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망 1주기에 부쳐
남궁연 크리에이터·공연연출가
사람은 누구나 태어나는 동시에 또한 죽을 ‘운명(運命)’을 타고납니다. 그리고 어느 누구도 순리를 거스를 수 없습니다. 하지만 ‘운명(殞命)’이 자연적인지 인위적인지에 따라 슬픔의 크기가 달라지는 것이 문제입니다.
만약에 신해철의 사망 원인이 교통사고였다면 슬픔과 아쉬움의 크기는 지금과 같더라도 아마 원망은 없었을 것입니다. 같은 사망사고인데도 교통사고와 의료사고 사이에 존재하는 그 크나큰 차이를, 지난 1년 동안 가족들이 겪는 고통을 지켜본 사람으로서 이야기해 보고자 합니다.
문제는 교통사고와 의료사고에 적용되는 시스템의 차이에 있습니다. 교통사고는 첫째, 사고가 나면 경찰이 즉각 출동합니다. 현장 상황을 체크하고 가해자와 피해자를 가립니다. 둘째, 이후 과실비율을 산정하는데, 이때 ‘자동차 사고 과실비율 인정 기준’이라는 것에 따라 보험사에서 보험금을 지급합니다. 더 이상 길게 설명하지 않아도 이 교통사고 처리에는 일종의 ‘약속’이 존재한다는 것을 알 수 있을 겁니다. 아마도 그 약속은 이런 것일 겁니다. “확률상 교통사고는 날 수밖에 없다. 고의가 아닌 이상 가해자도 보호되어야 한다. 또 이에 대비하여 보험료를 내기로 한다.”
대한민국에서 일어나는 의료사고는 어떨까요? 아직까지 의료사고에 관해서는 이런 ‘약속’이 없습니다. 다시 말해 피해자가 모든 걸 알아서 해야 합니다.
그 이유로 첫 번째, 2012년 4월부터 시행된 의료분쟁조정제도는 현행법상 사고가 났다고 해서 자동 개시되지 않습니다. 사람 목숨이 달려 있는데 경찰이 즉각 출동해 조사하는 교통사고 때와 너무 다릅니다.
둘째, 한국의료분쟁조정중재원에 조정을 요청해도 당사자 쌍방이 모두 동의해야 합니다. 이것은 의사와 병원 측이 얼마든지 중재를 거부할 수 있다는 뜻입니다. 이렇게 되면 피해자가 중재를 신청해도 조정은 시작조차 할 수 없습니다. 소비자 피해나 언론 피해 등 다른 분쟁이 생기면 피해자의 조정 신청으로 중재가 자동 시작되는 것과는 너무 다른 시스템입니다. 이런 사실은 병원들의 중재 거부율이 지난해 45.6%까지 올랐다는 동아일보 보도에서도 확인됐습니다. 피해자가 조정을 신청했을 때 병원들이 의무적으로 출석하도록 하는 조치가 필요합니다.
지난 1년간 우리는 신해철의 사망 원인을 밝히려고 노력해 왔습니다. 아니 싸우고 있습니다. 유가족이 겪고 있는 고통은 슬픔을 추스를 시간도 없이 피해를 증명하기 위해 누군가와 다퉈야 한다는 데 있습니다. 현재 불완전한 형태로 남아 있는 의료사고 피해구제 및 의료분쟁조정법의 개정이 시급한 이유이기도 합니다. 고인이 생전 투병 중인 아내를 위해 만든 노래 ‘단 하나의 약속’의 가사 일부입니다.
‘하늘이 무너진다 해도/하나만 약속해줘/어기지 말아줘/다신 제발 아프지 말아요/내 소중한 사람아/그것만은 대신 해 줄 수도 없어.’
신해철의 죽음이 우리 사회에 또 하나의 ‘약속’이 만들어지는 밑거름이 되길 간절히 바랍니다.
남궁연 크리에이터·공연연출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