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동아 11월호/합참, 심리전 조직 폐지 논란 ● 목함지뢰 사건 때 모처럼 활약 ● 정치적 부담 되니 없애려 해 ● ‘민·군 분리’ 미국 모델이 해법
목함지뢰 위기 직후 한국군은 대북 확성기 방송을 재개해 북한을 코너에 몰아넣었다. 합참이 심리전 조직을 축소하려 해 논란이 일고 있다.
8월 목함지뢰 사건 때 세간의 이목을 끈 것은 대북 확성기 방송이다. 노무현-김정일 시절인 2004년 2차 남북장성급 회담 합의로 중단됐다가 11년 만에 재개된 이 방송이 대박을 쳤기 때문이다. 북한은 이 방송을 막으려 고위급 회담을 요청하고 목함지뢰 사건에 대한 유감까지 밝혔으니, 그 효과가 대단했음이 입증된 셈이다.
군이 이러한 대북심리전 조직을 축소하려 해 논란이 인다. 합동참모본부(합참) 안에 있는 민사·심리전참모부를 없애려는 움직임이다. 왜 우리 군은 이런 움직임을 보이는 걸까.
우리 군은 두 개의 ‘머리’를 가졌다. 평시에는 합참이 최고사령부이나, 전시에는 한미연합사령부(연합사)가 지휘권을 갖는다. 둘 가운데 더 센 것은 연합사다. 군은 전쟁에 대비한 조직이니, 전시 지휘부(연합사)는 평시 지휘부(합참)보다 우위에 설 수밖에 없다. 그러나 전쟁은 수십 년 혹은 수백 년에 한 번 일어난다. 따라서 현실 세계에서 더 많이 움직이는 것은 평시 지휘부일 수밖에 없다.
심리전이 군 작전에서 독특한 위상을 차지하는 것은 평시에도 큰 역할을 할 수 있기 때문이다. 심리전은 전술심리전과 전략심리전으로 나뉜다. 목함지뢰 사건 후 우리 군이 재개한 확성기방송이 전술심리전에 해당한다. 국방부 대변인이나 작전부대 지휘관이 TV에 나와 “대응을 하겠다”고 으름장을 놓는 것도 전술심리전에 포함된다. 충돌이 있는 곳에서 당장 펼치는 것이 전술심리전이다.
전략심리전은 시간을 두고 원거리에서 적을 ‘세뇌’하려는 노력이다. 따라서 적을 긴장시키는 비난이나 위협은 전혀 하지 않는다. 안개비처럼, 우산을 쓰지 않아도 되는 상황을 만들어 상대 옷을 적신다. ‘미국의 소리(VOA)’와 ‘자유아시아(RFA) 방송’ 등이 대표적 사례다. 이 방송은 적국을 거의 비난하지 않으며 세상사를 전달해준다. 재미도 송출한다. 모든 사람이 좋아하는 음악도 틀어준다. 그러니 적국에서도 들어보려는 사람이 나오게 된다.
VOA와 RFA가 노리는 것은 ‘듣게 만드는 것’이다. 사람은 의외로 단순하다. 진실을 이야기하는 사람의 말을 믿는 것이 아니라, 좋아하는 사람의 말을 믿는 속성이 있다. 좋아하는 사람이 하는 말은 ‘팥으로 메주를 쑨다’고 해도 믿어버린다. 이런 점에서 전략심리전은 아무 생각 없는 사람도 쳐다보게 만들고, 마침내 사게 만드는 광고와 비슷하다.
들어주는 적국 주민이 늘어났다고 판단되면 VOA 등은 하고 싶은 말을 살짝살짝 찔러 넣는다. 적국 주민의 정서를 반(反)정부 쪽으로 조금씩 돌려놓는 것이다. 이러한 노력이 쌓이고 쌓이면 ‘봉기’가 일어난다. 총 한 방 쏘지 않고 적 정권을 무너뜨리는 ‘차도살인지계(借刀殺人之計)’를 구사하는 것이다. 미국에서 전략심리전은 민간 조직이 담당하고, 전선에서 하는 전술심리전은 심리전부대가 맡는다.
한반도에서 전쟁이 일어난 것을 가정해 전시 시스템을 돌려보는 연습이 ‘키리졸브’다. 키리졸브 연습 때 연합사는 비로소 연합심리전사령부를 만든다. 이 사령부는 한국군 심리전부대와 미국에서 날아오는 미군 심리전부대로 구성된다. 전시에만 파병을 하다보니 미군은 심리전부대를 상비(常備)가 아닌 동원 중심 체제로 구성하게 됐다. 핵심 ‘인원’은 현역으로 편성해도 단순한 업무는 동원 예비군에게 맡기게 된 것이다.
