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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엠디팩트] 영화 ‘사도’, 어쩌면 ‘교육잔혹사’ … 여전히 주위에 흔한 ‘영조’ 부모들

입력 | 2015-10-19 17:04:00


‘현실적 부자관계’ 묘사로 사극 넘어 2030 공감 얻어
국내 아동 학업스트레스, 유니세프 조사대상 1위

 

“어이가 없네”. 취업준비생 윤모 씨(28·여)가 영화 ‘사도’의 엔딩 크레딧이 올라가자마자 던진 말이다. “영조(송강호 분)는 대체 마지막에 왜 사도세자에게 ‘너와 이제야 이런 이야기를 하게 돼 유감’이라는 말을 남기냐”며 “결국엔 아들 죽여 놓고 자기합리화로 끝난 거잖아” 라는 짧은 감상평을 남겼다. 무엇보다 “송강호가 너무 연기를 잘 하니까 영조 얼굴에 우리 아빠 얼굴이 겹쳐져서 보는 내내 열받았다”는 속내를 내비쳤다.
 
지난 16일 개봉한 영화 ‘사도’는 영조와 이선(사도세자, 유아인 분)의 부자관계에 집중 조명, 개봉 26일 만에 600만 관객을 돌파했다. 1762년 5월 사도세자가 뒤주에 갇혀 살해된 ‘임오화변’이 벌어질 수밖에 없었던 비극적인 이야기를 토대로 전개된다.
영화를 따라가다 보면 한 사람의 제대로 된 성장은 결국 ‘부모와의 관계’에서 비롯된다는 주제에 도달한다. 자녀에게 지나치게 기대하며 ‘자신의 방식대로’ 애정을 표현한 아버지 영조와 압박감에 천천히 미쳐가는 아들 사도세자의 관계를 표현한 영화는 단순한 사극에 그치지 않고 유독 2030세대의 공감을 얻고 있다.
 
실제로 2030 젊은이들은 ‘사교육 열풍’의 중심에 서 있던 세대다. 1980~1990년대에 태어난 사람들이 학교에 입학할 무렵엔 학업만능주의가 팽배해졌다. 누구나 교육을 통해 신분상승을 노리고, 2030세대가 초등학교 무렵부터 하교 후 수많은 학원을 ‘뺑뺑이’ 도는 게 일상이었다.
 
1997년 초등학교 교과 과정에 영어 과목이 도입됐고, 중1 학생이 ‘수학의 정석’을 풀어야 ‘공부 좀 한다’는 인식이 당연시됐다. 심지어 수행평가·봉사활동 등 챙겨야 할 게 자꾸만 늘어나기 시작했다. 학교, 학원, 과외, 야간자율학습으로 빼곡한 학창시절을 보내야 했다.
 
윤 씨는 “초등학교 무렵부터 부모님은 내 성적에만 집착하기 시작했다”며 “1학년 때부터 받아쓰기를 하나라도 틀리면 무섭도록 매를 맞았던 게 생각난다”고 말했다. 유년시절부터 이어진 부모님의 ‘공부 타령’은 수능시험 직전까지 이어졌다. 부모님은 항상 자신들은 ‘고졸이라 서러운 게 많다’며 윤 씨와 사촌들을 끊임없이 비교했다.
 
그는 고교 시절 전교 상위권을 유지했지만 막상 부모님이 원하는 대학에 입학하지 못했다. 윤 씨의 아버지는 1년간 그와 대화를 거의 하지 않았다. 부모님의 뜻에 따라 ‘취업이 잘 되는’ 경영학과에 진학했다. 그는 사실 심리학과에 진학하고 싶었다. 재미가 없으니 학점도 남들 따라가는 수준에 머물렀다. 아버지는 불같이 화를 내며 ‘안정적인 공무원을 준비하는 게 네 인생을 위해 낫겠다’며 강제로 학원에 등록시켰다. 그렇게 1년을 또 날렸다. 합격하지 못한 윤 씨에게 아버지는 다시 등을 돌렸다. 심리학과에 진학하고 싶다고 조심스레 용기를 내 말해봤지만 ‘그런 게 돈이 되고 성공할 건덕지나 되냐’는 비난만 돌아왔다.
 
아직 취업하지 못한 그는 부모님을 만나는 게 불편해 명절에도 독서실로 향한다. 그는 “아빠가 원망스럽지만 그런 아빠에게 잘 보이고 싶어하는 내 모습도 서글프다”며 “사도세자가 아버지를 불편해하면서도 아버지이기 때문에 사랑받고 싶어하고, 마음에 들려는 모습이 남일 같지 않았다”고 말했다. 너무 화가 나고 밉지만 그래도 사랑받고 싶은 게 그의 심정이다.
 
