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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화문에서/강수진]이산가족 교과서

입력 | 2015-10-22 03:00:00


강수진 문화부장

TV 속 친할머니는 낯설었다. 억센 ‘니북 피양’ 사투리 탓에 쩌렁쩌렁한 호랑이 같던 평소 모습과 달리 종이를 가슴 앞에 모아 쥐고 방청석에 끼어 앉은 모습은 작고 연약해 보였다.

1983년 KBS 특별 생방송 이산가족 찾기. 패티김의 그 노래, 누가 이 사람을 모르시나요. 스튜디오 가득 메운 사람들 틈에서 카메라가 할머니를 비췄고 김동건 아나운서는 큰언니와 막냇동생을 찾는 사연을 읽어줬다.

평양서 월남한 친할머니와 서울서 월북한 외할아버지. 친가, 외가가 모두 이산가족이었던 우리 집은 “감사합니다!”를 외치며 울부짖는 가족들이 나올 때마다 덩달아 훌쩍였다.

이 오래전 기억을 떠올리게 한 건 20일 시작된 남북 이산가족 상봉이었다. 뉴스마다 가족들의 절절한 사연이 쏟아졌지만 그보다는 한마디 말에 코끝이 시큰해졌다. “살아주셔서 감사합니다.”

65년 만에 재회한 남편에게 아내가, 태어나서 처음 얼굴을 본 아버지에게 아들이 건넨 그 말이 찡했다. 애태운 수십 년 세월이 그 한마디에 응축돼 있었다.

이산가족 첫 상봉이 이루어진 2000년과 2003년, 신문사에선 취재팀이 꾸려졌고 나는 ‘이산가족 3세’라는 이유로 상봉 취재기를 썼다. “모두 모두 오래 사세요, 제발 살아만 주세요”로 취재기를 끝맺었던 건 끝내 혈육의 생사조차 모른 채 돌아가신 친할머니가 떠올라서였다.

이번에 상봉하는 96가족 중 부부나 부모 자식 간 상봉은 5건뿐일 만큼 직계가족은 급격히 줄었다. 이산가족 1세대들이 많이 돌아가신 탓이다. 전체 상봉 신청자 13만여 명 중 절반 가까운 6만3921명이 이미 세상을 떠났다. 지난 20년간 만난 사람은 3999명으로 신청자의 3%에 불과하다. 평생을 그리워하며 기다렸던 상봉이지만 단 3일 동안 12시간의 만남이 끝나면 생전에 다시 만날 기약도 없다.

어느덧 이산가족 4세들이 성년 나이에 가까울 만큼 세월이 흘렀다. 전국을 울음바다로 만들었던 KBS 이산가족찾기 생방송도 이들에겐 영화 ‘국제시장’을 통해서나 접해 봤을 얘기다.

근현대사를 둘러싸고 논란이 뜨거운 한국사 교과서들을 들춰봤다. 대부분 ‘6·25전쟁으로 전쟁고아와 수많은 이산가족이 생겨났다’ 정도로만 간단히 기술돼 있었다. 이산가족의 아픔은 ‘현재진행형’의 역사지만 심층 학습거리까진 아닌가 보다. 전후 남북한의 군비 경쟁 강화(두산동아), 또 다른 전쟁터가 된 거제도 포로수용소(교학사), 한미 상호방위조약에서 한반도에 미군이 주둔하게 된 근거 조항 찾기(천재교육), 전쟁 중 발생한 민간인 학살에 대해 정부가 배상해야 하는 까닭(미래엔)….

북한이 일으킨 6·25전쟁으로 고통받는 남북 이산가족을 심화 주제로 삼은 건 지학사 교과서 한 개뿐이었다. 이산가족은 보수나 진보를 떠나 인권의 문제다.  

얼마 전 KBS 이산가족찾기 생방송이 유네스코 세계기록문화유산에 등재됐다. 유네스코는 이 기록의 의미를 이렇게 설명했다. “전쟁의 아픔을 세계에 고발하고 각계각층의 공감을 이끌어내 전쟁을 겪은 세대와 전후 세대 사이의 단절을 극복하는 데 기여했다.”

후대를 위한 교과서의 역할도 그리 다르지 않을 것 같다. 어쩌면 이산가족 상봉이야말로 생생한 근현대사 교과서가 아닐까.

할머니가 된 아내의 주름진 손을 65년 만에 다시 잡은 북측 할아버지의 말이 귓가를 맴돈다.

“이게 전쟁 때문에 그래. 할매… 전쟁으로 인해서 우리가….”

강수진 문화부장 sjkang@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