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성군서 사과재배 70대 농부, 50년 노하우 교재로 만들어 보급 ‘한국형 사과’ 매뉴얼도 만들기로
50년 간 농약과 비료 없이 사과를 재배해 온 전춘섭 씨가 지난달 말 전남 장성군 남면 평산리 자신의 농장에서 ‘기적의 사과’ 재배법을 담은 책을 만들어 보급하겠다는 뜻을 밝히고 있다. 이형주 기자 peneye09@donga.com
전남 장성군 남면 평산리 황토밭 8100m²(약 2450평) 농장에는 사과나무 470그루가 자라고 있다. 나무 사이 간격은 다른 농장에 비해 두 배 정도 넓은 4m에 이른다. 다른 농장에 비해 면적 대비 사과나무 수가 절반에 불과해 이 곳의 사과나무는 가지가 충분히 자랄 수 있어 상대적으로 건강하다.
이 농장은 전춘섭 씨(76)가 2007년 조성했다. 사과는 병해충이 가장 많은 과일에 속해 일반적으로 1년에 13번 정도 농약을 뿌려야 한다. 하지만 전 씨는 8년 동안 농약은 물론 비료조차 뿌린 적이 없다. 농장 운영 초기 3년은 장갑을 낀 손으로 벌레를 잡았다. 사과를 쪼아대는 새들은 종소리를 울려 쫓아냈다. 최근에야 병해충 포집기를 이용해 각종 벌레를 잡게 되면서 일손이 조금 줄었다.
같은 면적의 일반 농장에서 사과를 연간 10만 개 정도 수확하는 것을 감안하면 절반에도 미치지 못하지만 크기와 맛에선 압도적으로 좋다. 기적의 사과나무가 자라는 토양은 8년간 각종 풀이 자라고 고사하면서 유기물이 풍부하다. 비료를 쓰지 않았지만 흙은 생명력을 유지하고 있다. 이 곳의 사과가 함유한 항암물질이 일반 사과보다 두 배 정도 많은 이유다.
무 농약, 무 비료의 자연농법은 환경 보전기능을 최대한 강조하지만 생산성이 떨어지는 것이 단점이다. 50년 째 농사를 짓고 있는 전 씨는 사과나무 재배에 한국형 자연농법을 처음으로 도입해 작은 성공을 거두고 있다. 그는 자연 상태에서 자란 건강한 농작물이 사람의 생명력을 높인다고 믿고 있다. 전 씨는 “처음 농장에서 사과를 재배할 때 주변에서 어리석은 짓을 하고 있다고 했지만 흙의 생명력을 믿었다”면서 “농약과 비료가 없어도 몸에 좋은 사과를 재배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줘 뿌듯하다”고 말했다.
전 씨는 내년부터는 기적의 사과가 일반 농장 수확량과 같은 10만개 정도 열려 상품성을 갖출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전 씨는 올해부터 한국형 자연 사과 재배 교재(매뉴얼)를 만드는 일을 시작해 2017년 다른 농민들에게 보급할 계획이다. 전 씨가 교재를 만들어도 혹독한 검증과정을 거쳐야 할 것으로 보인다. 사과 수확량이 해마다 바뀌는 ‘해갈이’ 문제를 해결하고 기상변화에도 최소 3년간 경제성을 확보해야 하기 때문이다.
이상돈 국립농업과학원 유기농업과 연구사는 “농민에게 보급하기 위해서는 안정적인 수확량 확보가 중요하다”면서 “매뉴얼을 만들고 널리 보급하겠다는 그 자체만으로도 의미 있는 작업”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