‘나는 어릴 적 공부가 제일 하고 싶었는데, 너는 이런 환경에서 왜 공부를 안하니?’, ‘내가 니 나이 때에는…’. 영조의 대사가 하나하나 나올 때마다 영화관에선 탄식이 흘러나왔다. 자녀들이 지금도 부모에게 한번쯤은 들어본 소리다. 250년 전 영조의 수직적인 교육방식은 예나 지금이나 그대로 이어지고 있다.
 
영조가 이선에게 바랐듯 요즘 부모들도 자녀가 원하는 것보다 ‘내가 바라는 모습의 자녀’, ‘내 자식이기 때문에 내가 원하는 대로 교육하겠다’는 입장이다. 영조도 어릴 적 뛰어났던 아들이 어느새 공부를 멀리하고, 그림 ‘따위’나 그리는 모습에 부아가 치민다. 그림이나 무예는 영조가 생각하는 ‘좋은 임금’이 되기 위한 조건이 아니었기 때문에 아들에게 실망하고 모질게 대하기 시작한다.
 
영조는 갈수록 맘에 들지 않는 세자에게 하나하나 트집을 잡고 심지어는 가뭄이 생긴 것조차 아들 탓으로 돌린다. 사도세자 입장에서는 ‘어느 장단에 맞춰야 할 지’ 답답할 뿐이다. 결국 미쳐가는 사도세자를 뒤주에 가둬놓고 영조는 “이게 다 너 잘 되라고 한 일”이라고 말할 뿐이다.
 
이같은 영조의 행동은 콤플렉스가 만들어낸 잘못된 교육방침으로 보는 전문가도 있다. 영조는 콤플렉스에 시달리던 사람이었다. 무수리 출신 어머니, 평생 형제를 암살했다는 의혹에 시달리며 ‘완벽한 왕이 돼야 겠다’는 강박에 빠지게 된다. 이후 뒤늦게 얻은 아들 사도세자에게 자신과 같은 상황에 놓이지 않도록 철저하게 교육시킨다.
 
문제는 영조의 교육방침은 기준조차 명확하지 않다는 점이다. 성숙한 부모는 자식을 향한 자신의 바람을 다스릴 줄 알지만 콤플렉스나 마음의 문제를 가진 사람은 자칫 자신의 기분에 따라 아이를 조련하기 십상이다.
 
250년이 지난 현재에도 수많은 ‘영조’가 존재한다. 보건사회연구원이 발표한 ‘한국아동의 주관적 웰빙수준과 정책과제’ 보고서에선 국내 아동들은 학업 스트레스 지수에서 50.5%를 기록해 유니세프 조사대상 30개국 중 1위를 기록했다. 조사대상 29개국의 평균인 33.3%보다 훨씬 높은 수준이다.
 
영화에서 사도세자가 이상행동을 보이는 것도 아버지의 행동에서 비롯됐다고 볼 수 있다. 아이들은 자신이 닮고 싶은 사람에게 칭찬과 벌을 받으면서 감정을 조절하고 인내심을 배워나간다. 하지만 동경하는 대상으로부터 비난만 지속된다면 얘기가 달라진다.
 
김의정 이대목동병원 정신건강의학과 교수는 “부모가 화를 자주 내거나, 짜증을 달고 살거나, 폭력적이면 자녀가 성장 후 충동조절장애에 노출될 우려가 높다”며 “부모가 습관적으로 화를 내거나 폭력을 행사하면 아이들은 분노를 표출하지 못하고 쌓아두지만 문제는 사회·경제적으로 독립한 뒤”라고 지적했다. 즉 “아주 작은 사건에도 어릴 적 축적된 분노가 자신도 모르게 표출돼 사회적으로 문제를 일으킬 수 있다”고 덧붙였다.
 
실제로 건강보험심사평가원이 올해 발표한 자료를 살펴보면 지난해 인격·행동장애 진단을 받은 인원은 1만3000명으로 이중 20대가 전체 진료의 28%를 차지했다. 전문가들은 이같은 상황을 학창시절 인성교육은커녕 ‘공부만 잘하면 성공한다’는 학업만능주의 속에서 부모이 기대에 부응하기 위해 노력했지만 막상 보상은 없는 막막한 현실이 빚어낸 결과로 보기도 한다.
 
소냐 류보머스키 미국 캘리포니아대 교수는 ‘행복한 사람이 성공한다’고 강조한다. 그는 “행복한 학생들은 더 창의적이고 시험에 대한 압박도 적어 성적이 더 좋을 수밖에 없다”며 “행복을 결정하는 요인은 50%가 유전, 10%가 환경, 나머지 40%는 노력인 만큼 학생들이 스스로 행복을 위해 노력할 수 있도록 주변에서 도와야 한다”고 말했다.
 
영조는 사도가 죽은 뒤 ‘애달프게 생각한다’는 뜻의 시호를 내리며 세자의 지위를 복원했다. 윤 씨는 “그럼 뭐해, 이미 아들은 슬픈 채로 죽었는데. 결국 아들 죽인 아버지의 정신승리 아니겠어”라고 냉정한 반응을 보였다.
 
취재 = 정희원 기자 md@mdfact.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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