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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설위원이 만난 사람/박성원]“우파정부가 ‘좌파 어젠다’로 개혁 나서면 성공할 수 있다”

입력 | 2015-10-19 03:00:00

남경필 경기도지사





《 남경필 경기도지사는 국내의 중앙정부와 지방정부를 통틀어 처음으로 실시하는 연정(聯政)으로 주목을 받아 왔다. 도지사는 새누리당 소속이지만 경기도의회는 새누리당과 새정치민주연합이 각각 50석 대 78석으로 여소야대 상황이다. 남 지사는 사회통합부지사를 야당 쪽에 주고 야당과 정책협의를 거쳐 20개 항을 공동으로 실천할 것을 천명했다. 16일 동아미디어센터를 방문해 논설위원들과 도시락으로 점심을 함께한 남 지사는 밖에서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넓고 장기적인 연정의 밑그림을 그려 놓고 하나씩 실천해 나가고 있었다. 그는 “중요한 국가적 과제들에 대해서도 위험부담과 책임을 나누는 연정의 원리가 적용된다면 여야가 죽기 살기로 싸울 일이 없을 것”이라고 했다.》

통일후 北포용할 기반 마련해야

―경기도에서 연정을 꼭 해야겠다고 마음먹은 이유가 뭔가. 여소야대(與小野大) 경기도 의회 때문인가.


“정치를 하면서 죽 추구한 어젠다가 권력분산이다. 독일에 2년간 공부하러 갔을 때 서독 같은 포용력이 없다면 우리가 통일을 할 수 있겠나 하고 고민했다. 우리 정부체제가 지금 내각제가 아니지만 연정은 그리로 가는 일종의 징검다리가 될 수 있다. 나는 2017년 대선을 앞두고 우리 당 후보들한테 연정을 공약으로 수용할 것인지 물을 것이다. 수용하겠다고 하는 사람을 지지후보로 선택할 것이다. 경기도가 해보니까 좋다는 걸 국민들이 느끼게 해줄 것이다.”

―자꾸 독일의 연정 모델을 얘기하는데 ‘큰 꿈’이 있어서인가.

“통일 후 북한 사회를 정치사회적으로 포용할 수 있는 시스템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지금같이 양당제로 갈등이 첨예한 상황에서는 북한 주민의 권리와 이해를 제대로 담아내기 어렵다. 통일을 위해서도 다양한 목소리를 담아낼 수 있는 기반을 마련해놔야 한다. 앙겔라 메르켈이 동독 출신임에도 독일 총리직을 대과 없이 수행할 수 있는 것도 그런 기반 덕분이다.”

―얼마 전 기독민주당 소속의 메르켈 총리가 전임자인 사회민주당의 게르하르트 슈뢰더 전 총리의 출판기념회에 깜짝 출연해 화제가 됐다. 우리에게 전임자를 존중하는, 더구나 이념이 다른 지도자를 인정하는 문화가 부족한 게 아닌가.

“2000년대 초반 좌파연정으로 집권한 슈뢰더의 고민은 독일 경제가 통일 이후 성장잠재력이 떨어지면서 추락하고 있다는 것이었다. 치열한 토론 끝에 노동 유연성을 높이고 연금개혁을 하는 ‘하르츠 개혁안’을 내놓았지만, 가장 큰 지지 기반인 노조의 이해관계에 거슬리는 것이었고, 그 여파로 이듬해인 2005년 총선에서 정권을 잃었다. 정권 교체에 성공한 기민당의 메르켈 총리는 슈뢰더가 제시했던 ‘어젠다 2010’이 정파적 이해관계보다는 국가를 위한 결단이었다는 것을 알고 받아들였다. 우리 풍토에선 대선에서 정권을 뺏기면 목숨을 잃는 것처럼 기를 쓰고 빼앗기지 않으려 하지만 독일은 다르다. 정파를 초월해 미래를 위한 결정을 내릴 수 있는 정치, 우리도 이런 방향으로 가야 한다.”

연정원리, 노동개혁에도 도움

―노동개혁은 노사정 합의 이후 국회에서 영 진전이 없다. 한국 사회에서 과연 노동개혁이 가능한가.

