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이로를 거쳐야만 어디든 갈 수 있어 … 바흐리야 오프로드에 환호성
찬란한 과거 유산의 흔적에도 불구하고 최근 수년간 이어진 유혈사태와 국경지대 내전으로 이집트를 방문하는 여행객이 매년 크게 감소하고 있다. 하지만 이집트는 세계 4대 문명 발상지에 대한 관심, 서부 사하라 사막 체험(바흐리야 오프로드), 여행자의 무덤으로 불리는 세계 3대 블루홀 포인트 ‘다합’ 탐사 등으로 관광객을 끈다. 낙후된 시설과 칙칙한 사막 모래가 전부가 아니라 오색빛깔을 다양한 모습을 띤다.
외국인 여행자라고는 찾아볼 수 없는 시내의 모습에 과연 관광지가 맞나 싶을 정도다. 낯선 아랍어가 눈앞에 즐비할 뿐, 영어 간판은 전혀 찾아볼 수 없다. 배낭 여행자를 위한 인프라는 최악이다. 최소한 유명한 관광지 안내 표지는 있어야 하지 않을까? 그렇다고 길거리 현지인의 사정이 좋은 편도 아니다. 기대 이하의 낮은 문화 수준으로, 영어를 구사하는 현지인들은 거의 없다. 처음 몇 번은 버스를 타기 위해 그들에게 물어봤지만, 이내 실망하고 지도를 이용하기로 했다. 심지어 게으르기까지하다. 이른 아침부터 길거리에 자리잡고 앉아 차를 마시며 지나가는 사람을 구경한다.
이집트는 건조함에 손발이 트고, 매연과 소음으로 스트레스를 받기 십상이다. 카이로는 마치 빠지면 헤어나올 수 없는 블랙홀 같은 도시다. 여행하기 힘든 혼돈의 도시에서 발견한 묘한 매력이 대체 뭘까. 아마도 도시 곳곳에 숨겨져 있는 보물들을 찾아가는 맛이 아닐까 싶다.
◆고고학박물관
고대 이집트의 유물이 잔뜩 전시된 곳으로 세계 최대 규모를 자랑한다. 투탕카멘의 황금 마스크, 람세스 2세 동상, 파라오 미라 등 25만점이 넘는 유물과 보물이 100개가 넘는 홀에 보관돼 있다. 위치는 타흐릴광장(Tahrir square) 바로 옆에 자리 잡고 있어 찾기 쉽다.
지하철 1호선과 2호선의 교차점인 사다트(Sadat)역에서 내려 고고학박물관 표시를 보면 쉽게 찾아갈 수 있다. 입장을 하면 ‘고대 유물이 이렇게 흔할 수 있을까?’하는 생각마저 든다. 박물관 바닥에 내 팽겨져있다는 말이 더 어울릴 정도다. 큰 홀을 거닐면서 천천히 고대 이집트의 유물과, 벽화, 조각상들을 바라본다.
박물관 2층 양쪽엔 ‘로얄 멈’(Royal Mum)이라 불리는 곳이 있다. 입장료를 조금 지불하면 고대 이집트 왕들의 미라를 볼 수 있다. 람세스 3세, 6세, 7세 등 역사책에서나 들어봤을 왕과 왕비들의 미라가 유리관 안에 죽 전시돼 있다. 아주 가까이에서 상세히 볼 수 있다. 머리카락이 남아있는 모습, 돌로 만들어져 있는 인공눈, 공손히 양손을 가슴에 올려놓은 모습 등을 관찰한다. 입장료 60파운드(한화 1만2000원)를 아끼기 위해 입장하지 않았다면 분명 후회했을 것이다.
카이로 기자 지역에 있는 ‘대 피라미드’는 유일하게 현존하는 고대 세계 7대 불가사의 중 하나로 이집트의 가장 유명한 상징이다. 영화 ‘버킷리스트’의 장면 중 주인공들이 피라미드 꼭대기에 앉아 해가 지는 모습을 보는 장면은 아주 인상 깊었다. 결국 꼭 방문해야 하는 내 인생여행의 버킷리스트 중 하나가 됐다. 하지만 최근 몇 년 전부터 이집트 경기가 어려워지면서 관광업에 종사하는 이들의 사정이 좋지 않다.
쿠푸왕의 대 피라미드 옆을 거닐다 보니 나의 존재가 새삼 초라하다. 피라미드를 완공시키는데 사용된 230만개의 돌 중 하나의 크기가 압도할 만큼 크다. 쿠푸왕의 피라미드의 바로 옆에는 그의 아들과 손자 파라오의 피라미드가 있다. 차를 타고 조금 이동해 파노라마 포인트에 도착한다. 그곳에서는 이 3개의 거대한 피라미드를 모두 한눈에 담을 수 있다.
