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모레퍼시픽 창업자 서성환 평전/ 나는 다시 태어나도 화장품이다] <2>조선의 청년, 해방둥이 기업
서성환 아모레퍼시픽 창업자는 개성 최초의 현대식 백화점 ‘김재현 백화점’ 한쪽에서 어머니와 만든 머릿기름 ‘창성당 제품’을 판매하는 데 성공한다. 품질만으로도 승산이 있다는 자신감을 얻는 계기가 됐다. 아모레퍼시픽 제공
납품만 하지 말고 직접 백화점 판매를 해보는 게 어떻겠느냐는 어머니의 권유에 동분서주하던 청년 서성환은 마침내 김재현 백화점 화장품부에 매장을 개설하게 된다. 어머니께서 늘 강조하시던 품질의 승리를 확인한 최초의 성과였다. 새로운 일에 대한 보람은 말할 수 없는 행복과 기쁨을 줬다.
하지만 날벼락 같은 일이 생겼다. ‘아카가미(赤紙)’. 1944년부터 광복 전까지 붉은색 종이에 적힌 징병 통지서를 사람들은 그렇게 불렀다. 식민지 백성의 생활이 피폐해지고 병력 수급을 감당하지 못하게 되자 일제의 지원병제가 징병제로 바뀐 것이다. 날벼락 같은 징병통지서를 들고 떠나는 청년들의 행렬에서 그도 예외는 아니었다.
1945년 9월 5일 베이징에서 현지 제대를 한다. 이 날짜는 훗날 아모레퍼시픽의 창립 기념일이 된다. 청년 시절의 그가 귀향과 자유를 얼마나 애타게 고대해 왔는지를 단적으로 보여주는 일화다. 그는 동료들과 함께 고향으로 갈 형편이 될 때까지 베이징에서 임시로 지낸다. 그동안 ‘장사를 해볼까’ 하는 생각을 하게 된다. 고향으로 갈 때까지 시간과 비용을 만들어 버텨 보자는 마음에서였다.
제대할 때 받은 쌀로 마련한 염색약으로 군복을 염색했고 이를 비싼 값에 팔아 장사 밑천을 마련했다. 장사를 시작하며 쯔진청(紫禁城) 남쪽에 있는 ‘다자란’이란 큰 시장을 알게 된다. 각양각색의 진귀한 물건들과 중국인들의 극성스러운 상혼에 그는 정신을 빼앗긴다. 궁핍한 삶 가운데 만난 새 세상은 훗날 시장을 창조하는 기업가로서의 그에게 영감의 밑천이 된다.
1946년 2월 21일. 암흑의 밤바다를 헤치며 흔들리는 수송선의 온갖 역겨운 냄새와 고통의 신음소리를 견디며 한시라도 빨리 고향에 가고 싶어 밤을 지새운 끝에 청년 서성환은 마침내 인천항에 도착한다. 정초 매서운 날씨에 고드름이 처마 밑에서 툭 떨어진다. 그 소리에 고개를 돌려 문 쪽을 보던 어머니가 놀란다. “살아 돌아왔구나. 돌아왔어!” 거북 등딱지처럼 튼 살이 만져지기는 하지만 분명 살아 돌아온, 그립던 자식의 손이었다.
정리=박선희 기자 teller@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