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 트렌드 생활정보 International edition 매체

드라마 속 ‘심야식당’처럼… 따뜻함과 이야기를 팝니다

입력 | 2015-10-27 03:00:00

[청년사장 전통시장 진출기]<3>청주 서문시장 안치순 씨




23일 밤 12시 가까운 시간. 조리대에서 환하게 웃고 있는 안치순 씨. 안 씨의 요리 철학은 정성에서 시작된다. 기본기가 좋은 요리를 만드는 것도 그의 신념이다. 백연상 기자 baek@donga.com

“만코이 한 잔씩 하시죠”

23일 오후 11시경. 이날 일본 여행에서 돌아온 김남욱 씨(40)가 가져온 일본 가고시마(鹿兒島) 현 아마미(奄美) 제도의 명주 만코이가 한 잔씩 돌아가자 처음 얼굴을 마주한 이들도 이내 환한 미소를 주고받았다. 술 한 잔과 맛있는 음식이 들어가니 26.44m² 크기의 조그마한 식당 안은 금방 훈기로 가득 찼다. 나이 성별의 차이와는 상관없이 자신의 진솔한 이야기를 털어놓으며 충북 청주시 상당구 서문시장 내 안치순식당의 밤은 계속 깊어져 갔다.

○ 대화가 활짝 꽃피는 심야 식당

안치순식당은 만화가 원작인 일본 드라마 ‘심야식당’을 모티브로 젊은 청년 요리사인 안치순 씨(26)가 만든 식당이다. 드라마의 식당 주인 역을 맡은 배우 고바야시 가오루(65)는 나이가 지긋하지만 안 씨는 젊다. 하지만 드라마의 심야식당이 주는 따뜻한 감성은 그대로 간직하고 싶다는 것이 그의 소망이다.

식당을 열기 전 잠시 바를 운영했던 안 씨는 술에 취해 비틀거리는 사람들을 보면서 취객들에게 필요한 것은 일시적인 쾌락을 주는 술이 아니라 따뜻한 음식과 인간적인 유대와 소통이란 것을 깨달았다. 언젠가는 따뜻한 음식 하나에 모두가 즐겁게 소통하는 식당을 만들고 싶다는 바람 끝에 4년 만에 직접 식당을 차린 것이다. 임차료가 적고 ‘삼겹살 거리’로 유명해 정감 있는 분위기를 가진 이 지역이 ‘심야식당’ 콘셉트와 잘 어울린다고 생각했다.

안 씨의 식당은 문을 연 지 6개월이 채 안 됐지만 단골손님이 제법 많다. 그렇지만 식당은 총 8석뿐이어서 손님이라고 해야 하루 평균 24명 정도다. 이날도 오후 11시 넘어 5, 6명이 식당을 찾았지만 식사를 하지 못하고 아쉽게 돌아가야 했다. 손님들이 시장 내 조그마한 식당을 이토록 찾는 이유는 무엇일까. 이날 자신이 사 온 일본 명주를 다른 손님들에게 나눠 준 김 씨도 일주일에 2, 3번씩 찾는 단골손님 중 한 명이다. 김 씨는 “혼자 식당을 찾아도 분위기가 좋아 다른 손님들과 쉽게 어울릴 수 있고 식당 주인인 안 씨와도 여러 가지 대화를 나눌 수 있어 자주 찾게 되는 것 같다”고 밝혔다.

이곳의 특징은 음식을 만드는 사람과 그것을 먹는 사람이 서로 교감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일본 현지에는 요리사와 손님이 서로 이야기를 나누며 음식을 먹는 곳이 많지만 한국에서는 고급 일식집 외에는 찾아보기 힘들다. 음식을 두고 나누는 대화는 대화 그 이상의 의미를 지닌다. 손님들은 내가 먹고 있는 음식의 재료가 무엇인지 요리사가 어떤 방식으로 만드는지 알 수 있고 요리사는 손님 개개인의 입맛을 파악할 수 있다. 이날도 손님들은 “회를 어떤 방식으로 삭힌 것이냐”, “이 해초의 이름은 무엇이냐” 등 여러 가지 질문을 하며 음식을 즐겼다.

안치순식당 메뉴에는 ‘오마카세’ 단 한 가지만 있다. 오마카세는 ‘맡긴다’는 뜻의 일본어로 요리사에게 알아서 메뉴를 구성해 달라는 것. 오마카세 메뉴를 달라는 순간 손님은 요리사에게 전적인 신뢰를 보내는 것이다. 이 메뉴는 계절에 따라 재료 수급 사정에 따라 달라질 수 있기 때문에 자주 방문하는 단골에게도 어떤 음식이 나올지 기다리는 재미를 준다. 이날은 고추냉이를 곁들인 달걀말이로 시작해, 보리된장, 하이라이스, 돼지미소국, 고등어조림, 6가지 종류의 회, 명란 구이, 튀김 등이 차례로 나왔다. 손님들이 먹는 속도를 관찰하면서 템포에 맞게 음식을 내주는 안 씨의 손놀림은 일본 현지 음식점에서나 볼 수 있는 광경이다.

○ 음식의 처음과 마지막은 정성

따뜻한 식당을 만드는 것이 꿈인 안 씨지만 음식에 대해서는 한 치의 양보를 하지 않는 것이 그의 철칙이다. 안 씨는 식당을 열기 전 4년간 일식집에서 일하면서 많은 마찰을 빚었다고 털어놨다.