조금 더 이동하니 스핑크스가 보인다. 사자의 몸과 왕의 얼굴을 하고 있는 스핑크스가 피라미드를 어엿하게 지키고 있다. 하지만 오랜 세월의 흔적으로 온전하지 못한 모습이다. 투어는 이집트 최초 계단식 피라미드를 지나, 굴절 피라미드 ‘다슈르’로 향한다. 피라미드 안으로 들어가보니 찐한 암모니아 냄새가 코를 자극 할 뿐이다.
빡빡한 투어의 마지막 일정으로 카이로 남부의 ‘멤피스’로 향한다. 이곳은 인류 역사 상 최초의 제국도시로 이집트 왕국의 최초 수도다. 이집트 전성기 시절의 람세스 2세도 이곳을 수도로 삼아 부흥시켰다고 하나, 현재는 초라한 신전만이 있다. 거대한 홍수로 도시가 사라지고, 후손들이 주거지 건축을 위해 석재 자료로 사용하면서 농촌으로 퇴화했다. 하지만 여전히 람세스 2세의 거상을 보기 위해 많은 관광객들이 이곳을 찾는다.
◆바흐리야 사막지대
바흐리야(bahreya)는 카이로에서 남서쪽으로 350㎞ 정도 떨어져 있다. 약 5시간 이상 소요된다. 버스는 고속도로라고 부르기 부끄러울 정도의 차선조차 없는 사막도로를 질주한다. 쾨쾨하고 더러운 이집트 버스는 새삼 한국이 좋다는 것을 깨닫게 해준다. 사막 중간에 덩그러니 있는 낡은 휴게소에 잠시 멈추더니 이내 다시 출발한다.
한참을 황토색 모래 지형을 달리던 차량의 창문 밖으로 사막의 석양이 비춰진다. 힘든 여정에 대한 보상의 선물을 주는 것 같다. 혹시 이곳을 가는 여행자라면 오른쪽 좌석에 앉기를 추천한다. 그 모습만 보더라도 충분히 이곳에 오길 잘했다는 생각이 들 정도다.
사파리를 원하는 다른 일행이 있다면 비용을 절감할 수 있다. 차량 비용을 N분의 1로 나눌 수 있어서다. 지프 한 대당 보통 800파운드(한화 12만원)로 계산하면 된다. 아프리카를 종단하고 이곳에 막 도착한 베트남 친구가 나의 유일한 사파리 파트너다. 이전 경험을 바탕으로 옷을 최대한 편하게 입고 필요 물품만 챙긴다.
이곳은 백사막과 흑사막, 크리스탈사막 등이 유명하다. 바흐리야사막 사파리는 다른 곳과는 조금 다르다. 황금 빛깔의 모래가 펼쳐져 있는 사막이 아니기 때문에 낙타를 타지 않는다.
지프가 힘차게 달린다. 한참을 달리던 지프는 검은색의 돌로 덮여 있는 흑사막을 오른다. 오프로드(Off-Road)! 이것은 사막 사파리 최대 장점이다. 너무 신나서 환호성이 절로 난다. 그렇게 지프는 한참을 멋진 곳을 가로 지르며 달려 이번에는 백사막 지역에 도착한다. 신기한 모양의 백색 돌로 구성되어 있는 일대를 신나게 달린다. 처음 보는 풍경들에 감탄사만 나온다. 어느덧 해가 지고, 백사막의 어느 지점에 지프가 멈춘다. 캠핑 준비를 한다.
적막하지만 외롭지 않은 그곳에서 사막여우와 함께 먹는 바비큐의 맛은 말로는 형용할 수가 없다. 눈앞에 가득 채워져 있는 무수한 별들은 나를 황홀하게 만든다. 사막 사파리는 다음날 샌드보딩을 끝으로 마무리된다. 숙소로 다시 돌아온 이후 마을 근방에 있는 유황온천에 가서 몸을 담그면서 피로를 푼다.
사막지역이라 물이 부족하다보니 자연온천에서 목욕하는 현지인이 쉽게 눈에 띈다. 사막 사파리는 보통 1박2일 일정이다, 길게는 14박15일 이상의 일정도 있다. 만약 다음에 다시 가게 된다면 시간적 여유를 충분히 가지고 긴 일정으로 도전해 보고 싶다. 또는 지프를 직접 빌려 사막 이곳저곳을 누벼보는 꿈을 가져본다.
장기백 여행칼럼니스트 eyebuson@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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