2014년 이후에만 군부 인사를 비롯해 해외에 파견된 간부 10여 명이 제3국에 망명했다”고 전했다. 중국, 동남아시아 등지에서 근무하던 이들이 어느 날 잠적하거나 평양의 귀국 명령에 응하지 않고 다른 길을 간 것이다. 올해 탈북한 북한군 좌급(한국의 영관급) 인사 1명도 중국에 체류 중인데, 이 인사 탈북이 박재경 대장, 박승원 상장 망명설로 둔갑한 것으로 보인다. 김정일 시대에 탈북한 장령급(한국의 장성급) 인사가 정치적 망명을 해 중국에 거주하며, 호주에 망명해 조용히 사는 노동당 간부 출신 탈북자도 있다. 지난해엔 러시아 극동지역 조선대성은행 지점에서 일하던 간부가 은행 돈을 들고 잠적했다.
소식통은 “김정은 집권 이후 탈북한 노동당 간부 중 중국에 정착한 이가 가장 많다. 베이징이 용인한 망명이기에 평양이 돌려보내달라고 요구하지 못한다”면서 “동남아시아 국가들과 러시아에서도 북한 당국의 소환에 응하지 않고 간부들이 잠적했다”고 말했다.
‘튀다튀다 보위부까지 튀는’데도 한국이 아닌 제3국을 선택하는 탈북 간부가 더 많은 것이다. 노동당 간부 출신의 한 망명자는 다음과 같이 말했다.
“중앙당 간부쯤 되면 한국에 와 있는 사람들이 이곳에서 어떤 대접 받으면서 어떻게 사는지 잘 알아요. 해외에서 일하면서 챙겨둔 돈이 있다면 어떤 선택을 할까요? 일자리도 한국보다 제3국이 더 찾기 쉬울 거예요. 평양에서 별 탈 없이 지내는 간부라면 서울에 올 까닭이 전혀 없고요. 바보가 아닐진대 기득권을 버리고 왜 서울에 와서 고생합니까.”
평범한 탈북자들의 제3국행도 증가한다. 북한군 복무 중 휴전선을 넘어 탈북한 주승현 민주평통 자문위원(정치학 박사)은 ‘신동아’ 8월호 기고문에서 이렇게 지적했다.
“1998년 베를린 장벽이 무너질 때까지 동독에서 서독으로 넘어온 탈출자 350만 명 중 제3국행을 택한 이는 극소수인데, 우리는 탈북자 중 상당수가 제3국을 선택한다. 통일을 위해서는 북한에 사는 사람들의 마음을 얻어야 하는데, 북한 주민은 탈북 후 한국에 정착한 고향 사람들의 삶을 보면서 통일 후 자신들이 받을 대우와 삶의 질을 가늠할 것이다.”
사족(蛇足) : 1997년 괴한의 총탄에 맞아 숨진 김정일 처조카 이한영 씨를 논외로 하면 사망한 황장엽 전 노동당 비서와 함께 유이한 고위급 탈북자인 ○○○ 씨는 고령이다. 본인과 북한에 남은 가족의 신변 보호를 위해 신상이 공개되지 않았다.
2010년 김성환 당시 대통령외교안보수석비서관이 천안함 폭침이 북한 소행이라는 것을 설명하는 기자간담회에서 이 인사의 증언을 소개하면서 신상의 일부를 밝히는 잘못을 저질렀다. 이 글에서도 김 수석이 당시 공개해 알려진 내용만으로 그를 소개할 수밖에 없다. 그는 공학자 출신으로 북한에서 해군 무기체계 관련 직종에 오랜 기간 종사했으며 최고인민회의 대의원을 지냈다.
그는 현재 김일성에 반대하다 해외에 망명한 박갑동, 이상조, 정추 씨 등이 1991년 조직한 ‘구국전선’이라는 조직의 책임자를 맡고 있다. 구국전선의 실제 활동은 지지부진한 것으로 알려졌다. 그는 2013년 박근혜 정부가 들어선 후 국정원 산하 국가안보전략연구원에 적(籍)을 두게 됐다. 자문비 명목으로 활동비 및 생활비를 보조해준 것이다. 그는 고마워했다. 이듬해 국정원장이 바뀐 후 자문비 지급이 종료됐다. 한 인사는 “통일 과정의 자산인데, 정부 대접이 옹졸하기 짝이 없다”고 꼬집었다.
송홍근 기자 | carrot@donga.com
<이 기사는 신동아 2015년 10월호에 실린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