“담배를 피운 후 손을 씻지도 않고 그대로 초밥을 만드는 요리사도 있었고 일정 수준이 되면 어떤 노력도 하지 않고 음식을 대충 만드는 요리사도 많이 목격했습니다. 그때마다 회의를 느끼기도 했습니다.”

안 씨는 돌파구를 독서에서 찾았다. 그는 음식 관련 책이라면 닥치는 대로 읽었다. 하루 평균 14시간씩 서서 일했지만 남보다 일찍 일어나 책을 읽었고 일하는 사이에도 시간이 나면 관련 자료를 읽었다. 그가 읽은 책은 발효 기법에서부터 고전 일식 요리까지 다양했다. 결국 일을 하며 독학으로 요리를 연구한 그는 자신의 식당을 내는 데 성공했다. 기본에 충실하자는 생각에 재료 각각의 특징부터 조리 기구의 특성까지 파악하는 데 시간을 아끼지 않았다. 안 씨는 “요리의 세계는 끝없는 공부의 길이다”라고 설명했다.

안 씨가 생각하는 가장 좋은 요리는 무엇일까. 그는 가장 좋은 요리는 바로 ‘정성’이 가득 들어간 요리라고 설명했다. 정성은 그 어떤 조미료로도 대체할 수 없다는 것이다.

그는 예로 토란 껍질을 벗기는 행위도 정성이 들어가면 어떻게 달라지는지 설명했다.

“원래 옛날 사람들은 토란 껍질을 칼이 아닌 두꺼운 행주로 살살 벗겨 냈습니다. 칼보다는 손이 많이 가지만 껍질과 알맹이 사이에 붙어 있는 얇은 층이 재료의 맛을 더 좋게 한다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이것이 바로 재료를 소중히 생각하는 마음입니다.”  
▼ 전국 첫 삼겹살 거리… 다문화 풍물야시장으로 각광 ▼

청주 서문시장의 어제와 오늘

8일 처음으로 문을 연 충북 청주 서문시장 내 풍물야시장. 세계 각국의 먹을거리부터 공예품까지 다양한 물건을 매일 오후 6시부터 밤 12시까지 판매한다. 청주=백연상 기자 baek@donga.com

23일 오후 10시. 충북 청주 서문시장에서 가장 유명한 삼겹살 거리 한가운데에 늘어선 20여 개의 가판대에 사람들이 몰려 있었다. 다소 늦은 시간이지만 연인들부터 가족까지 다양한 인파로 붐볐다. 가판대에서는 우크라이나식 돼지꼬치서부터 베트남식 쌀국수, 그리고 호떡 등 한국 음식까지 다양한 음식을 판매하고 있었다.

8일 문을 연 서문시장 내 150m 구간에 자리 잡은 서문 풍물야시장은 20여 개의 가판대에서 전통 음식, 다문화 음식, 예술·공예품 등을 팔고 있다. 서문시장은 원래 삼겹살 거리로 유명하지만 요즘은 풍물 야시장으로 더 유명하다. 매일 오후 6시부터 밤 12시까지 세계의 다양한 음식이 시장을 찾는 고객들을 맞는다.

풍물야시장은 청년 창업자, 다문화가정과 한 부모 가정 등 저소득층 주민이 운영에 참여하는 것도 특징이다. 청주시는 야시장에서 판매하는 음식의 위생 관리를 위해 ‘이동 판매대 즉석 판매 제조가공업 시설 기준 적용 특례 운영 규정’을 만들었다. 서문 풍물야시장은 도시 활력 증진 사업을 위해 청주시 도시재생지원센터가 후원하고 서문시장상인회에서 주최하는 사업이다. 청주시 관계자는 “서문 풍물야시장 개장으로 서문시장 삼겹살 거리에 젊은층을 비롯한 다양한 계층이 유입돼 서문시장에 활력을 불어넣을 것으로 기대한다”고 밝혔다.

서문시장은 이와 함께 강세를 보여 온 삼겹살 거리의 전통을 이어가고 있다. 청주는 삼겹살 문화에 자부심을 가지고 있다. 1960년대 초반 전국 최초의 삼겹살집이 생겼다는 곳도 청주다. 서울보다도 10여 년 정도 앞선다.

이곳은 연탄불에 석쇠를 얹어 왕소금을 뿌려 먹는 소금구이와 간장 소스, 파절이 등 독특한 삼겹살 문화로도 유명하다. 60여 년의 역사를 가진, 청주의 대표 시장 중 하나인 청주 서문시장은 1990년대 중반까지만 해도 평일이나 주말 가릴 것 없이 손님들로 북적이던 곳. 이곳 상인 중 상당수가 ‘손꼽히는 부자’라는 말이 나돌 정도였다. 하지만 도심 공동화가 진행되는 와중에 시장 코앞에 대형 마트가 등장하면서 직격탄을 맞았다.

2012년 청주시와 시장 상인회가 찾은 해답은 삼겹살 거리 조성이었다. 세종실록지리지 충청도 편에 돼지고기를 공물로 바치던 곳으로 기록돼 있다는 점에 착안했다.

초기에는 홍보에 어려움을 겪었지만 차츰 입소문이 나면서 청주의 명소로 자리 잡기 시작했다. 청주국제공항을 통해 입국하는 중국인 관광객들의 발검음도 잦아졌다. 지난해 7월 1일 박근혜 대통령의 방문은 삼겹살 거리의 명성을 더욱 높였다.

청주=백연상 기자 baek@donga.com

관련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