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시리즈에 대비한 삼성의 자체 평가전이 20일 대구구장에서 야간경기로 펼쳐졌다. 그러나 같은 시각 삼성 야구단 김인 사장은 대국민 사과문을 읽고 있었다. 대구|김진환 기자 kwangshin00@donga.com
■ 해외원정도박 사태 안이한 대처 논란
무죄 추정 원칙 고수 ‘늑장 대응’ 아쉬워
여론에 떠밀려 사과…구단 이미지 추락
선수단 관리 오점…KBO 역시 방관 책임
삼성 야구단은 그동안 삼성그룹의 초일류 이미지를 강화하는 도구로 기능했다. 2011시즌부터 한국시리즈 4년, 정규시즌 5년 연속 우승의 위업을 쌓는 동안 삼성 야구단은 놀랍게도 외부의 적을 거의 만들지 않았다. 적재적소의 전력보강, 통 큰 투자와 육성, 프런트와 현장의 소통, 장기 팀 플랜 마련 등 삼성 야구단의 시스템은 곧 1등 삼성의 이미지 그 자체였다.
여기서 의아한 점은 삼성의 대응이다. 의혹이 제기된 이후 여태껏 삼성 야구단과 삼성그룹의 대처는 20일 저녁 입장 발표 때까지 한마디로 ‘무(無)대응’이었다. ‘무죄 추정의 원칙’이라는 방패 뒤에 숨어 마치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던 양, KS 대비 훈련을 진행하고 있었다.
그러나 여론이 생각대로 가라앉지 않자 결국 삼성 야구단 김인 사장이 직접 ‘대국민 사과’를 하기에 이르렀다. “의혹을 받고 있는 선수들을 한국시리즈에 출전시키지 않기로 결정했다”고 발표했다. 선수 이름을 공개하지 않은 데서 진퇴양난에 처한 삼성의 고민이 읽힌다. 수사가 진행 단계인 상황에서 혐의선수를 먼저 밝히기는 어려웠을 것이다. 그러나 KS를 하루 앞둔 25일 엔트리가 발표되면 원정도박 혐의 선수들이 누구일지는 자연스럽게 노출될 것이다.
오히려 삼성이 가장 뼈아프게 받아들여야 할 대목은 김 사장이 밝힌 그대로 ‘선수단 관리를 철저히 하지 못한 데’있다. ‘관리의 삼성’이라는 명성에 흠집이 생긴 것이다. 삼성이 ‘예전부터 이런 의혹에 대해 전혀 모르고 있었느냐’는 의구심도 남는다. 과거 삼성 선수가 연루된 도박 전력을 고려하면 더욱 그렇다. 삼성 야구단이 사태를 가벼이 여기다 일을 키웠다는 지적을 면하기 어렵다.
삼성의 안이함은 대국민 사과 시점에서도 드러난다. ‘만에 하나 사실로 밝혀질 수 있는 일이라면 선제적 조치를 취하는 것이 삼성그룹의 신뢰 손상을 최소화하는 길’이었을 텐데 어찌된 영문인지 무대응으로 일관했다. 삼성이 침묵하는 사이, 대형 포털 사이트에 삼성 라이온즈를 검색하면 ‘도박’이 연관 검색어로 가장 많이 노출됐다. 도박 의혹을 받고 있는 선수의 이름이 사방으로 퍼져나갔고, 기정사실화됐다.
KBO도 책임론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의혹 제기 시점부터 지금까지 삼성을 향해 ‘어떤 식으로든 입장을 밝히라’고 압박할 수 있는 위치에 있음에도 KBO는 그 어떤 목소리도 내지 않았다. KBO가 삼성의 힘을 과신하고 방관하다가 일을 키웠다는 소리를 들어도 할 말이 없게 됐다.
김영준 기자 gatzby@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