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직자 ‘고난의 시대’]구직자 울리는 ‘속빈 자격증’
정부에 등록된 민간자격증의 종류다. 이러한 민간자격증은 1만7289종(19일 기준)에 이른다. 명칭은 다르지만 사실상 같은 자격인 것도 수두룩하다. 정부가 대입 전형에 인성평가 반영을 고려한다는 소식이 퍼지며 관심을 끈 인성 관련 자격증만 해도 인성지도사, 인성독서전문가, 분노조절인성지도사 등 272개나 된다. 등록되지 않은 분야로는 팔씨름 줄다리기 자격증까지 있다.
민간자격증이 폭증하면서 관련 학원들은 경쟁적으로 ‘자격증 장사’에 나서고 있다. 이 과정에서 ‘국가 등록 최초, 유일 자격증’이라거나 ‘누구나 쉽게 합격, 취업 및 고소득 보장’ 같은 광고가 쏟아지고 있다.
항공기 승무원 지망생인 박슬기 씨(21·여)는 올 8월 ‘항공권발권자격증(CRS·Computer Reservation System Certificate)’ 취득 과정이 개설된 한 학원에 등록했다. 두 달 치 수강료는 179만 원. “국내 A항공사의 직인이 찍힌 수료증을 받을 수 있어 취업에 유리하다”는 학원의 설명을 듣고 목돈을 지불했다.
부푼 기대 속에 학원을 다니던 박 씨는 혹시나 하는 마음에 해당 항공사에 광고 내용을 문의했다. 그러나 항공사 측은 “우리와 전혀 상관없는 자격증”이라고 답변했다. 박 씨는 “학원에 환불을 요청하자 계속 미루다가 한국소비자원에 신고한 뒤에야 겨우 돈을 돌려받았다”고 말했다.
전업주부도 자격증 학원의 단골 마케팅 대상이다. 경남 진주시 주부 민모 씨(51)는 두 달 전 이웃들과 함께 아동심리상담사 자격증 학원에 등록했다. 그는 “월 30만 원 수강료만 내고 하루 2시간씩 강의 듣기와 문제 풀이를 하면 직장 경력이 없는 주부도 쉽게 취직할 수 있다는 말에 끌려 등록했는데 아직 제대로 취업했다는 사람은 보지 못했다”며 “괜히 돈만 낭비하는 건 아닌지 걱정”이라고 털어놨다.
○ 업무 연관 없는 자격증은 취업에 독
큰돈을 들여 딴 민간자격증이 취업과 직결되는 일은 많지 않다. 한 대형 통신사의 인사담당자는 “굴착기 자격증이나 축구공인심판 자격증 등을 과시하는 지원자도 있었는데 업무와 연관 없는 자격증을 따는 데 시간을 낭비한 것이라 감점 요인이 될 수 있다”고 말했다.
결국 취업과 큰 연관이 없는 자격증은 돈만 날리게 되는 셈이다. 일부 학원들의 허위·과장 광고는 이를 더 부채질하고 있다. 새누리당 김정훈 의원이 한국소비자원으로부터 받은 ‘민간자격증 관련 소비자상담 및 피해구제 접수 현황’을 보면 2011년부터 지난해까지 소비자상담 건수는 총 8143건이었으며 피해구제 건수는 456건으로 집계됐다. 피해금액은 1억2426만 원에 달했다.
민간자격증 발급기관의 난립으로 피해를 보는 이들도 속속 등장하고 있다. 한유라(가명·42·여) 씨는 지난달 서울 강남구의 한 직업전문학원에 수강 신청을 했다가 황당한 경험을 했다. 한 씨가 상담을 받으러 이 학원에 방문했을 때만 해도 학원 관계자는 “전국 유일 직업상담사 학원으로 자격증만 따면 취업도 수월할 것”이라고 했다. 이에 한 씨는 2개월에 33만 원인 수강료를 내고 직업상담사 자격증 취득 과정에 등록했다.
하지만 이 학원 원장은 이달 초 수강생과 강사 몰래 학원 문을 닫았다. 한 씨는 “학원 홈페이지에 소개된 대표원장은 작년에 사망했고 강사들도 임금 체불로 고통받고 있다”며 “절박한 마음을 악용해 사기를 칠 줄은 정말 몰랐다”고 하소연했다. 한 씨는 서울 강남경찰서에 학원장 등을 사기 혐의로 고소했다.
취업포털 ‘사람인’의 임민욱 취업컨설턴트는 “직무 연관성이 없는 민간자격증은 오히려 구직자의 지원 동기나 진실성을 의심받게 해 부정적 평가를 받게 할 수 있다”며 “취업하려는 직종에 맞는 자격증이 어떤 것인지 사전에 검토하고 준비해야 시간 낭비와 손해를 막을 수 있다”고 조언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