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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을 맞으며/전원균]같이 갑시다! 이산가족 고향에

입력 | 2015-10-20 03:00:00


전원균 전 대한적십자사 전북지사 사무국장

그리운 고향 함경북도 회령에는 언제 가볼 수 있을까. 내 몸에는 회령의 피가 흐르고 있다. 아버지 어머니의 고향, 나는 그곳에 가고 싶다. 두 분은 자주 ‘나의 살던 고향은’으로 시작하는 ‘고향의 봄’을 부르시며 내 손등에 눈물을 적신다. 어린 시절 생각에 가끔 부침개를 해 드리지만 기억이 흐려진 아버지는 목이 멜 뿐이다. 돌아오는 일요일 두 분 모시고 임진각 ‘회령 동산’에 들러 친구 분들과 술 한잔 나누시면 기억이 되살아나실까.

내일이면 텔레비전에서 남북 이산가족이 오열하는 모습을 보고 더욱 가슴 아파하실 아버지는 마른기침만 하실 것이다. 아버지의 기침 소리에 어머니는 녹슨 철조망이 온갖 사연을 안고 있듯 보고 싶은 부모 형제를 보기 전에는 ‘죽더라도 죽을 수 없다’는 목소리를 이명(耳鳴)처럼 들으시겠지.

이산가족 문제는 정치적 상황에 관계없이 인도적 원칙에 따른 해결을 우선해야 한다. 그동안 북측은 이산가족 문제는 남북 관계가 좋아지면 다 해결될 것이라며 대북 지원과 남북 간 정치적 문제에 연계해 왔다. 그러는 사이 이산가족은 해를 거듭하면서 고령화로 세상을 떠나고 있다. 하루빨리 생사 확인이라도 이루어지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북한 당국과 조선적십자회는 인도주의라는 적십자 이념 구현에 나서 주기 바란다.

지난 세월 이산가족 상봉 현장에서 피 말리던 일들이 주마등처럼 스쳐 간다. 나 자신 이산가족의 아픔을 갖고 있지만 적십자사 직원이라는 이유 때문에 혹시나 특혜라는 오해를 살까 봐 아예 신청조차 하지 않았다. 기자들의 질문 공세를 피해 숨바꼭질하던 나였지만 내외신기자 간담회에서 당당히 사회를 맡아 이끌던 기억들, 북측 화가를 만난 가족의 테이블을 서성거리며 형수님의 아버지이신 고(故) 임수근 화백의 생사를 묻고 공중전화로 달려가 형수님에게 숨 가쁜 목소리로 안부를 전하던 씁쓸한 마음을 지울 수 없다.

지금도 많은 이산가족의 염원은 얼굴이라도 한 번 보는 것이다. 아니 생사 확인이라도 할 수 있기를 고대하며 생사가 확인된 가족은 물론이고 모든 이산가족이 서신 교환이라도 이루어지기를 갈망하고 있다. 또 상봉 가족은 만났다는 안도감보다 그 후에 벌어질 일들의 정신적 고통에 빠져 힘들어한다.

우리 민족의 젖줄 한강은 오늘도 아픈 시련 되새기며 말없이 흐른다. 통일의 꿈을 키우며 일구어 낸 자유로 임진강 건너 북녘 땅 모습은 예나 지금이나 변함이 없다. 세관 남북출입사무소를 넘나드는 차량은 모두가 우리의 차량일 뿐이다. 오두산 전망대를 뒤로하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곱게 핀 코스모스가 마음을 위로한다.

지나간 봄은 이듬해가 되면 다시 찾아오는 봄소식에 아쉬움을 달래지만 이산가족의 삶이란 대답 없는 메아리와 같다. 저 가깝고도 먼 북녘 땅과 남한 땅에 이산가족들이 외치는 ‘통일의 아우성’이 전해지지 않는 것은 휴전선이 가로막고 있기 때문이런가.

전원균 전 대한적십자사 전북지사 사무국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