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수진 문화부장
1983년 KBS 특별 생방송 이산가족 찾기. 패티김의 그 노래, 누가 이 사람을 모르시나요. 스튜디오 가득 메운 사람들 틈에서 카메라가 할머니를 비췄고 김동건 아나운서는 큰언니와 막냇동생을 찾는 사연을 읽어줬다.
평양서 월남한 친할머니와 서울서 월북한 외할아버지. 친가, 외가가 모두 이산가족이었던 우리 집은 “감사합니다!”를 외치며 울부짖는 가족들이 나올 때마다 덩달아 훌쩍였다.
65년 만에 재회한 남편에게 아내가, 태어나서 처음 얼굴을 본 아버지에게 아들이 건넨 그 말이 찡했다. 애태운 수십 년 세월이 그 한마디에 응축돼 있었다.
이산가족 첫 상봉이 이루어진 2000년과 2003년, 신문사에선 취재팀이 꾸려졌고 나는 ‘이산가족 3세’라는 이유로 상봉 취재기를 썼다. “모두 모두 오래 사세요, 제발 살아만 주세요”로 취재기를 끝맺었던 건 끝내 혈육의 생사조차 모른 채 돌아가신 친할머니가 떠올라서였다.
이번에 상봉하는 96가족 중 부부나 부모 자식 간 상봉은 5건뿐일 만큼 직계가족은 급격히 줄었다. 이산가족 1세대들이 많이 돌아가신 탓이다. 전체 상봉 신청자 13만여 명 중 절반 가까운 6만3921명이 이미 세상을 떠났다. 지난 20년간 만난 사람은 3999명으로 신청자의 3%에 불과하다. 평생을 그리워하며 기다렸던 상봉이지만 단 3일 동안 12시간의 만남이 끝나면 생전에 다시 만날 기약도 없다.
어느덧 이산가족 4세들이 성년 나이에 가까울 만큼 세월이 흘렀다. 전국을 울음바다로 만들었던 KBS 이산가족찾기 생방송도 이들에겐 영화 ‘국제시장’을 통해서나 접해 봤을 얘기다.
북한이 일으킨 6·25전쟁으로 고통받는 남북 이산가족을 심화 주제로 삼은 건 지학사 교과서 한 개뿐이었다. 이산가족은 보수나 진보를 떠나 인권의 문제다.
얼마 전 KBS 이산가족찾기 생방송이 유네스코 세계기록문화유산에 등재됐다. 유네스코는 이 기록의 의미를 이렇게 설명했다. “전쟁의 아픔을 세계에 고발하고 각계각층의 공감을 이끌어내 전쟁을 겪은 세대와 전후 세대 사이의 단절을 극복하는 데 기여했다.”
후대를 위한 교과서의 역할도 그리 다르지 않을 것 같다. 어쩌면 이산가족 상봉이야말로 생생한 근현대사 교과서가 아닐까.
할머니가 된 아내의 주름진 손을 65년 만에 다시 잡은 북측 할아버지의 말이 귓가를 맴돈다.
강수진 문화부장 sjkang@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