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수용 기자
국세청 관료가 최근 알려준 가짜 기름 피하는 노하우 중 가장 솔깃했던 것은 “천장에서 주유 호스가 내려오는 ‘천장형 주유기’를 이용하라”였다. 이유는 이렇다. 보통 기름 사기꾼들은 땅 속에 정품 탱크와 가짜 탱크를 묻은 뒤 리모컨으로 조작한다. 일반 고객이 오면 리모컨으로 가짜 기름을 흘려보내고 단속원 같은 고객이 뜨면 급히 버튼을 눌러 정품을 넣는다. 하지만 천장에 달린 호스는 길어서 가짜 기름을 넣다 정품으로 바꿔도 호스에 가짜 휘발유가 남는다. 이 때문에 사기꾼도 천장형 주유기로는 가짜 기름을 잘 넣지 않는다.
이 요령은 위험한 재테크 세계에서 사기를 예방하는 방법으로 응용할 수 있다. 먼저 새 투자를 시작할 때 주유기 호스 격인 투자 과정을 꼭 들여다보라. 금융 사기가 시작되면 돈이 흐르는 통로에서 사기 조짐이 드러나기 마련이다. 예를 들어 조희팔 사기의 매개체였던 다단계 의료업체는 투자 과정을 검증할 수 있었다. 공정거래위원회의 다단계 판매업자 재무 및 사업정보(www.ftc.go.kr/info/bizinfo/mlmList.jsp)를 검색하면 된다. 여기에는 다단계 업체의 대표 교체 상황, 다단계 매출 상위 상품, 반품 및 환불 요청 건수, 시정 조치 건수 등 회사 운영과 관련된 사항이 정리돼 있다. 여기에 등록돼 있지 않다면 사기성이 짙다. 조희팔 업체도 비등록이었다.
재테크 세계 곳곳에는 합법이지만 사기에 가까운 위험도 도사리고 있다. 고객이 손실을 볼 가능성이 매우 높은데도 금융회사의 철저한 사전 계획과 영업직원의 자신만만한 프레젠테이션을 거치면서 ‘고수익을 위해 감수해야 할 리스크’로 포장된다.
주유기(금융 상품 판매회사)를 잘 골라야 이런 위험을 피할 수 있다. 주유소는 가짜 기름을 팔 때 고객을 출구 쪽 주유기로 유도하는 경향이 있다. 출구 쪽 주유기에 가짜 기름 탱크를 묻어 둔 뒤 차량 흐름을 원활히 한다며 차들을 안내하는 것이다.
과거 회사채 부실 판매 사례를 보면 금융 상품 판매 회사들은 정상적인 루트로는 상품을 팔기 어려워질 때마다 ‘VIP 고객에게만 알려 주는 고급 정보’라며 투자자를 벼랑 쪽으로 유인했다. 고객이 원금 손실의 위험을 인지한 상태에서 스스로 결정한 투자라는 서류상의 경고문에 서명토록 한 뒤 부실 상품을 팔아 치웠다. 가짜 기름 탱크 쪽으로 고객을 몰아 댄 뒤 셀프 주유토록 한 셈이다.
단속반원들이 주유소 기름값이 주변 시세보다 L당 몇 백 원이나 싼 주유소를 의심하듯 비상식적으로 높은 이자를 주겠다면 경계해야 한다. 금융권 프라이빗뱅커(PB)들은 지금은 연리 10%를 정상 투자로 올릴 수 있는 상한이라고 본다. 이 선을 넘는 수익률을 ‘보장’한다는 광고는 사기성이 있다고 봐야 한다.
연말까지 최고 투자처는 올해 말이 시한인 재형저축(만기 때 전체 수익에 비과세), 소득공제장기펀드(연간 240만 원까지 소득공제)다. 재형저축은 연봉 5000만 원 이하인 근로자나 연소득 3500만 원 이하인 자영업자가 가입할 수 있다. 소장펀드는 연봉 5000만 원 이하인 직장인이 대상이다. 내년 1월 이후에는 모든 근로자와 사업자가 가입할 수 있는 개인종합자산관리계좌(ISA·순수익 200만 원까지 비과세)가 유망하다. 이 상품들은 공인 주유소의 길고 투명한 주유 호스를 통해 팔린다. 대박은 기대할 수 없지만 정품 기름을 살 수는 있다.
홍수용 기자 legman@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