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세기는 지식의 양보다 통찰의 질이 중요 깊이와 넓이 갖춘 교과과정 바탕으로 논리적 사고,토론하게 교육이 바뀌어야
박형주 국가수리과학연구소장 아주대 석좌교수
언제부턴가 취미가 딱히 없다 보니 어설픈 정보기술(IT) 얼리 어답터를 자임하게 됐다. 1990년대 초반에는 유닉스의 즉시성에 반했고, 야후가 출현하기도 전에 아무도 안 봐주는 개인 홈페이지를 운영하며 흐뭇해했다. 블로그 개념이 없던 시절에 BBS라는 엉성한 댓글 시스템으로 안 풀리는 수학 문제를 올리고 얼굴도 모르는 사람들과 치고받기도 했다. 아이폰이 나오기 훨씬 전에 마이크로소프트와 팜의 PDA 스마트폰을 사용했는데, 일기와 손글씨 메모를 적고 일정 관리를 하며 남들이 모르는 나만의 보물창고를 가진 느낌이었다. 그러다가 아이폰이 나왔고 내 은밀한 보물창고는 사라져 버렸다.
사람들은 아이폰이 만든 거대한 변화를 얘기한다. 이전의 PDA와 다를 게 없는데? 새로 출현한 것은 하드웨어가 아니라 아이튠스와 앱스토어였다. 그 전에는 멀쩡한 사람들도 죄책감 없이 음악 파일을 불법 다운로드했고, 돈 내고 소프트웨어 사면 바보 취급 받았다. 어느 날 문화가 바뀌었고 세상은 달라졌다. 앱 생태계가 만들어져서 유용한 앱이 폭발적으로 늘자 사람들은 ‘연결된 삶’의 매력에 푹 빠지게 됐다. 하드웨어는 이걸 가능하게 하는 매개일 뿐이었다. 시대를 바꾼 혁신가들이 범인보다 꼭 많은 지식을 보유했던 것 같진 않다. 그들은 모두에게 공개된 정보 가운데서 남들은 못 본 어떤 비밀을 본 것이다. ‘왜 음악 CD를 돈 주고 안 사지’라고 묻는 대신에 원하는 한 곡 때문에 다른 12곡에도 돈을 내야 하는 부조리에 주목한 스티브 잡스는 천재다. 개인 간 파일 공유(P2P)의 철옹성까지 날려버리지 않았나.
하지만 역설적으로, 그래서 21세기는 지식의 시대가 아니다. 얼마나 많이 아는가는 오히려 덜 중요해졌다. 지식의 총량에 비하면 개인 간 지식의 차이는 미미할 뿐이니까. 분수로 비유하자면 분자는 예전과 비슷한데 분모가 턱없이 커진 것이다.
21세기는 데이터의 시대도 아니다. 쏟아지는 데이터는 그 자체로는 의미 없는 숫자들일 뿐이라서 그 속에 숨어 있는 의미를 읽어내지 못하면 쓸데가 없다. 결국 21세기는 ‘지식 과잉’과 ‘무한 정보’로 요약된다. 방대한 지식과 데이터에 묻혀 길을 잃는 사람들 속에서 데이터의 함의를 읽어내며 닥친 문제의 본질을 보고 해결하는 능력이 시대를 이끈다. 바야흐로 지식의 시대는 저물고 통찰의 시대가 온 것이다.
지식을 수평적으로 나열하는 게 아니라 계층적으로 분류하는 능력이 통찰이다. 방대한 지식을 습득해서 수평적으로 나열해 머릿속에 보관하면 지식 사이의 상호연계나 맥락이 보이지 않는다. 주요 키워드인 총론과 그에 속하는 각론을 여러 단계로 계층적으로 분류할 수 있으면 자기 앞에 닥친 문제의 맥락을 이해하고 그 상위 가치와 하위 지식의 연계가 보인다. 필요한 지식을 파악해 학습할 수 있다. 그러니까 얼마나 많이 아는가가 아니라 닥친 문제의 본질을 읽어내고 필요한 지식을 그때그때 학습할 수 있는 능력이 혁신가의 자질이다.
흔히 말하는 창의적 사고나 논리적 사고는 이런 통찰력의 주요 요소가 된다. 우리 아이들이 살아갈 미래에서 가장 중요한 자질이고 공교육이 집중해야 할 부분이다. 세상의 문제를 해결하는 산업수학이 요즘 성공 사례를 만들어 내는 이유도 닥친 문제의 논리적 분석을 통해 연계된 지식의 틀이 드러나기 때문이다.
단순 문제풀이의 반복은 줄이되 깊이와 넓이를 갖춘 교과과정 아래에서 논리적 사고와 깊이 있는 토론의 유용함을 체득하도록 우리 교육이 변해야 한다.
박형주 국가수리과학연구소장 아주대 석좌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