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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反난민’ 퍼지는 유럽… 정치 우경화 조짐

입력 | 2015-10-27 03:00:00

난민사태가 바꿔놓은 유럽 정치지형




25일 실시된 폴란드 총선에서 난민 수용에 반대하는 법과정의당(PiS)이 과반 의석을 차지하며 8년 만에 재집권에 성공했다. 앞서 18일 실시된 스위스 총선에서도 스위스국민당(SVP)이 주도하는 중도우파 연정이 승리했다. 올해 들어 중동과 아프리카에서 67만 명 이상의 난민이 유럽으로 몰려드는 상황에서 보수 정당들이 “우리 것을 지켜내자”며 난민에 대한 거부감을 자극해 연승을 올리고 있는 것이다.

폴란드 국영방송 TVP가 25일 실시한 총선 출구조사에 따르면 야당이던 PiS는 득표율 39.1%로 집권여당인 시민강령(PO)을 16%포인트 차로 압도했다. 의석수로 보면 전체 460석 중 PiS가 242석, PO가 133석을 차지해 PiS 단독으로도 집권이 가능하다. 폴란드에서 단일 정당이 과반수 의석을 얻어 집권에 성공한 것은 1989년 공산당 정권이 무너진 이후 처음이다.

이날 출구조사가 발표된 뒤 PO를 이끈 에바 코파치 총리는 패배를 시인했다. PiS의 야로스와프 카친스키 당수(66)는 이번 승리를 자신과 쌍둥이이자 2010년 불의의 비행기 사고로 숨진 레흐 카친스키 전 대통령의 공으로 돌렸다.

카친스키 형제는 열세 살 때 영화 ‘달을 훔친 두 사람’(1962년)에 출연한 이후 닮은꼴 인생을 살았다. 나란히 바르샤바대에서 법학을 전공한 변호사가 된 쌍둥이는 폴란드 민주화운동에 투신했고 민주화 이후엔 나란히 정치인으로 변신했다. 2001년엔 PiS를 함께 창당하고 2005년 레흐는 대통령, 2006년 야로스와프는 총리에 당선되며 폴란드의 이원집정제를 이끄는 쌍두마차가 된다. 하지만 2007년 10월 총선에서 PO에 패배한 이후 야로스와프가 총리에서 물러나고 2010년엔 레흐가 비행기 사고로 숨지면서 PiS는 위기에 빠진다.

홀로 남은 야로스와프는 절치부심 끝에 자신은 킹메이커에만 머물며 젊은 대통령 후보와 여성 총리 후보를 내세웠다. 그 결과 5월 대통령 선거에선 43세의 안제이 두다가 최연소 대통령에 당선됐고 이번 총선에서는 코파치의 대항마로 발탁한 무명의 여성 정치인 베아타 시드워(52)를 총리로 만들었다.

난민 사태에 따른 국민적 불안을 파고드는 선거 전략도 주효했다. 유럽연합(EU) 체제에 회의적인 PiS는 EU가 할당한 난민 7000명 수용에 거부감을 드러내며 유로화 사용에도 반대 목소리를 높였다. 이와 함께 저소득층 감세와 75세 이상 노인에 대한 공짜 약 제공 같은 포퓰리즘 공약을 내걸어 유권자들의 환심을 샀다.

이에 앞선 18일 실시된 스위스 총선에서 보수정당인 SVP의 득표율 29.4%는 2011년 총선 득표율 26.6%(54석)보다 2.8%포인트 오른 것으로, 단일 정당이 거둔 총선 결과로는 한 세기를 걸쳐 가장 높았다. SVP의 연정파트너인 중도우파 자유민주당(FDP)의 득표율도 16.4%로 지난 총선보다 1.3%포인트 올라 3개 의석이 늘면서 이들 우파연정은 전체 200석 중 절반에 가까운 98석을 차지했다. 독일에선 난민 수용에 적극적인 앙겔라 메르켈 총리의 지지도가 역대 최저인 30%대로 떨어졌고, 오스트리아의 빈 시장 선거에선 극우 성향의 자유당 후보가 역대 최고인 32.3%의 득표율을 기록했다.

난민 홍수로 유럽의 우경화가 강화되는 가운데 유럽연합(EU)과 발칸 지역 11개국 정상은 25일 그리스와 동유럽 일대에 총 10만 명 규모의 난민수용소를 짓기로 했다고 AP통신이 보도했다. 벨기에 브뤼셀에서 이뤄진 이번 합의에 따라 난민들의 1차 관문인 그리스에 연말까지 5만 명 규모의 난민수용소를, 마케도니아와 세르비아 등 난민들의 서유럽행 경로인 발칸 지역에 역시 5만 명 규모의 수용소를 각각 새로 건설한다. 이번 난민수용소 건설은 유엔난민기구(UNHCR)가 지원할 예정이다.

이번 조치는 특히 지난달 중순 이후 난민 25만 명이 서유럽과 북유럽으로 가는 길목인 발칸지역으로 몰려듦에 따라 이뤄졌다. 난민들의 유입 속도를 늦추기 위한 방안도 마련했다. 유럽 정상들은 EU 국경관리기관인 프론텍스(FRONTEX)가 그리스와 마케도니아 국경에서 등록된 난민만 넘어올 수 있도록 검색을 강화하는 데 합의하고, 슬로베니아 국경에는 400명의 국경수비대를 배치하기로 했다.

권재현 confetti@donga.com·이설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