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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설]창조경제와 ‘노벨상 조급증’ 버려야 노벨상 탈 수 있다

입력 | 2015-10-23 00:00:00


정부가 어제 노벨상 수상자 배출을 위해 2025년까지 30세 안팎의 과학자를 해마다 100명씩 선발해 1인당 8억 원을 5년간 지원하는 ‘넥스트 디케이드 100(Next-decade-100)’ 프로젝트를 내놓았다. 대통령 직속 국가과학기술자문회의가 박근혜 대통령에게 ‘창조경제 실현을 위한 기초연구·소재기술 발전 방안’을 보고하는 자리에서다. 노벨상을 수상한 연구는 대부분 20, 30대에 이룬 성과에서 나오므로 젊은 과학자들에게 안정적 지원 방안을 마련해 줄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올해 일본이 2명의 노벨 과학상 수상자를 내고 중국에서 첫 노벨 생리의학상 수상자가 탄생하는 것을 우리는 부러운 눈으로 지켜보았다. 예산만 보면 우리나라의 기초연구 지원은 국내총생산(GDP) 대비 연구개발(R&D) 투자가 4.15%에 16조9000억 원(2013년 기준)으로 세계 1위다. 올해 R&D 예산은 18조 원이나 된다. 돈은 돈대로 쓰면서도 세계적 연구 성과나 원천기술을 내지 못하는 것은 정부가 연구사업을 주도해 지원금을 나눠주는 톱다운 방식에 원인이 있다.

이명박 정부는 기초과학연구원을 중심으로 실적이 우수한 50명의 과학자에게 10년간 연간 100억 원씩 지원하는 ‘노벨상 프로젝트’를 추진했으나 풀뿌리 연구를 고사시킨다는 비판을 받았다. 연구자들이 연구비를 딸 요량으로 정부 사업에만 몰려 연구의 생명인 자율성과 독창성을 잃었기 때문이다.

어제 박근혜 대통령이 “한 분야 연구에 매진할 수 있도록 안정적인 연구 환경을 만들어 나갈 것”이라고 밝힌 것은 옳은 방향이다. 그러나 현행 3년짜리 ‘신진 인력 양성’ 프로그램을 겨우 5년으로 늘리고 명칭만 ‘넥스트 디케이드 100’으로 바꾸는 식으로는 노벨상이 나오기 힘들다. 단기 성과에 연연하지 않는다면서 굳이 ‘창조경제 실현’을 강조한다면 정권이 바뀔 경우엔 또 어떻게 할 작정인가.

1911년 창립 이래 32명의 노벨상 수상자를 배출해 ‘노벨상 사관학교’로 불리는 독일 막스플랑크 연구소의 운영 모토는 “지원하되 간섭하지 않는다”이다. 정부도 국민도 ‘노벨상 조급증’을 버려야 노벨상에 성큼 다가갈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