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996년 10월 22일
최근 SBS 주말극 ‘애인있어요’가 극중 지진희와 김현주, 박한별의 얽히고설킨 사랑 이야기로 시청자의 눈길을 모으고 있다. 특히 극중 아내 김현주를 배신하고 박한별을 선택한 뒤 다시 김현주에 대한 사랑을 되찾으려는 ‘불륜남’ 지진희는 여성 시청자의 애정과 원망이라는 엇갈린 시선을 받고 있다. ‘불륜’은 때로 ‘막장’의 논란을 부르기도 하지만 어쩌면 드라마의 영원한 소재인지도 모른다. 실제 현실에서 그 유혹에 흔들리는 시청자의 숱한 욕망 탓일까.
1996년 오늘, MBC 드라마 ‘애인’(사진)이 막을 내렸다. 그해 9월2일 방송을 시작한 ‘애인’은 30%대 시청률로 인기를 모았다. 최연지 작가와 젊은 연출자 이창순 PD가 유동근, 황신혜, 이응경, 하유미, 김병세 등과 손잡은 드라마는 그러나 단순한 시청자 인기로만 설명되지 않을 만큼 커다란 사회적 파장을 낳았다.
‘애인’은 각기 가정을 지닌 30대 남녀가 겪는 만남과 사랑, 이별의 이야기. 무엇보다 그동안 불륜의 피해자로만 그려진 여성을 스토리의 중심에서 능동적으로 그리며 수많은 여성 시청자의 지지와 호응을 얻었다. 두 남녀의 미묘한 심리를 그리며 불륜이라는 상투적이고 진부한 소재를 세련되게 그린 덕분이었다. 이는 이창순 PD의 유려한 영상 그리고 이에 덧입혀진 음악으로 더욱 많은 시청자를 끌어들였다. 독일 그룹 캐리 앤 론의 ‘I Owe You’는 그 대표적인 곡이었다. 주인공 황신혜가 착용한 고가의 머리핀과 유동근이 입은 잉크블루셔츠도 불티나게 팔려나갔다.
파장은 심지어 국회 국정감사에까지 이르렀다. 국감에 나선 의원들은 ‘애인’의 선정성을 문제 삼아 비판을 쏟아냈다. 이를 바라본 일부 여성 시청자들은 이들 의원들의 시선을 비난하며 전화로 항의하는 사태가 빚어지기도 했다. 또 이례적으로 방송위원회가 ‘드라마의 소재 및 사회적 영향에 관한 토론회’를 열며 ‘애인’의 파장을 점검했다.
이 같은 소재를 다룬 드라마나 유사한 설정의 드라마들 역시 비판의 대상이 됐다. KBS 2TV ‘유혹’ MBC ‘길 위의 여자’ 등 일부 아침드라마도 마찬가지. 급기야 KBS는 중년의 사랑을 다룬 드라마를 기획했다 제작을 취소하기도 했다.
어쨌든 ‘애인’은 ‘아름다운 불륜’이라는 이름 아래 막을 내렸지만 그 파장은 오래도록 많은 시청자의 가슴에 잔향을 남겼다. 드러낼 수 없는, 숱한 욕망 탓이었음에 틀림없다.
윤여수 기자 tadada@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