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1010호/커버스토리 | 대국민 사기극 KFX 03] 한국의 ‘굴욕외교’에도 美 기술 이전 불허…“동맹의 본질 재고해야”
유로파이터 타이푼에 장착된 유로레이더 CAPTOR AESA(능동형위상배열) 레이더의 모습(점선 부분).
장하준 영국 케임브리지대 경제학부 교수를 일약 스타 경제학자로 만든 것은 그의 2002년 저서 ‘사다리 걷어차기’였다. 장 교수는 저서에서 선진국들이 ‘보호무역’의 사다리를 타고 선진국 지위를 획득했으면서 다른 개발도상국들이 따라오지 못하게 ‘자유무역’이란 미명하에 그 사다리를 걷어차고 있다고 주장한다. 한국형전투기(KFX) 사업을 추락 위기로 빠뜨리고 있는 미국의 기술 이전 불허에도 마찬가지 설명이 가능하다. 일각에서는 이슬람 국가인 인도네시아와 KFX 사업 협력을 하고 있어 미국이 안보적 차원에서 기술 유출을 우려하는 것이라고 해석하고 있으나, 그보다는 전투기 산업 강국의 카르텔에서 후발주자인 우리나라를 배제하려는 시도로 보는 것이 적합하다.
미국이 기술 이전을 불허하는 핵심 기술 중에서도 관건은 AESA(능동형위상배열) 레이더의 ‘체계통합(SI)’ 기술이다. 이 기술은 AESA 레이더를 기체에 장착해 온전하게 그 기능을 다할 수 있도록 하는 시험비행 소프트웨어의 개발과 수정(디버깅) 등의 과정 및 노하우 일체를 말한다. 아직까지도 일부 언론이 AESA 레이더 자체의 개발 기술이 문제가 되고 있는 것으로 보도하지만 레이더 자체는 처음부터 국내 자체 개발로 계획돼 있었다.
AESA 레이더 개발은 가능…문제는 체계통합
KFX 사업 난항과 관련해 인구에 가장 많이 회자된 것이 AESA 레이더다. 언론보도와 관련 부처의 대응 또한 모두 AESA 레이더에 집중돼 한동안 이게 한국형전투기 사업인지 한국형레이더 사업인지 헛갈릴 지경이었다. 도대체 AESA 레이더가 뭐기에 KFX 사업의 관건이 되고 있는 것일까. 이를 파악하기 위해서는 레이더의 기본 원리부터 이해해야 한다.
AESA 레이더는 레이더 경보 수신기를 무력화하기 위한 최신의 시도다. 방사하는 전파의 주파수와 주기 등을 무작위로 설정한다. 이렇게 되면 해당 레이더의 전파 방사 특성을 온전하게 파악하고 있지 않은 이상 잡음으로 판단하기 십상이다. 이 때문에 AESA 레이더는 최신 5세대 전투기의 주요 특성 가운데 하나로 거론된다. 현재까지 미국, 일본, 유럽(영국-이탈리아, 스웨덴), 중국 정도가 비행기에 탑재 가능한 AESA 레이더를 개발한 것으로 알려졌다.
KFX 사업에서는 LIG넥스원이 AESA 레이더를 자체 개발할 계획이다. LIG넥스원이 2013년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안테나, 송수신장치, 신호처리장치 같은 하드웨어는 95% 정도 기술을 확보하고 있어 독자 개발이 가능하며 소프트웨어와 체계통합 부문에서 해외협력을 받아 개발할 수 있다고 한다. LIG넥스원은 이미 중거리 지대공유도무기(KM-SAM) 천궁(철매2)을 개발하면서 지상장비용 AESA 레이더 개발을 완료한 바 있다. 일각에서는 LIG넥스원의 개발기술력을 의심한다. 그러나 김민석 한국국방안보포럼 연구위원은 “LIG넥스원은 KFX 탐색개발사업의 일환으로 2010년부터 2013년까지 전투기용 AESA 레이더를 개발하고 이미 테스트를 완료해 하드웨어 개발기술력은 충분하다고 본다”고 말한다.
