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동용 정치부 차장
박근혜 대통령이 왜 역사 교과서를 나라에서만 만들어야겠다고 결심했는지는 잘 모르겠다. 그러나 역사 교과서 국정화로 박 대통령 본인이 생각하기에 ‘올바른 역사관’을 온 국민이 갖게 되진 않을 거라는 정도는 안다. 왜냐고? 국민은 자신이 배운 역사 교과서 내용을 거의 기억하지 못한다. 아니 관심도 없다. 중고교생 99%에게 역사는 대학수학능력시험 볼 때까지만 신경 써야 할 암기 과목에 지나지 않는다.
그나마 역사에 관심 있는 1%의 학생은 교과서보다 다양한 역사만화와 서적에서 정보를 더 얻을 수 있다. 인터넷을 검색하면 박 대통령이 보기에 못마땅할 게 분명한, 게다가 사실 확인도 거치지 않고, 문장은 조악한 역사 서술이 넘친다. 대학에 입학해 그동안 배운 역사와 다른 얘기를 하는 책 한두 권을 읽고 ‘운동권’이 되는 경우도 예전 같지 않다. 국정 역사 교과서로 개인의 역사관을 통제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면 오산이라는 얘기다.
새정치민주연합 역시 빠지지 않는다. 박 대통령과 여당의 역사 교과서 국정화 논란에 맞선다며 들고 나온 게 ‘친일·독재’ 프레임이다. 문재인 대표는 21일 “국민은 대통령과 집권당 대표가 친일과 독재의 가족사 때문에 국정 교과서에 집착한다고 믿고 있다”고 주장했다. 지난 대선 때 박 대통령을 겨냥했던 ‘친일파 독재자의 딸’에서 한 발짝도 전진하지 않았다. 새정치연합의 주류를 이루는 1970, 80년대 운동권의 조건반사적인 사고 수준이다.
박근혜 정부는 영속하지 않는다. 벌써 임기 반환점을 돌았다. 그럼 교육부 계획대로라면 2017년 초 발간 예정인 국정 역사 교과서의 운명이 어떻게 될지 아무도 모른다. 그럼에도 야당은 박 대통령의 ‘독재’는 계속될 것이고 자신들은 집권할 가능성이 없다는 듯 ‘친일·독재 옹호 교과서 반대’만을 외친다. “어차피 우리가 집권하면 바뀔 교과서, 잘해보세요. 우리는 정말 시급한 현안에 집중할 테니”라고 무시할 자신감은 없어 보인다.
1979년 10월 26일(박정희 전 대통령 서거일)에 사고의 시간이 멈춘 것 같은 대통령과 1987년 6월 29일을 끝으로 더이상 생각이 진보하지 않는 것 같은 야당의 ‘종북 vs 친일·독재’ 재방송은 이제 솔직히 지겹다. 이쯤 되면 어느 쪽이든 “쿨(cool)하지 못해서 미안합니다”라고 고백해야 되는 것 아닌가.
민동용 정치부 차장 mindy@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