“한미 자유무역협정(FTA)을 탄생시킨 게 노무현 정부였다. 당시는 그다지 반대가 없었다. 우파 어젠다를 좌파 정부가 추진해 성사시켰듯이, 서로 상대방의 어젠다를 갖고 와서 국가개혁에 나설 때 갈등이 확 줄어든다. 경기도에서는 연정합의문에 포함된 생활임금제를 이미 실시하고 있고 공공 산후조리원은 곧 도입할 것이다. 공공 산후조리원은 경기도 내 민간 산후조리원이 없는 9개 시군에서 하기로 했다. 우파도 이걸 좌파의 어젠다라고 무조건 반대하지 않고, 하자는 쪽도 무조건 하자는 게 아니라 민간 산후조리원이 없는 지역부터 하자는 거다. 만일 중앙정부가 연정을 하고 있다면 노동개혁의 리스크를 나눠 갖는 것도 가능하다.”

―남 지사 논법대로라면 우파 정부인 박근혜 정부에서 노동개혁이 어렵지 않겠나.

“국가가 반드시 해야 하는 어젠다는 위험을 분산하고 서로 합의해 나가는 것이 중요하다. 공통의 정책으로 시행하면서 미흡한 것은 또 바꿔 나가면 부작용을 최소화할 수 있다. 첨예한 이해관계 대립 때문에 풀지 못하는 난제들도 이렇게 하면 여야가 함께 성공시킬 수 있다고 본다.”

국회선진화법 일부 개정 필요

―국회에서 야당이 ‘법안 발목 잡기’ 수단으로 악용하고 있는 이른바 국회선진화법을 만들 때 핵심 역할을 한 사람이 바로 남 지사다. 경기도의회는 괜찮을지 몰라도 새누리당에선 이 법안을 개정하지 않으면 ‘식물국회’ 신세를 벗어날 수 없다고 한다.

“나는 잘 만들었다고 본다. 몸싸움을 없앴고 예산도 법정 기일 안에 통과시키도록 됐지 않은가. 물론 지고지순(至高至純)의 법은 아니고 비정상적인 법이다. 10개 법안을 막기 위해 나머지 990개 법안까지 가로막지 않도록 의석수의 5분의 3 이상을 필요로 하도록 했다. 그런 신사협정을 어기고 야당이 무조건 발목 잡기를 하는 건 잘못이다. 기본정신을 살리면서도 문제점을 해소하기 위해 보정이나 일부 개정은 필요하다고 본다.”

―어떤 개정 말인가. 야당이 해 주겠나.

“이념이나 정치적 이해가 갈리는 경우가 아닌, 순수한 경제 살리기에 관해서는 일정 시간이 지나면 자동 상정되도록 하는 방안을 생각할 수 있을 것이다. 연정이 정착되면 선진화법은 사실상 필요가 없다. 독일 의회에서 몸싸움하는 것 봤나.”

―예산편성권을 도의회에 나눠줬다고 들었다.

“국회 원내수석부대표를 하던 2004년 제안했던 예결위 상설화와 맥이 닿아 있다. 지난해부터 도의회에 예결위를 상설화하자, 예산 편성도 도의회와 함께 하자고 제안했다. 그랬더니 의원들이 올해 1, 2차 추경 때 자신들의 지역구에 예산 뜯어먹기를 하지 않기로 의원총회 열어 결의하고 실제로도 그렇게 했다. 내년도 예산도 전체 20조 원 중 신규 사업비로 쓸 수 있는 5000억∼7000억 원의 10%를 의회에 편성권을 맡겼다.”

―경기도가 아무리 잘하고 있다고 해도 지방자치단체장으로서는 박원순 서울시장과 비교될 수밖에 없다. 6월 메르스 사태 때 박 시장의 대응과 남 지사의 대응을 냉정히 비교하면 누가 잘한 것인가.

“박 시장의 대응에 잘한 것, 잘못한 것이 섞여 있지만 총체적으론 잘했다고 본다. 메르스가 국민에게 엄청난 공포심을 주고 있어 경기도에서도 보건복지부, 질병관리본부와 회의에서 정보공개를 요구하는 상황이었다. 박 시장이 한밤중이긴 했지만 중앙정부에 정보공개를 요구한 것은 잘한 일이다. 중앙정부는 지방정부에 권한을 줘야 한다. 정부가 혼자 끌고 가려다 문제가 커졌다고 봐야 한다.”