하드웨어 개발기술이 충분하다면 왜 이를 장착하고 소프트웨어를 맞추는 기술은 부족한가라는 지적이 나올 법하다. 체계통합 부문을 경시하는 우리나라의 정서상 더욱 그렇다. 그러나 실전 상황에서 레이더가 어떤 목표물에 우선순위를 두고 운용돼야 하는가의 개념적 측면에서부터 기체에 장착했을 때 발생할 수 있는 사소한 문제점들에 대한 해결 방안까지, 체계통합 문제는 노하우 축적의 문제에 가깝다. 단순히 물량을 많이 투입하는 것으로는 결코 해결할 수 없다는 뜻이다. 경험 많은 선배의 조언이면 하루면 끝날 일이 혼자 시행착오를 거칠 때면 수십 일이 걸릴 수 있다.
차기 전투기(FX) 사업의 기종 선정이 스텔스 기능을 이유로 F-35로 뒤집히면서 KFX 사업도 흔들리기 시작했다. 사진은 이번 서울에어쇼 개막식을 위해 시험비행 중인 대표적인 스텔스전투기 F-22 랩터.
일본은 되고 한국은 안 되는 이유
AESA 레이더에 대한 미국의 기술 통제가 우리나라의 전투기 사업에 좌절을 안긴 사례는 과거에도 있었다. 우리나라가 초음속 경공격기 FA-50을 개발할 때 일이다. FA-50의 성능과 수출 가능성을 염두에 둔 우리 측은 고성능의 유럽제 AESA 레이더를 장착하려 했으나 미국 측의 완강한 반대로 좌절됐고, 결국 이스라엘제 기계식 레이더를 장착해야 했다. 2008년 9월 8일 한나라당 김성회 의원은 방위사업청의 국회 국방위원회 업무보고 자리에서 “미국이 반대하는 이유는 전투기 개발에 다른 나라의 레이더를 사용할 경우 관련 기술이 타국으로 넘어가는 것을 우려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이러한 기술 통제는 ‘안보’ 문제라기보다 자국 산업 보호에 더 가깝다. 미국은 2008년 노르웨이에 F-35 전투기를 팔기 위해 AESA 레이더 수출을 고의로 지연시키기도 했다. 당시 노르웨이 전투기 사업에는 미국 F-35와 스웨덴 사브(SAAB)의 그리펜(Gripen) 전투기가 경쟁하고 있었다. AESA 레이더를 자랑하는 F-35와 경쟁하려면 그리펜에도 AESA 레이더가 필수였다. 에드워드 스노든이 2013년 영국 ‘가디언’지를 통해 폭로한 미국 외교전문에 따르면 노르웨이 주재 미국대사관은 노르웨이의 전투기 기종이 결정될 때까지 AESA 레이더의 스웨덴 수출을 연기할 것을 제안했다. 결국 노르웨이는 F-35을 선택했다.
한국에서 절차에 따라 차기전투기(FX) 사업 기종의 최종 후보로 올랐던 보잉사의 F-15SE를 떨어뜨리고 수의계약으로 록히드마틴의 F-35A를 선정한 정부의 결정에는 한미동맹에 대한 ‘정무적’ 판단이 작용했을 공산이 크다. 그러나 미국은 자국 기술 보호를 이유로 한국 국방부 장관이 이례적으로 대통령을 따라 방문했음에도 차갑게 기술 이전을 거부했다.
한미동맹을 바라보는 한국의 시각과 미국의 시각에는 분명한 온도차가 존재한다. 최종건 교수는 “이번 기회로 동맹의 비용, 제도화, 그리고 본질에 대해 생각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동맹 또한 전세계약 같은 ‘계약’이다. 우리는 화려한 미사여구 속에서 동맹에 많은 비용을 지불하고 있으면서도 그걸 모른다.”
김수빈 객원기자 subinkim@donga.com
<이 기사는 주간동아 2015.10.28.~11.03|1010호 에 실린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