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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과 내일/정연욱]퇴임 후 안전판은 없다

입력 | 2015-10-27 03:00:00


정연욱 정치부장

1996년 15대 국회의원 총선거를 앞두고 부산의 지역구 수는 21곳으로 늘어났다. 직전 총선 때 지역구(16곳)에 비하면 30% 정도 증가한 것이다. 선거구 조정의 결과로 단순하게 넘길 수도 있지만 당시 여권 핵심부는 ‘21석’에 주목했다. 지역구 수가 국회 교섭단체 기준(20석 이상)을 넘긴 만큼 부산에서 ‘김영삼(YS)당’을 만들 수 있다는 관측이 나왔다. 부산은 YS 정권의 기반이었다.

이런 분위기 탓인지 당시 여당인 신한국당 공천에서 새누리당 대표 김무성을 비롯해 홍인길, 정의화, 정형근 등 ‘YS계’가 대거 진출했다. 선거 결과 신한국당은 부산 지역구 21곳을 ‘싹쓸이’했다. 여권 내부에선 ‘YS당’은 YS의 퇴임 후 안전판 역할을 할 것이라는 그랜드 플랜이 가동됐다는 얘기까지 나돌았다.

현실은 엄혹했다. 장밋빛 청사진은 청사진일 뿐이었다. YS계는 대선후보 경선과정에서 서로 등을 돌렸다. 차기 향배를 놓고 이회창 대세론이 확산되자 YS계는 자중지란을 겪었다. 누구는 이회창을 밀었고, 누구는 ‘반(反)이회창’을 선언했다. 부산을 무대로 한 ‘YS당’ 구상은 어디까지나 그림일 뿐이었다. 퇴임 후 ‘YS당’을 만들면 무엇이든지 가능할 것 같았던 안전판은 없었다.

청와대를 떠난 뒤 YS는 분노했다. 이회창 쪽에 줄을 섰다고 판단한 김무성을 향해 “배신자”라는 격한 표현을 쏟아냈다. 내 밑에서 정치적으로 컸고, 국회의원 배지까지 달아놓고서 이제 와서 등을 돌린다? 청와대를 나온 뒤 허전한 상황에서 ‘배신의 정치’를 떠올릴 만했을 것이다. 김무성은 ‘배신자’란 소리를 전해 듣고 통한의 눈물을 흘리기도 했다. 정치 입문을 ‘YS계’로 시작했으니 가슴에 사무쳤을 것이다. 세월이 지나 김무성은 YS를 만난 자리에서 “내가 정말 배신자입니까”라고 항변했다는 후문이다.

임기 반환점을 돈 박근혜 대통령도 한때 정치적으로 충돌하긴 했지만 YS의 심정을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시간은 달랐지만 박 대통령도 등락의 궤적을 걸어오면서 ‘배신의 코드’에 익숙해졌다는 이유에서다.

아버지 박정희의 유고 이후 20년 가까이 야인(野人)생활을 거치면서 주변 사람들이 다양하게 변하는 모습을 지켜봤다고 토로하기도 했다. 2007년 한나라당 대선후보 경선 과정에선 한때 ‘박근혜 지지’를 선언했던 많은 사람들이 줄줄이 말을 바꿔 타는 과정도 봐야 했다.

대구경북(TK)에선 박 대통령과 함께 있는 사진을 찍는 일이 최고의 선거운동으로 통한다. 사진 한 컷으로 박 대통령의 ‘콘크리트 지지층’을 확보할 수 있다는 경험칙 때문이다. 박 대통령도 그런 사정을 모르진 않을 것이다. 그래서 자신을 떠났거나 등을 돌렸다고 생각하는 정치인들이 더 야속하게 느껴질 것이다.

이런 분위기를 의식한 탓인지 여권 주변에선 친박(친박근혜)계를 중심으로 심심찮게 박근혜 호위그룹을 만들어야 한다는 얘기가 나돌고 있다. 유승민 파문을 거쳐 공천 룰 내전(內戰)이 계속되면서 목소리는 더 커지는 모습이다. 퇴임 후 안전판을 위해서라도 ‘박근혜 사람’을 적극 공천해야 한다는 논리다. 구체적인 전략 공천지로 박 대통령의 영향력이 센 TK를 중심으로 서울 강남권 등 여당 강세지역이 거론된다. 이런 얘기를 듣다 보면 20년 전 ‘부산 YS당’ 구상이 떠오른다. 거창한 명분과 ‘자기 정치’의 가운데서 곡예를 보는 듯하다.

지난 일을 되돌아보면 퇴임 안전판은 없었다. 5년 단임제 대통령은 현재 권력과 미래 권력의 함수관계를 벗어나지 못했다. 박 대통령은 담담히 그 길을 받아들이면 된다. 단순화하면 길이 보인다.

정연욱 정치부장 jyw11@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