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비자 위해 영업시간 연장해야 vs 모바일 수요 충족에 더 집중해야
은행의 영업시간을 연장할지를 놓고 찬반 논란이 거세다. 은행을 직접 찾은 고객들이 창구에서 업무를 보고 있다. 동아일보DB
소비자 위해 영업시간 연장해야
문정숙 금융소비자연맹 회장 숙명여대 교수
모바일뱅킹이나 핀테크(Fintech·금융기술)가 은행 영업장소의 한계를 없앴거나 없앤다고는 하지만 실수로 비밀번호라도 잘못 입력하면 상황은 심각해진다. 무조건 은행 영업창구에 들러서 비밀번호를 변경해야 하니 상사의 눈치를 보며 은행 마감시간 안에 다녀와야 한다. 당일 처리해야 하는 대출 취소와 인터넷뱅킹의 거래 취소도 마감시간이 끝난 다음에는 할 수 없다. 현금자동입출금기(ATM) 수수료도 비싸진다. 이처럼 은행 업무시간이 짧아 소비자가 불편한 것이 한두 가지가 아니다.
소비자는 기업의 미래다. 거의 모든 업종이 고객만 있다면 소비자가 원하는 시간까지 영업을 한다. 그러나 오직 은행들만 오후 4시가 되면 오는 고객을 막고 셔터를 내린다. 은행의 편의에 따라 고객이 시간을 맞춰야 하는 형국이다. 완전히 주객이 전도된 모양새다.
은행들은 문을 닫은 오후 4시 이후부터 늦은 저녁까지 마감업무, 업무교육, 시재관리, 아웃바운드 영업, 잔무정리 등 ‘본격적인 업무’를 해야 한다고 말한다. 그러나 이런 일들이 과연 ‘소비자가 원하는 일’보다 더욱 중요한 업무일까? 은행이 주장하는 ‘본격적인 업무’는 관리 또는 가외 수익을 창출하기 위한 일로, 일반 기업에서는 업무 시간 외에 하는 일들이다. 은행의 사고체계 자체가 ‘소비자 중심’이 아닌 ‘공급자 중심’이라는 씁쓸한 현실을 방증한다.
세계 1위인 중국 공상은행의 업무시간은 오후 5시이고, 일부 지점은 주말 및 휴일에도 업무를 볼 수 있도록 하고 있다. 미국의 뱅크오브아메리카(BoA)나 웰스파고 같은 대형은행은 평일은 오후 6시나 7시까지, 토요일에도 오후까지 문을 연다. 유럽 대부분의 은행은 오후 4, 5시에 문을 닫지만 고객 편의에 맞춰 탄력적으로 운영하거나 오후 6시까지 일하는 요일을 정해 놓기도 한다. 우리나라같이 ‘담합’한 듯 모든 은행이 문을 걸어 잠그지 않는다. 우리나라도 은행 간 경쟁이 이루어졌다면 오후 5, 6시에 문을 닫는 은행이 생겼을 것이다.
우리나라 은행원의 초임 연봉은 일본 은행원 초임 연봉보다 2배 가까이 많다. 한 컨설팅업체의 조사 결과 우리나라 은행원의 초임은 4257만 원으로 일본의 2411만 원보다 76% 많았다. 그러나 수익성(ROA)은 일본보다 한국이 낮았고 생산성도 0.88로 점점 떨어지고 있다. 세계경제포럼(WEF)의 국가경쟁력 평가에서 금융성숙도 부문은 우리나라가 세계 87위를 기록해 우간다(81위) 베트남(84위) 부탄(86위)보다 떨어진다는 평가를 받았다. 물론 이것이 절대적인 평가는 아닐지라도 한국 금융이 이런 평가를 받는 것 자체가 후진성을 면치 못하고 있다는 것을 방증하는 것이라고 생각된다.
물론 은행의 영업시간을 늘린다고 해서 당장 금융 성숙도가 높아진다거나 금융개혁이 이루어지는 것은 아닐 것이다. 그러나 소비자 중심의 시대에 살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소비자의 필요를 외면한다면 은행의 경쟁력은 계속 하락할 수밖에 없다. 그뿐만 아니라 국가 차원에서 추진하고 있는 금융개혁 역시 은행의 경직성으로 인해 지체될 수밖에 없을 것이다. 개혁은 작은 변화에서부터 시작한다. 소비자의 불만에 눈감지 말고 영업시간 연장을 적극적으로 고려하길 바란다.
