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리 책임 제대로 못한 채 집필자-교사 탓하는 정부여당 보편적 국민정서 무시한 채 좌편향 획일화 감싸는 야당 정부도 여야도 돌아가라… 다양성을 존중하는 민주공화국 정신으로 돌아가라
김병준 객원논설위원 국민대 교수
좌파이론을 학습한 학생들에게 교수는 아무것도 아니었다. 헛된 논리나 궤변으로 ‘신식민지’와 ‘독점재벌’을 비호하는 프티부르주아? 대충 그 정도였다. 책상 위에 책도 노트도 올려놓지 않은 채 강의 중인 교수를 가소롭다는 듯 지켜보곤 했다.
교과서 국정화 논쟁 속에서 다시 그때를 생각한다. 지금은 곳곳에서 중추적 역할을 하고 있을 그 학생들, 그들을 급진 좌파이론으로 이끈 것은 무엇이었을까? 중고등학교에서 배운 교과서가 좌편향이어서? 아니면 그들을 가르친 선생님들이 좌편향이어서? 아니다. 교과서도 선생님도 오히려 그 반대편을 향하고 있었다.
잘 알다시피 학생은 교과서로만 배우지 않는다. 교과서로 하나를 배운다면 정치 경제 사회적 현실로부터는 아홉을 배운다. 무슨 말인가? 교과서를 국정으로 획일화하여 강제하기보다는 현실이라는 또 다른 교과서를 잘 쓰기 위해 노력하라는 말이다.
더욱이 지금이 어떤 때인가? 글로벌화 정보화와 함께 역사는 더 높은 다양성을 향해 흐르고 있다. 그 누구도 막을 수 없는 도도한 흐름이다. 여기에 국정화로 획일성의 둑을 쌓는다? 아서라. 다양한 역사인식은 큰물이 되어 범람할 것이고, 그 둑은 그 큰 물줄기 아래 초라한 모습으로 있다 무너지고 말 것이다. 입장을 모르는 바 아니다. 소위 ‘좌편향’ 교과서에는 분명 정부여당이 받아들이기 힘든 진보적 흐름이 있다.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이다. 역사를 전공하는 사람은 진보적 견해를 가지기 쉬운데, 바로 이들이 교과서의 집필 검증 채택을 주도했다. 왜 아니 그렇겠는가?
결과적으로 총 8종의 교과서 중 적어도 5종이 ‘좌편향’, 그 채택률은 90%에 가깝다. 보수 성향의 교과서는 단 1종, 채택률은 0%다. 지금의 검인정 체제로는 ‘좌편향’ 일변도의 상황을 벗어날 수 없다는 생각이 들 만도 하다.
그러나 다시 생각해 보라. 문제는 검인정이냐 국정이냐가 아니다. 문제가 있다면 오히려 잘못된 과정 관리에 있다. 역사 교육의 목표에 대한 구속력 있는 합의가 없는 상태에서 참여자마저 다양하지 못하니 그렇게 된 것이다. 채택 과정만 해도 그렇지 않은가. 학부모가 참여하기는 하나 큰 역할은 하지 못하고 있다.
양비론이라 욕하겠지만 야당에도 한마디 하자. ‘좌편향’ 교과서에 좌편향이 없다고 해서는 안 된다. 주체사상 부분만 해도 그렇다. 비판적 문구가 한두 줄 있고 없고의 문제가 아니다. 적지 않은 사람들에게는 북한 측 입장을 길게 소개하는 것만 해도 ‘좌편향’이다.
국정화가 다양성을 해치니 반대한다고? 그것도 믿기 어렵다. ‘좌편향’ 5종이 90%, 또 다른 방향으로의 획일화가 우려되는 상황이다. 보편적 국민정서와 거리가 있는 이 상황에 대해서는 왜 문제의식이 없나? 그러니 다양화 운운하지만 실제로는 ‘좌편향’ 획일화를 꿈꾸고 있다는 의심을 받는다.
그리고 스스로 물어봐라. 다양화를 위해 얼마나 노력했는지. 단적으로 진보진영에서 보수 성향 교과서를 채택하지 못하게 이를 채택한 학교들을 압박할 때 어떻게 했나? 그것이 다양성을 해칠 수 있다는 경고를 한 적이 있던가? 그러지 않고 오히려 그 상황을 반겼다면 지금 와서 다양성을 이야기할 자격이 없다.
정부와 여야 모두 돌아가라. 다양성을 존중하는 민주공화국의 공화정신으로 돌아가라. 여러 색깔의 다양한 교과서들이 공정하게 경쟁하게 되고, 정부와 여야 또한 현실이라는 교과서를 잘 쓰기 위해 서로 경쟁하게 되는 길이 무엇인지 고민하라. 정작 풀어야 할 문제는 뒤로한 채, 답 아닌 답을 놓고 싸우는 모습이 짜증스럽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