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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J 정부 국정교과서, 귀하신 몸 된 까닭

입력 | 2015-10-21 00:00:00

[주간동아 1009호/특집 | ‘역사 국정교과서’ 파동]
절판된 책, 5만 원에도 없어서 못 사…공시생들 “교과서 바뀌기 전에 합격하자”




‘국사 교과서 팔아요. 택배비 미포함 5만 원에 드려요. 이거 절판이라 구할 곳이 없어요.’

7월 인터넷 포털사이트 네이버 카페 ‘중고나라’에 올라온 글이다. 이 책은 7차 교육과정(2002~2006) 때 나온 국사 과목 국정교과서(7차 국사 교과서)의 복사본. 해당 교과서 정본이 서점에서 2000원대에 팔린 것을 감안하면 20배가 넘는 가격이다. 그럼에도 게시글에는 나흘 만에 ‘팔렸다’는 댓글이 올라왔다.

공무원시험 관련 인터넷 카페에서도 7차 국사 교과서는 부르는 게 값이다. 가격은 보통 2만 원에서 시작한다. 이 교과서의 헌책을 판다는 누리꾼과 연결이 됐다. 그는 “보물 같은 책이다. 예전에 역사부도책이랑 묶어 6만 원에 벼룩시장에 내놓자마자 구매 문의가 쇄도했다”고 말했다.

7차 국사 교과서는 2012년 무렵부터 ‘귀하신 몸’이 됐다. 교보문고 같은 대형서점이나 헌책방에서는 아예 구할 수가 없다. 인터넷 벼룩시장에서는 스프링 제본이 나오자마자 2만~3만 원에 팔려나간다. 초판이 나온 지 13년이나 된 교과서의 쟁탈전이 벌어지고 있는 이유는 뭘까.

7차 국사 교과서는 2002년 초판, 2006년 일부 오기를 수정해 제2판을 찍어 2012년까지 발행된 국정교과서다. 저작권자는 교육과학기술부(현 교육부)와 국사편찬위원회이고, 편찬자는 국정도서편찬위원회다. 지금까지 고교에서 사용한 역사 교과서 가운데 마지막 국정교과서다.

인터넷 벼룩시장에서 7차 교육과정 국사 국정교과서를 판매하는 광고글.


‘공시’ 출제 기준은 국정교과서

2008~2012년 이 교과서를 발행·인쇄한 두산동아 측에 따르면 이 책은 2013년 절판됐다. 역사적 사실 기술과 관련해 학계에서 논란이 일었고, 2010년 국사 과목이 ‘한국사’로 바뀌면서 검정교과서 체제로 전환됐기 때문이다. 2011년 고교 1학년 학생들은 한국사 검정교과서로 공부했지만, 2~3학년 학생의 일부는 졸업 전인 2012년까지 7차 국사 교과서를 사용했다. 2013년부터 이 책은 신간 도서 시장에서 자취를 감췄다.

문제는 7차 국사 교과서가 절판되자마자 ‘없어서 못 사는’ 책이 됐다는 것. 특히 7·9급 공무원시험과 경찰공무원시험 교재시장에서 절대 강자로 떠올랐다. 그 이유는 시험 문제의 오류 시정이나 문제 출제의 기준이 되는 교과서이기 때문이다.

교육기업 에듀윌의 신형철 한국사 강사는 “공무원시험 문제에 대해 수험자가 이의를 제기하면, 출제 당국에서 오류 여부를 판단하는 기준은 국정교과서 본문이다. 또한 경찰공무원시험 문제는 국정교과서 지문을 거의 그대로 출제하는 경우가 많아서 수험생들이 ‘국사 공부의 바이블’처럼 여기는 경향이 있다”고 말했다.

