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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자연생태 골프장으로 변신하는 국내 첫 ‘무농약 골프장’

입력 | 2015-10-28 03:00:00

제주 에코랜드골프장 6년간 실험, 제초제 대신 인부들이 잡초 제거
미꾸라지-달팽이 보금자리로 변신




국내에서 처음으로 농약을 사용하지 않고 잔디를 관리하고 있는 에코랜드골프장에서 인부들이 잡초를 하나하나 뽑고 있다. 임재영 기자 jy788@donga.com

25일 제주 제주시 조천읍 에코랜드골프장. 27홀 가운데 9홀을 통째로 폐쇄하고 잔디에 모래를 새로 까는 토양갱신이 한창이다. 그린에서는 잔디에 신선한 공기를 넣어주기 위해 땅에 구멍을 내는 에어레이션(Aeration·통풍) 작업이 이뤄졌다. 이 골프장에서는 다른 골프장에 비해 2배가량인 연중 10∼13회에 걸쳐 에어레이션 작업을 한다. 다른 홀에서는 작업인부들이 페어웨이에 침범한 잡초를 하나씩 제거하느라 여념이 없었다. 제초제를 쓰면 쉽게 잡초를 없앨 수 있지만 이 골프장은 농약을 쓸 수 없기에 인력에 의존하고 있는 것이다.

○무농약 골프장 도전

이 골프장은 2009년 10월 개장하면서 농약을 쓰지 않는 친환경 잔디 관리를 선언했다. 개장 6년 만에 국내 유일의 ‘무(無)농약 골프장’이라는 입지를 굳혀가면서 제주형 친환경 골프장 관리 모델의 기초를 마련했다. 전남지역의 한 골프장에서 친환경 골프장 관리를 배우기 위해 현장을 찾는 등 벤치마킹 장소로 떠오르고 있다. 이 골프장 문성희 코스관리팀장은 “잔디를 제대로 관리하는 데 기후가 미치는 영향이 상당하지만 노하우가 쌓이면서 어느 정도 대비가 가능하다”며 “잔디에 미생물을 투입해 면역력을 키워준 결과 요즘은 저절로 질병을 견뎌내고 있다”고 말했다.

개장 초기에는 우왕좌왕했다. 한바탕 장마가 지나간 후에는 잔디가 시름시름 앓다가 죽어나갔다. 갈색잎마름병, 탄저병 등이 생겨 잔디가 누렇게 말랐다. 농약을 사용할 수 없기에 잔디가 죽어나간 자리는 모래와 맨땅이었다. 골퍼들의 불만이 대단했다. 잔디 자리에 잡초가 야금야금 점령하면서 골프장 페어웨이로 불리기에 민망할 정도였다. 골프장 측이 병충해가 발생했을 때만이라도 농약을 쓸 수 있도록 하는 환경영향평가 변경을 요청할 정도였다.

○ 자연생태 골프장으로 변신

제주도 등의 ‘무농약 고수’ 권고를 받아들인 골프장 측은 초심으로 돌아갔다. 식물 등에서 추출한 미생물 제제를 대량으로 살포했다. 그린 잔디를 살리는 데 일반 골프장에 비해 2∼3배 비용이 들어갔다. 제초제 대신에 천일염을 희석한 짠물을 살포하는 기법을 도입했다. 짠물은 광합성을 막아 선택적으로 잡초를 없애 나갔다. 3, 4년이 지나면서 잔디에 생기가 돌았고 면역력도 강해졌다. 농약을 사용한 골프장 못지않은 파란 잔디가 눈을 시원하게 만들었다.

골프장 동식물 생태계에도 변화가 나타났다. 연못에 미꾸라지가 보금자리를 만든 뒤 개체 수가 급속히 늘었고 습한 날에는 달팽이가 바글바글 나왔다. 빨간 고추잠자리가 날아다니고 저녁에는 반딧불이가 불을 반짝거리는 환상적인 풍경을 보였다. 이 골프장 김희철 지배인은 “인공시설인 골프장이 자연생태계의 보물인 ‘곶자왈’(용암 암괴에 형성된 자연림)에 녹아들었다고 할 정도로 자연스러운 모습을 갖췄다”며 “2인플레이, 경기보조원(캐디) 선택제 등 다양한 상품으로 친환경 골프장을 즐길 수 있도록 하겠다”고 말했다.

이 골프장을 제외한 제주지역 골프장은 지난해 농약 등 약품 1256kg을 썼다. 농약잔류검사에서는 해마다 농약 6∼9종이 검출되고 있다. 제주도 관계자는 “환경, 잔디 전문가를 비롯해 행정공무원, 전문연구기관 관계자로 구성된 ‘친환경 잔디관리협의체’를 운영하고 있다”며 “에코랜드골프장을 모델로 삼아 내년에 다른 골프장을 무농약 골프장으로 추진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임재영 기자 jy788@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