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모레퍼시픽 창업자 서성환 평전/ 나는 다시 태어나도 화장품이다]<1>소년과 어머니의 부엌
예성강 줄기의 상로를 수도 없이 오가며 동백기름을 만들어 팔던 장원의 젊은 시절 모습. 아모레퍼시픽 제공
‘냄새나는 걸인을 저렇게까지 꼭 집에 들여야 하나?’
윤독정 여사는 식구들의 불만도 못 들은 체하고 동냥 온 걸인에게 따로 차린 밥상을 선뜻 내어주곤 했다. 베풀기를 좋아하는 타고난 마음 씀씀이 때문이었다. 장원 서성환 회장은 그런 어머니 윤 여사와 평범한 농부였던 아버지 사이에서 1924년 3남 3녀 중 차남으로 태어났다.
좋은 제품을 만들기 위해 가장 중요한 것은 좋은 원료의 확보였는데, 윤 여사는 그동안 쌓은 신뢰를 바탕으로 전국의 보부상으로부터 좋은 동백나무 열매를 공급받을 수 있었다. 여기에 숙련한 실력과 신용도가 더해지며 윤 여사의 동백기름은 점점 입소문을 타고 전국으로 퍼져나가기 시작했다.
‘창성상점’이라는 간판을 건 장원의 집에서 머릿기름을 팔던 그녀는 제품에 ‘창성당 제품’이라고 표기했다. 당시 최고급 화장품이라는 뜻으로 ‘당급 화장품’이라는 말이 유행했는데, 창성상점에서 만든 제품이 당급 화장품으로서의 가치가 있다는 자신감의 표현이었다.
16세 때 중경보통학교를 졸업한 장원은 상급학교에 진학하지 않고 가업을 돕기로 했다. 그의 첫 번째 임무는 원료와 자재 구매였다. 물자가 부족하고 귀하던 시절이라 원료 확보가 사업의 기초 능력인 셈이었는데, 어머니는 귀한 원료를 구하러 남대문시장의 거래처를 찾아가는 일을 아들 장원에게 맡겼다.
시장에 가는 날이면 장원은 도시락 세 개를 자전거에 단단히 묶고 채 어둠이 가시지 않은 새벽길을 나서곤 했다. 가는 길에 날이 밝으면 도시락 하나를 먹고, 일을 마친 뒤 또 하나를 먹고, 돌아오는 길에 남은 하나를 먹었다. 이렇게 세끼를 식은 도시락으로 때우며 자전거로 오가는 길은 단순한 장삿길이 아니라 소년 장원에게 더 넓은 세상으로 나아가는 통로였고 흙과 바람, 자연을 만나고 사람을 사귀며 세상을 배우는 학교였다.
정리=박선희 기자 teller@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