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환수 스포츠전문기자
▷초기 김성근 신화의 탄생은 필자를 비롯한 언론이 주도했다. 재일교포 2세, 히라가나, 조기 은퇴, 투수 조련사, 꼴찌 반란, 구단과 불화, 중도 사퇴, 그리고 마침내 품에 안은 우승컵까지…. 사회적 약자인 그가 시련을 딛고 야구의 신이 된 뒤 일기당천의 자세로 기득권 세력에 맞서는 듯한 모습은 실로 매력적이었다. 가장 진보적인 집단임을 자처하는 젊은 체육기자들이 이를 놓칠 리 없었다. 보수의 시각에서도 지옥훈련, 외인구단, 인생역전의 키워드를 장착한 그는 영웅이었다.
▷세월은 흘러 김성근은 스포츠계를 넘어 대한민국의 아이콘이 됐다. 누군가는 타협 없는 그의 삶에서 새로운 경영 기법을 배운다고 했다. 반면 당시 젊은 체육기자들은 천문학적인 연봉을 받는 선수들이 과연 노동자인가 고개를 갸웃거리게 될 때쯤 중년을 맞이했다. 만성 적자에 시달리는 구단의 어려운 형편도 알게 됐다. 피아의 구분이 불분명해지자 김성근에 대해서도 재검증을 시작했다. 그가 또 다른 의미의 기득권 세력이 아닌가 하는 합리적 의심이었다.
▷김성근 신화의 초기 집필자 중 한 사람으로서 그에 대한 변명을 할 필요를 느낀다. 반대편에서 뭐라 하건 한화는 올해 10개 구단 중 가장 인기 있는 팀으로 탈바꿈했다. 권혁 박정진은 혹사를 당했지만 당사자가 불만을 토로한 것을 들은 적은 없다. 김성근의 독선은 구태이긴 하지만 일구이무(一球二無)의 또 다른 표현일 수 있다. 포스트시즌 진출에 실패했지만 2010년대 들어 만년 꼴찌 팀 한화가 6위에 오른 것은 박수를 받을 만하다.
▷무엇보다 김성근은 인간이다. 신이 아니다. 그에게만 엄격한 기준을 적용해선 안 된다. 정작 김성근 자신은 좌파도 우파도 아니다. 아버지의 마음으로 선수를 대한다고 믿고 있다. 야구밖에 모르는 외골수다. 세상 다 끌어안는 인자함과는 거리가 멀다. 친아버지는 바꿀 수 없지만 감독은 바꿀 수 있다. 그건 시장논리에 따르면 된다. 필자가 구단주라면 웬만해선 그를 안 부를 것이다. 그러나 진짜 급하면 그의 이름이 가장 먼저 떠오를 것 같다.
장환수 스포츠전문기자 zangpabo@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