모바일 수요 충족에 더 집중해야
원승연 명지대 경영학과 교수
은행의 영업시간 연장을 논의하려면 은행 업무 전반에 대한 이해가 전제돼야 한다. 무엇보다도 은행 문을 여는 오전 9시∼오후 4시 이외의 시간에도 지점 은행원이 해야할 일이 꽤 많다는 점을 인식할 필요가 있다. 어느 가게나 그러하듯이 은행도 문 열기 전에 준비할 시간이 필요하며 특히 영업을 끝낸 이후에 시재를 마감하고 전표를 정리하는 등 사후정리에 많은 시간을 써야 한다. 그렇다고 본다면 지점에 근무하는 평은행원의 근로시간은 적어도 8시간은 넘을 것이다. 이는 곧 은행의 영업시간 연장은 이들의 한 시간 추가 노동이 필요함을 의미한다. 이미 충분한 시간 동안 노동을 하고 있는 은행원들에게 추가적인 노동을 요구하는 것은 노동의 기본권 보장과 관련돼 있는 것이다. 따라서 은행 영업시간 연장은 단순히 결정할 수 있는 사항이 아닌 것이다. 혹자는 이러한 문제를 우려해 대체인력을 추가로 고용해 문제를 해결하자고 주장하는 듯하다. 그러나 은행의 결제기능 프로세스를 이해한다면 대체인력을 고용하는 것이 매우 제한적인 효과만 있을 뿐임을 분명히 알 수 있을 것이다.
결국 어떠한 경우에도 은행의 영업시간 연장은 인건비 상승을 동반할 수밖에 없다. 그리고 이제 은행 이익이 아주 많기 때문에 영업시간 연장으로 인한 인건비 상승 부담은 은행이 전액 부담해야 한다는 주장을 받아들이기로 하자. 설령 그렇다고 하더라도 은행이 영업시간 연장을 위해 인건비를 부담하는 것이 적절한지는 의문이 든다. 우리가 금융산업이 낙후됐다고 하는 이유는 금융회사가 실물경제나 소비자의 수요 변화에 적절히 대응하지 못한다는 점에 있다. 그러면 지금 은행이나 금융회사는 어떠한 금융수요 변화에 대응해야 하는가? 그 대응 중 하나가 금융회사가 정보기술(IT)을 기반으로 한 정보사회화의 물결에 대응하는 것일 터다. 그렇기에 현재 정부가 핀테크를 강조하고 인터넷전문은행 설립에 박차를 가하는 것 아닌가? 소비자들이 대면 결제에서 PC나 모바일을 이용한 전자결제로 결제방식을 전환하는 환경에서 은행이 해야 할 일은 그에 필요한 기술적 발전을 도모하고 적합한 투자를 실행해 새로운 금융수요를 충족시키는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정부가 축소되는 대면 금융서비스를 위해 은행으로 하여금 비용을 지불하도록 강요한다면 그것은 그동안 추진해왔던 정책과는 정반대의 일인 것이다.
필자는 지금까지 은행이 금융 소비자의 수요를 반영해 업무를 개선하는 일에 소홀했다는 주장에 동의한다. 이처럼 은행이 금융 소비자의 요구를 등한시하고도 영업할 수 있었던 이유는 한국의 은행이 과점적인 구조를 갖고 있어 지대추구적(rent-seeking) 행동을 통해 이익을 얻을 수 있었기 때문이다. 만약 은행이 좀 더 경쟁적으로 행동한다면 정부의 지시가 없더라도 필요할 때 이익 확보를 위해 스스로 영업시간을 연장하지 않았겠는가? 요컨대 정부가 금융 소비자를 위해 해야 할 일은 은행이 경쟁적인 경영환경에서 업무를 수행하도록 금융구조를 개편하는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정부가 표피적인 은행의 영업시간 연장에 집착한다면 그것이야말로 한국 금융부문의 낙후뿐만 아니라 금융정책의 낙후를 보여주는 전거가 될 것이다.
오피니언팀 종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