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러스트레이션 김수진 기자 soojin@donga.com
그러니까 바로 오늘은 그가 주경 씨와 만난 이후 세 번째로 맞이하는 데이트였다. 월요일이었고, 둘 다 휴무였고, 그래서 그들은 살고 있는 강원도의 중소도시 외곽에 있는 동물원에 함께 가기로 약속했다. 으응, 그 동물원? 거길 가려고? 어젯밤 도시락으로 쓸 김밥 재료를 손질하고 있던 그를 보면서 룸메이트가 뜨악한 표정으로 물었다. 응. 난 여자 친구 생기면 꼭 동물원에 함께 가고 싶었거든. 그는 우엉을 얇게 썰면서 말했다. 그래도, 거긴 좀 그런데… 부도 직전이라는 말도 있고… 사람들도 거기 잘 안 가잖아? 그가 주경 씨와 함께 가기로 한 동물원은 지은 지 이십 년도 더 된 곳이었다. 한때는 놀이동산도 같이 운영하고 있었지만, 시설 투자가 제때 이루어지지 않고 그래서 사람들의 발길도 끊기고, 그런 악순환이 계속되다가, 지금은 동물원만 겨우 운영되고 있는 상황이었다. 사람도 없고 한적하고 좋지 뭐. 그는 룸메이트 말에 아랑곳하지 않고 게맛살을 잘게 찢었다. 실제로 그는 그것을 바라기도 했다. 사람도 없고, 한적한 그곳을….
표를 끊고 동물원 입구에 들어섰을 때부터 무언가 좀 이상한 기분이 들기는 했다. 동물원 축사로 이어지는 보도블록에 풀이 아무렇게나, 무릎 높이까지 자라 있는 것도 그랬지만, 토끼와 닭들이, 심지어는 오골계까지, 우리 밖으로 나와 그것들을 뜯어먹고 있다는 게…. 그가 예상한 풍경과는 많이 달랐기 때문이었다. 주경 씨는 토끼 앞에 주저앉아 오랫동안 풀을 뜯어 주었다. 토끼들은… 죄다 무슨 요크셔테리어로 빙의한 듯, 지나치게 먹성이 좋았다.
압권은 반달가슴곰 축사에서였다. 그러니까 그는 태어나서 처음으로… 반달가슴곰이 우는 소리를 들었는데, 그것도 한 마리가 아닌, 세 마리가 울부짖는 소리를 듣게 되었는데…. 그것이 그냥 무심히 지나칠 만한 소리는 아니었다. 반달가슴곰들은 두 발로 선 채, 마치 구걸을 하는 사람처럼 한 손을 우리 밖으로 내밀며 울부짖었다. 반달가슴곰들의 키는 세 마리 다 그의 어깨 높이 정도였고, 그래서 모두 다 중학생들처럼 보였다. 중학생들이 구걸을 하는 것처럼 보였다. 주경 씨는 그 모습을 보고 기어이 울음을 터뜨렸는데… 그러면서도 그 앞을 떠나지 않았다. 어떻게 좀 해 봐요. 그녀는 울먹거리는 목소리로 그렇게 말하기도 했다. 그러니, 어쩌랴. 그는 메고 있던 배낭에서 주섬주섬 김밥 도시락을 꺼내 그것들을 하나하나 중학생 곰들에게 던져주기 시작했다. 이걸 줘도 되나? 하는 의구심도 들었지만, 그런 걱정은 하지 말라는 듯, 반달가슴곰들은 김밥을 잘도 받아먹었다. 그는 자신이 정성껏 싼 김밥을 받아먹는 반달가슴곰들을 바라보면서, 어쩐지 이것이 이 동물원의 운영방침은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그러면서 또 한편, 동물원이 한적해지면, 제일 먼저 위험해지는 것은 바로 동물들이라는 것을, 그것이 동물원의 숙명이라는 것을 비로소 깨닫게 되었다. 주경 씨의 눈물은 쉬이 그치지 않았다.
이기호 소설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