공무원시험에 나오는 한국사 문제는 7차 교과서보다 훨씬 넓은 범위에서 출제된다. 따라서 공무원시험 준비생(공시생)들은 7차 국사 교과서뿐 아니라 각종 참고서, 기출문제집, 강사들이 만든 요약서 등 다양한 책을 달달 외운다. 그럼에도 수험생들이 7차 국사 교과서를 사려고 안달인 이유는 핵심 내용을 효율적으로 정리하는 데 편리하기 때문이다. 공무원시험을 준비하는 김혜인(29·여) 씨는 “현재 공시생 대부분이 고교 때 7차 국사 교과서를 사용한 세대”라며 “내용이 익숙하고 책이 비교적 얇아서(약 250쪽) 찾게 된다”고 말했다.

2013년 절판된 후 현재 정가보다 훨씬 비싸게 팔리는 국사 국정교과서(왼쪽)와 2011년 도입된 한국사 검정교과서 6종.



국정교과서 따라 우왕좌왕


수험생들의 지나친 불안심리가 교과서 품귀 현상을 빚었다는 견해도 있다. 교육기업 지안에듀의 임찬호 한국사 강사는 “국정교과서에 나온 내용은 시중에서 파는 참고서에도 다 실려 있어 내용을 기준으로 보면 교과서를 꼭 살 필요는 없다. 하지만 시험에 대한 수험생들의 불안이 워낙 큰 것이 문제다. 공시생 사이에서 ‘교과서 지문이 시험에 나온다’는 이야기가 돌면 일단 ‘사놓고 보자’는 심리가 작용한다”고 설명했다. 1000쪽이 넘는 공무원시험 수험서를 보고도 따로 국정교과서를 보지 않으면 불안해진다는 설명이다.

최근 재조명된 역사 교과서 국정화로 공시생들은 술렁이는 분위기다. 김혜인 씨는 “새로 나올 국정교과서가 무슨 내용을 담을지 몰라서 걱정된다. 요즘 공시생 사이에선 ‘교과서 바뀌기 전에 빨리 시험에 합격하자’는 분위기가 굳어졌다”고 말했다.

한국사능력검정시험 성적표가 필요한 행정고등고시(행시) 수험생도 마찬가지다. 행시 준비생인 정지은(29·가명) 씨는 “2012년부터 행시를 보려면 한국사능력검정시험 2급 이상이 필요했기 때문에 당시 고시촌에서 난리가 났다. 다들 국정교과서 찾는다고 대형서점으로 우르르 몰려갔던 기억이 난다”며 “새로운 국정교과서가 나오면 수험생들은 또 그 교과서를 구하느라 우왕좌왕할 것”이라고 말했다. 한국사능력검정시험 수험생들도 국정교과서의 수요자임을 감안하면 연 수십 만 명의 수험생들이 전국에 얼마 안 남은 국정교과서를 가지려고 치열하게 경쟁하는 것이다.

역사 국정교과서의 기술 방향은 아직 미정인 것으로 알려졌다. 역사 국정교과서의 집필과 연구를 주도하는 국사편찬위원회 관계자는 “집필에 대한 세부적 기준을 논의 중이며, 7차 국사 교과서 내용을 바탕으로 할지 여부도 아직 결정된 바 없다”고 말했다. 일각에서는 새로운 국정교과서의 근현대사 부분이 줄어들 가능성이 있다고 본다.

신형철 강사는 “사회적 이슈인 근현대사 부분은 검정교과서에 비해 국정교과서에서 그 내용이 줄어들 수 있다. 그러면 공시생들은 근현대사를 충분히 공부하기 위해 더욱 다양한 교재를 참고해야 할 것”이라며 “새로운 국정교과서 외 다른 수험서나 한국사 개설서를 구매해야 할 것”이라고 설명했다.

공무원시험 준비생들에게 역사 국정교과서는 필수 기본서 중 하나다. 서울 노량진의 한 공무원고시학원 풍경.



김지현 객원기자 bombom@donga.com 
<이 기사는 주간동아 2015.10.21.~10.27|1008호 에 실린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