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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업 위해 이력서 채운 ‘자격증 스펙’… 기업은 “쓸모없다”

입력 | 2015-10-20 03:00:00

[구직자 ‘고난의 시대’]구직자 울리는 ‘속빈 자격증’




웃음치료사, 심리상담사, 독서지도사, 스피치지도사, 미술상담사, 타로상담사….

정부에 등록된 민간자격증의 종류다. 이러한 민간자격증은 1만7289종(19일 기준)에 이른다. 명칭은 다르지만 사실상 같은 자격인 것도 수두룩하다. 정부가 대입 전형에 인성평가 반영을 고려한다는 소식이 퍼지며 관심을 끈 인성 관련 자격증만 해도 인성지도사, 인성독서전문가, 분노조절인성지도사 등 272개나 된다. 등록되지 않은 분야로는 팔씨름 줄다리기 자격증까지 있다.

민간자격증이 폭증하면서 관련 학원들은 경쟁적으로 ‘자격증 장사’에 나서고 있다. 이 과정에서 ‘국가 등록 최초, 유일 자격증’이라거나 ‘누구나 쉽게 합격, 취업 및 고소득 보장’ 같은 광고가 쏟아지고 있다.

○ 허위·과장 광고에 피해 속출

항공기 승무원 지망생인 박슬기 씨(21·여)는 올 8월 ‘항공권발권자격증(CRS·Computer Reservation System Certificate)’ 취득 과정이 개설된 한 학원에 등록했다. 두 달 치 수강료는 179만 원. “국내 A항공사의 직인이 찍힌 수료증을 받을 수 있어 취업에 유리하다”는 학원의 설명을 듣고 목돈을 지불했다.

부푼 기대 속에 학원을 다니던 박 씨는 혹시나 하는 마음에 해당 항공사에 광고 내용을 문의했다. 그러나 항공사 측은 “우리와 전혀 상관없는 자격증”이라고 답변했다. 박 씨는 “학원에 환불을 요청하자 계속 미루다가 한국소비자원에 신고한 뒤에야 겨우 돈을 돌려받았다”고 말했다.

전업주부도 자격증 학원의 단골 마케팅 대상이다. 경남 진주시 주부 민모 씨(51)는 두 달 전 이웃들과 함께 아동심리상담사 자격증 학원에 등록했다. 그는 “월 30만 원 수강료만 내고 하루 2시간씩 강의 듣기와 문제 풀이를 하면 직장 경력이 없는 주부도 쉽게 취직할 수 있다는 말에 끌려 등록했는데 아직 제대로 취업했다는 사람은 보지 못했다”며 “괜히 돈만 낭비하는 건 아닌지 걱정”이라고 털어놨다.

○ 업무 연관 없는 자격증은 취업에 독


큰돈을 들여 딴 민간자격증이 취업과 직결되는 일은 많지 않다. 한 대형 통신사의 인사담당자는 “굴착기 자격증이나 축구공인심판 자격증 등을 과시하는 지원자도 있었는데 업무와 연관 없는 자격증을 따는 데 시간을 낭비한 것이라 감점 요인이 될 수 있다”고 말했다.

입사지원서에 최종 학력, 자격증 등 지원자의 스펙을 드러내는 항목의 기재를 막는 회사가 늘고 있는 점도 또 다른 변수다. 한 대기업 채용담당자는 “자격증 취득 과정에서 얻은 독특한 경험이나 직무와 연관된 지식 획득 사례가 중요하다”면서도 “수많은 지원자를 평가하는 와중에 자격증 취득 과정에서의 독특한 이력이 기억에 남는 경우는 거의 없다”고 설명했다.

결국 취업과 큰 연관이 없는 자격증은 돈만 날리게 되는 셈이다. 일부 학원들의 허위·과장 광고는 이를 더 부채질하고 있다. 새누리당 김정훈 의원이 한국소비자원으로부터 받은 ‘민간자격증 관련 소비자상담 및 피해구제 접수 현황’을 보면 2011년부터 지난해까지 소비자상담 건수는 총 8143건이었으며 피해구제 건수는 456건으로 집계됐다. 피해금액은 1억2426만 원에 달했다.

민간자격증 발급기관의 난립으로 피해를 보는 이들도 속속 등장하고 있다. 한유라(가명·42·여) 씨는 지난달 서울 강남구의 한 직업전문학원에 수강 신청을 했다가 황당한 경험을 했다. 한 씨가 상담을 받으러 이 학원에 방문했을 때만 해도 학원 관계자는 “전국 유일 직업상담사 학원으로 자격증만 따면 취업도 수월할 것”이라고 했다. 이에 한 씨는 2개월에 33만 원인 수강료를 내고 직업상담사 자격증 취득 과정에 등록했다.

하지만 이 학원 원장은 이달 초 수강생과 강사 몰래 학원 문을 닫았다. 한 씨는 “학원 홈페이지에 소개된 대표원장은 작년에 사망했고 강사들도 임금 체불로 고통받고 있다”며 “절박한 마음을 악용해 사기를 칠 줄은 정말 몰랐다”고 하소연했다. 한 씨는 서울 강남경찰서에 학원장 등을 사기 혐의로 고소했다.

취업포털 ‘사람인’의 임민욱 취업컨설턴트는 “직무 연관성이 없는 민간자격증은 오히려 구직자의 지원 동기나 진실성을 의심받게 해 부정적 평가를 받게 할 수 있다”며 “취업하려는 직종에 맞는 자격증이 어떤 것인지 사전에 검토하고 준비해야 시간 낭비와 손해를 막을 수 있다”고 조언했다.

박창규 kyu@donga.com·김재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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