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월 91세로 뉴욕서 타계
22일 서울시립미술관 2층의 상설 ‘천경자실’을 찾은 관람객들이 최근 사망한 것으로 확인된 천경자 화백의 작업실 사진 앞에 미술관 측이 마련한 국화를 놓으며 조의를 표하고 있다. 김미옥 기자 salt@donga.com
1998년 미국 뉴욕으로 가 큰딸 이혜선 씨(70) 집에 머물던 고인은 2003년 뇌출혈로 쓰러진 것으로 전해졌다. 간간이 사망설이 돌았으나 가족이 외부와의 연락을 차단해 확인이 어려웠다. 뇌출혈 소식 직후 천 작가와 막역했던 고 권옥연 화백이 문병을 위해 뉴욕의 천 화백 큰딸 집을 찾아갔지만 면회를 거절당한 일도 있었다.
천 화백의 그림 93점과 저작권을 기증받아 관리 중인 서울시립미술관 측은 22일 “이 씨가 8월 모친 유골함을 들고 미술관 수장고를 다녀갔다. 사망 사실을 외부에 알리지 말아 달라고 요청했다”고 밝혔다.
천 화백은 1995년 호암갤러리에서 15년 만의 개인전을 열고 3년 뒤 미국으로 떠났다가 일시 귀국해 서울시립미술관에 작품을 기증했다. 4년 후 서울시립미술관에 ‘천경자실’이 마련됐지만 2013년 딸 이 씨는 “서울시의 관리가 소홀하다”며 작품 반환을 요구해 다시 논란이 일었다. 2007년 고향 전남 고흥군에 기증됐던 작품 66점도 2012년 딸 이 씨가 “작품 보관이 허술하다”며 갈등을 빚어 이듬해 그림이 모두 반환되고 기념미술관 건립 계획도 백지화됐다.
천 화백은 개인사가 순탄치 않았다. 스무 살 때 결혼해 큰딸 이 씨 등 1남 1녀를 낳았지만 남편과 곧 헤어졌다. 얼마 뒤 유부남이던 두 번째 연인과의 만남으로 다시 1남 1녀를 얻은 뒤 독신으로 지냈다. 1978년 대한민국예술원 정회원이 된 그는 이듬해 예술원상을 받았다. 그러나 천 화백의 생존 여부가 확인되지 않자 지난해 2월 예술원은 수당 지급을 중단했다. 이에 딸 이 씨는 원로 회원들에게 전화를 걸어 “어머니를 예술원 회원에서 탈퇴시켜 달라”고 요구했다. 예술원 측은 “9월 4일 서울 강남구청에 사망신고가 접수된 것을 22일 확인했다. 미지급된 수당 약 3400만 원을 소급해 지급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서울시립미술관의 ‘천경자실’은 기획전 흐름을 차단하는 위치 때문에 이전해야 한다는 주장이 여러 차례 제기됐다. 김홍희 서울시립미술관장은 “지난해 이 씨와 논의했지만 거절당했다. 기증 당시 계약에 따라 전시 공간을 유족 동의 없이 개조하거나 옮길 수 없다”고 했다. 예술원 회원인 민경갑 화백(82)은 “장녀와 서울시립미술관이 고인의 별세 사실을 숨긴 것은 모친과 작가에 대한 예의에 어긋나는 행위였다. 석연찮은 미스터리만 남았다”고 아쉬워했다.
손택균 기자 sohn@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