차기대선? 난 도지사 일에 전념중

―중앙정부가 권한을 주지 않아 경기도가 못 하는 일이 있는가.

“예를 들자면, 경기도는 관(官)이 일정한 플랫폼을 제공하고 다양한 민간 구성원들이 참여해 소통과 협업을 이뤄가는 ‘오픈 플랫폼(서비스 이용자 개방형)’을 역점을 두고 추진하고 있다. 혁신 프로젝트다. 우리는 사람들이 있기 때문에 새로 월급이 필요 없고, 재정도 있고, 땅도 있다. 지금 중소기업들이 플랫폼에 들어가려면 수수료가 50%에 가까울 만큼 고혈을 빨린다. 그런데도 중앙정부가 법도 아니고 지침으로 다 막아놓았다. 우리는 공짜로 제공할 수 있는데 그걸 중앙정부가 막고 있다니 말이 되는가.”

―결국 중앙정부를 바꾸는 수밖에 없겠다. 2017년 대통령선거 때 김무성 대표만으로는 불안하다며 친박 대선주자론을 제기하는 친박 실세도 있다. 남 지사도 차기 주자 중 한 사람 아니던가.

“저는 경기도지사 일에 전념하고 있다(웃음). 후보가 다각화되는 것은 좋은 일이지만 김 대표를 상처 내는 식으로 ‘하향평준화’해서는 안 된다. 내년 4월 총선 이후에는 나서지 말라고 해도 복수의 차기 주자군이 등장하고, 거의 난리가 날 것이다. 지도자는 내가 하고 싶다고 되는 것도 아니고, 해온 일들을 통해 가능성을 보여주고 국민이 선택해줘야 되는 것 아닌가.”

▼ “역사교과서 문제 많아 바로잡아야… 국정화는 반대”

남경필 지사는 역사 교과서 국정화 논란과 관련해 “국정화에는 반대”라고 했다. 그러면서도 “현행 교과서에 문제가 많고, 그래서 바로잡아야 한다는 데는 동의한다”고 자락을 깔았다.

“저는 삶의 철학이 자유주의다. 보수의 가치를 믿는다. 다양성이 사람의 삶을 행복하게 하고 서로 융합할 때 인간이 행복해진다. 그런 면에서 저는 역사 교과서의 국정화(國定化)에는 반대한다. 그러나 이건 국정(國政)의 문제이고 국정화 당론도 벌써 결정됐다. 정부가 의지를 갖고 추진하면 그렇게 갈 수밖에 없는 사안이다.”

―국정 교과서 문제는 박근혜 대통령과 새누리당 김무성 대표가 한목소리를 내고 있다. 내년 총선이나 후년 대선을 겨냥한다는 정치적 이해관계가 일치하기 때문이 아닐까.


“김 대표는 2013년 재·보선으로 국회에 복귀한 뒤부터 ‘근현대사 역사교실’이라는 공부모임을 만들어 의원 100여 명을 회원으로 끌어들인 바 있다. 편향된 역사 교과서를 정상화해야 한다는 것은 박 대통령만이 아니라 김 대표의 생각이기도 하다.”

―경기도 학생들이 좌편향 검정 교과서와 국정 교과서 중 어떤 교과서로 배우기를 바라는가.


“문제 있는 검정 교과서로 배우는 것도 바람직하지 않고, 그렇다고 국정 교과서로 배우는 것도 바람직하진 않다고 생각한다. 권위 있는 좋은 교과서를 만들어낼 필요가 있고, 선생님들의 편향성 문제도 해결돼야 한다. 부모님과 학생들의 선택권이라는 힘을 모을 수 있을 만큼 우수한 교과서를 만들어내는 게 중요하다. 합리적 우파들이 그런 교과서를 만들어내 시장에서 채택되게 해야 한다.”

박성원 논설위원

남 지사는 역사 교과서 관련 질문이 계속되자 “당론으로 채택됐고 도의회에서 충돌까지 빚은 사안인 만큼 지사로서 더 이상은 언급하지 않겠다”고 선을 그었다.

대표집필 박성원 논설위원 swpark@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