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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북 이산가족 상봉]“하룻밤이라도 함께 지냈으면”… 65년 기다려 12시간 만남

입력 | 2015-10-22 03:00:00

일회성 상봉… 애타는 가족들




한복 차림 北 접대원들 21일 강원 고성군 온정리 금강산호텔에서 한복 차림의 북측 접대원들이 남북 이산가족들의 식사 테이블을 점검하고 있다. 금강산=사진공동취재단

제20차 이산가족 상봉 행사 이틀째인 21일 북한 금강산에서는 △개별 상봉 △중식 △단체 상봉이 2시간씩 진행됐다. 남북 이산가족은 65년을 기다렸다. 하지만 이산가족 상봉 기간인 20∼22일 만남이 허락된 시간은 고작 12시간이었다. 그나마 과거 상봉보다는 1시간 늘어난 것이다. 하룻밤도 같이 보내지 못했다. 북한 당국은 이산가족이 금강산에 함께 머무는 2박 3일도 온전히 허용하지 않았다.

○ “왜 저렇게 버스에 태워 가는지…”

한복 차림 北 접대원들 21일 강원 고성군 온정리 금강산호텔에서 한복 차림의 북측 접대원들이 남북 이산가족들의 식사 테이블을 점검하고 있다. 금강산=사진공동취재단

이날 오전 9시 반 개별 상봉 시간에 맞춰 금강산호텔에 도착한 북한 가족은 평양술, 들쭉술 등 주류와 식탁보, 스카프가 든 선물 보따리를 똑같이 들고 있었다. 그리고 북한 안내원의 지시에 따라서만 움직였다.

북한의 강영숙 씨(82·여)를 만난 사촌동생 강정구 씨(81)는 “11시 돼서 안내하는 사람들이 나가라고 하니까 (북한 가족이) 바로 나가 버렸다”면서 “한 번씩 만나는 상봉 행사가 중요한 게 아니다. 서신 교환이 될 수 있도록 해야지”라며 아쉬워했다. 이날 금강산호텔에서 진행된 개별 상봉은 비공개로 진행됐다.

북한 가족도 아쉽기는 마찬가지였다. 전날 조카 이민희 씨(54)를 만난 북한의 삼촌 도흥규 씨(85)는 첫 단체 상봉이 끝날 때쯤 “이럴 거면 왜 상봉을 하느냐”고 화를 내며 테이블을 두드렸다. 마지막 만남으로 착각했던 도 씨는 이 씨를 비롯한 한국 가족이 “다시 볼 거예요”라고 설득한 뒤에야 “꼭 와”라며 돌아섰다. 조카 이 씨는 “개별 상봉이 2시간밖에 안 돼 너무 아쉽다”며 “(1시간 뒤 공동 중식인데) 여기서 단풍나무 앞에서 사진도 찍고 같이 점심을 먹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하루 사이 더 애틋해진 이산가족은 ‘일회성 만남’에 서글픈 마음을 감추지 못했다. 오전 개별 상봉을 마친 북한 가족들이 버스를 타고 다시 돌아가자 남은 가족들은 “몇 분 뒤면 밥 먹으러 올 걸 왜 저렇게 버스에 태워 가는지…”라며 눈가를 훔쳤다.

○ 기약 없는 만남에 “건강 관리하자”

“사랑해.”(남편 오인세 씨·83)

“사랑해라는 범위가 얼마나 넓은지 알아요?(부인 이순규 씨·85)

“알아.”(오 씨)

“어떻게 알아요? 사랑이라는 글자의 범위가 얼마큼 넓은지 모르는구먼.”(이 씨)

결혼 반년 만에 헤어져 65년 만에 만난 부부. 애틋한 대화를 나누던 오 씨를 북한 안내원이 데려갔다. 며느리 이옥란 씨(64)는 “마치 전쟁 때 의용군 끌려가듯 간다”며 씁쓸해했다.

이날 오후 4시 반 단체 상봉에서는 짧은 만남, 긴 이별을 아쉬워하는 대화가 오가며 눈가를 훔치는 가족이 많았다. 북한의 언니 남철순 씨(82)와 동생 남순옥 씨(80)는 기약 없는 다음 만남을 약속하며 “건강 관리해서 오래 살아야겠다”고 다짐했다.

1985년 이산가족이 처음 만나기 시작해 올해로 20번째를 맞았다. 이산가족이 고령화되면서 전체 이산가족 등록 신청자 가운데 절반인 6만3000여 명이 사망했다(올해 9월 기준). 직계가족 만남도 점점 줄어들었다. 부부나 부자 부녀 등 직계가족 상봉은 2007년 행사 때만 해도 37가족이었지만 2009년 28가족, 2010년 27가족, 2014년 13가족이었다. 남북 이산가족의 생사를 확인한 뒤 상봉을 정례화해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이별을 앞둔 이산가족은 서로를 기억할 물건을 주고받았다. 북한의 이한식 씨(87)의 막냇동생 이종인 씨(55)는 “예전부터 형이 그림을 잘 그렸다”며 마지막 선물로 그림을 부탁했다. 한식 씨는 65년 전에 살던 경북 예천군의 초가집을 그리기 시작했다. 한 획, 한 획 기둥을 세우고, 지붕을 덮고…. 정성스럽게 그린 그림을 종인 씨에게 건넸다. “형님, 제가 또 언제 볼지 모르지만 이 그림 보면서 형님 생각할게요. 잘 간수할게요.” 종인 씨는 결국 눈물을 쏟았다.

우경임 기자 woohaha@donga.com /금강산=공동취재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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