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륄라비는 걸음을 옮기며 푸른 바다와 하늘, 하얀 돛, 곶의 바위를 바라보았다. 모든 것이 너무나 아름다워서 마치 학교 같은 건 일찍이 존재한 적이 없었던 듯한 느낌이었다. ―오늘 아침, 학교에 가지 않기로 결심했다(르 클레지오·파랑새·2003년) 》
한 사회복지단체가 운영하는 공부방에서 토요일마다 학생들을 가르친다. 과목은 영어다. 2시간의 수업시간 동안 대학수학능력시험 기출문제들을 푼다. 수능시험일이 약 3주 앞으로 다가온 지난 주말엔 아이들 표정이 유독 어두웠다. 스트레스에 “속이 불편하다”며 식사를 못하는 학생도 있었고 두통이 생긴 아이도 있었다. 지난 1년 동안 잠도 제대로 못 자고 수능 공부에 매달려왔으니 체력이 바닥나는 게 당연했다. 안쓰러웠다. 내가 그동안 너무 빡빡하게 수업을 해온 건 아니었는지, 미안한 마음도 들었다.
문득 고등학교 때 학교 책상 서랍 속에 넣어두고 읽던 짧은 소설 한 편이 생각났다. 프랑스 작가 르 클레지오의 ‘오늘 아침, 학교에 가지 않기로 결심했다’다. 이 책의 주인공인 사춘기 소녀 륄라비는 부모님 몰래 학교를 빠지고 지중해변을 거닌다. 절벽 위의 빈집에 들어가 멍하니 수평선을 바라보기도 하고 물고기를 잡는 또래 친구를 사귀기도 한다. 난생 처음 학교 밖을 혼자서 여행하면서, 륄라비는 이전에는 느끼지 못했던 해방감을 얻는다. 학교에서 가르치는 삶의 방식이 인생의 유일한 선택지가 아니라는 사실도 깨닫는다. 륄라비가 며칠씩 무단결석을 해 문제를 일으켰지만 한국 학생들은 이런 자유를 느낄 시간이 너무 부족하다. 과외 활동이 부족한 것은 둘째 치고라도, 학업에서 오는 스트레스를 풀 최소한의 여가 시간도 아이들에게 없는 것처럼 보인다. 지난해 한국 청소년들의 행복도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가운데 꼴찌였다는 뉴스는 이제 우리에게 새로운 소식이 아니다.
천호성 기자 thousand@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