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시대부터 도시 성립 다룬 광주역사전시실 조성 추진
1909년 9월 1일 일제는 국내에서 활동하는 의병을 완전히 진압하려는 남한 대토벌 작전에 돌입했다. 일제는 같은 해 10월 25일까지 항일무장투쟁 최대 근거지였던 전라도 마을 곳곳을 초토화하는 잔혹한 군사작전을 벌였다.
일제는 마을을 포위한 뒤 면장, 동장을 불러 주민들을 일일이 조사하고 수색을 반복했다. 조금이라도 의심이 가면 체포해 처형했다. 일제 1개 여단 병력은 사거리 300m인 6연발 장총으로 무장했지만 의병들은 화승총밖에 없어 화력에서 절대적인 열세였다. 2개월 동안 의병 500명이 숨지고 3000명이 체포됐다.
일제가 호남을 중심으로 한 남한 대토벌 작전을 벌였던 것은 한반도 북부지방에 있던 의병들은 만주, 연해주로 옮아갔지만 남부지방 의병들은 지리산과 전라도 해안지역에서 활약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호남의병은 명성황후가 시해된 1895년부터 1909년까지 활기차게 조국을 되찾기 위한 무장투쟁을 벌였다. 하지만 이 작전으로 대부분 숨지고 살아남은 극소수는 만주, 연해주로 넘어가 독립운동을 벌였다.
광주시의회는 올 7월 ‘한말 의병운동 기념사업 지원 조례’를 제정했다. 외세에 맞서 헌신적으로 투쟁한 어등산 호남의병의 업적과 정신을 기리기 위해서다. 김갑제 광복회 광주·전남지부장은 “한말 호남의병 1100명이 건국훈장을 받을 정도로 당시 호남과 광주는 의향(義鄕)”이라며 “호남의병의 넋을 기릴 수 있는 추모관, 추모비가 건립되면 좋겠다”고 말했다.
광주는 임진왜란 의병부터 동학농민운동, 한말의병, 3·1운동, 광주학생항일운동, 4·19혁명, 5·18민주화운동 등 역사의 시기마다 주축이 돼 바른 목소리를 냈던 의향의 도시다. 하지만 광주학생항일운동, 4·19혁명, 5·18민주화운동을 제외한 임진왜란 의병, 동학농민운동, 한말의병 추모 공간이 없다.
광주시는 의향이라는 도시 전통을 살리고 청소년들이 역사를 배울 수 있도록 가칭 광주역사전시실을 만드는 것을 검토하고 있다. 광주역사전시실은 조선 시대부터 근현대사 기간 동안 광주 도시의 성립, 시민들이 했던 활동 등을 다룰 것으로 예상된다. 전국 대부분 광역자치단체의 경우 도시 역사를 전시하는 역사관이 있지만 의향 광주만 없는 것으로 알려졌다.
광주역사전시실 조성이 추진될 경우 광주 북구 서하로 광주시립박물관 주변에 건립될 것으로 전망된다. 광주역사전시실 건립에 가장 큰 걸림돌은 예산 확보다. 홍영기 순천대 사학과 교수는 “광주는 독립투쟁부터 민주와 인권을 지킨 의향인 만큼 이 같은 자존심을 하나로 된 역사관에서 전시하는 것이 좋을 것 같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