미국 예비군은 우리와 달라서 봉급을 받는 반군반민(半軍半民)의 직업군인이다. 평소에는 자기 일을 하는 민간인으로 있다가 소집령이 떨어지면 응소해 바로 군인이 된다. 동원된 이들이 심리전조직을 운영하는 것이다.
그러나 수십만 장병을 군사분계선에 배치한 한국군은 한반도를 안정지역으로 볼 수 없다. 북한이 한민전 방송을 내세워 강력한 심리전을 구사해왔기에 우리도 전략심리전과 전술심리전을 상시적으로 구사할 수밖에 없었다. 민간과 군으로 나눠 심리전을 하는 게 아니라 군이 전담하는 체제를 갖췄다. 합참의 민사·심리전참모부가 그것이다.
민사작전은 전쟁으로 점령한 적지를 안정화하는 작전이다. ‘군정(軍政)’으로 부르는 경우가 많다. 심리전이나 민사작전을 하는 부대는 일반작전을 하는 부대에 비하면 그 규모가 작다. 직접 총포를 쏘는 경우도 드물다. 따라서 합참은 둘을 하나로 묶어 민사·심리전참모부를 두었다.
심리전 중단한 노무현 정부
그 후 북한은 사이버 세계로 침투했다. 2004년 합의에서는 사이버 세계에 대한 언급이 없었으니 북한의 사이버 도발은 약속 위반으로 보기 어려웠다. 그렇다면 우리도 대등한 반격을 하면 되는데, 북한에는 사이버 세계가 없었다. 당황한 한국군은 황급히 사이버사령부를 만들어 방어에 나섰다. 그러한 사이버사를 국정원의 심리전단이 간접 지원했다.
남북이 한국 사이버 세계에서 싸움을 벌이는 것이기에, 한국은 ‘잘해야 본전’이고, 북한은 ‘못해도 본전’은 챙기는 상황이 됐다. 북한은 그러한 구도를 교묘하게 이용했다. 한국 여당이 중심이 된 보수 세력을 맹공격한 것. 사이버사는 이를 방어하려다 야당을 공격하는 댓글을 달게 되었다. 18대 대선 후 이것이 밝혀져 사이버사 간부들은 정치 개입 혐의로 처벌받게 되었다. 심리전부대에 이어 사이버사도 초토화된 것이다.
합참의 고민
그런데 목함지뢰 사건이 발생해 대북 확성기 방송을 재개하자 심리전부대는 모처럼 진가를 발휘했다. 북한군을 괴롭힌 것이다. 그러나 이 승리는 8·25 합의로 2주 만에 끝났다. 이후 합참은 심리전 조직이 정치적으로 부담이 되고 불필요하다고 판단했는지 폐지를 검토한 것으로 알려졌다. 연합사처럼 평시에는 두지 않고 전시에만 두는 조직으로 바꾸려고 한 것이다.
합참은 평시의 최고사령부지, 전시의 최고사령부가 아니다. 따라서 전시에만 심리전 참모부를 두겠다는 것은 모순이다. 전시가 되면 연합사가 연합심리전사령부를 만들기에 중복될 수도 있다. 그러나 2004년 장성급 회담 합의와 8·25 합의가 살아 있는 한 합참의 심리전은 제한받을 수밖에 없다. 이 난제를 극복하는 방법은 무엇인가. 한 전문가는 민영화를 거론했다.
“지금 우리 군은 VOA와 유사한 ‘○○의 소리’ 방송을 하고 있으나, 이 방송은 북한으로 전파가 넘어가지 않는 FM으로 송출된다. 이는 시늉만 내는 꼴이다. 남북 합의 탓에 심리전을 할 수 없으니 돈을 허투루 쓰는 이상한 짓을 거듭한다. 사이버사가 방어에 치중하다 제 덫에 걸린 것도 그런 사례다. 그런데 합참은 조직을 축소해야 한다는 압박을 받으니, 골치 아픈 심리전 조직부터 없애려 한다.
현실이 이렇다면 발상을 전환해야 한다. 미국처럼 군이 아니라 민간이 심리전을 하게 하는 것이다. 탈북민들이인터넷으로 하고 있는 많은 북한 민주화 방송을 묶어 북한 깊숙한 곳까지 전파가 들어가는 AM으로 송출하게 하고, 그들이 자발적으로 전단을 띄우게 하는 것이다. 그리고 군의 심리전 조직은 전시에만 편성하게 한다. 남북 관계가 복잡해지면 복잡해질수록 우리는 더욱 교묘해져야 한다. 절대적으로 우세한 우리의 심리전 능력을 사장하지 않으려면….”
이정훈 편집위원 | hoon@donga.com
<이 기사는 신동아 2015년 11월호에 실린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