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BS ‘애인있어요’ 최진언(지진희)은 왜 ‘욕 안 먹는 불륜남’이 됐나요
한국 드라마 속 불륜남의 최후는 대체로 비참했습니다. SBS ‘아내의 유혹’의 정교빈은 내연녀 신애리와 바다에 빠져 죽었고, KBS ‘왕가네 식구들’의 허세달도 팬티만 입은 채 집에서 쫓겨났죠. 최근 종영한 tvN ‘두번째 스무살’에서도 교수 남편 김우철은 학교에서 쫓겨나 지방에 있는 유배대로 갑니다. 불륜남은 ‘국민 욕받이’가 되는 경우가 많았죠.
드라마 전반부에서 해강은 엘리베이터에서 두 사람이 키스하거나 빗속에서 하룻밤을 보내는 ‘현장’들을 목격하며 분노합니다. 진언은 미안하다는 말 대신 아버지에게 “이 사람 좀 치워주세요. 버려주세요”라며 이혼을 재촉합니다. 여기까지 보면 이 드라마는 뻔한 불륜을 그린 ‘사랑과 전쟁’처럼 막장 드라마에 가깝습니다.
그러나 이 드라마는 진언의 표현대로 해강에 대한 사랑이 왜 ‘거덜났는지’를 곳곳에 배치했습니다. 해강은 죽은 어린 딸을 그리워하는 진언을 이해하지 못하고 부부간의 잠자리조차 상속을 위한 임신의 도구로 여기죠. 진언은 정의가 아닌 돈과 힘을 좇는 냉혈한이 돼 가는 아내의 모습에 진저리 칩니다.
깊게 파인 미간과 함께 보이는 지진희의 눈빛 연기는 드라마 속 각종 설정들에 묘한 설득력을 부여합니다. 그가 해강을 왜 버리게 됐고, 지금 얼마나 후회하고 있는지, 다시 찾은 해강을 얼마나 사랑하는지가 묻어나죠. 이제 진언은 해강이 무의식적으로 설정한 벨소리, 사소한 말버릇에서도 예전 아내의 모습을 떠올리며 사랑에 빠집니다. 윤석진 충남대 교수는 “이 드라마는 불륜을 빌려 순수한 사랑을 이야기하고 있다”며 “뒤늦게 잘못을 깨닫고 아내를 다시 순수하게 사랑하는 남편의 모습이 기혼 여성의 로망을 자극했다”고 말했습니다. 담벼락에 기댄 채 해강의 이어폰을 나눠 끼며 음악을 듣는 장면은 영화 ‘건축학개론’의 중년 버전으로 회자되고 있습니다.
그는 SBS ‘따뜻한 말 한마디’(2013년)에서도 불륜에 빠진 유재학 역을 맡으며 호평을 받았습니다. 반듯하면서도 섬세하고 따뜻한 중년의 ‘교회 오빠’ 이미지를 활용한 작품이 주목을 받은 반면, 냉혈하고 잔인한 뱀파이어 의사(블러드)나 카리스마 있는 태조 이성계(대풍수) 등 기 센 남성을 연기한 작품들은 흥행에서 실패했죠. 최근 기자간담회에서 그는 불륜 역할을 맡을 때 더 주목받는다는 질문에 “생각이 많긴 했지만 이런 로맨스를 너무 하고 싶었다”며 “나이가 들어가니 사랑에 빠지는 역할을 더 많이 해보고 싶다”고 말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