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성열 정책사회부 기자
최근 파견직으로 일하고 있다는 한 50대 노동자로부터 e메일 한 통을 받았다. 그는 “비정규직 고용기간을 4년으로 연장하자는 정부안을 보고 안도했지만 정부와 노동계의 양보 없는 줄다리기 탓에 목말라 죽을 지경”이라며 이렇게 적었다.
정부는 현행 2년인 비정규직 고용기간을 4년으로 늘리는 안을 지난해 12월 경제사회발전노사정위원회에 제출했다. 노사정(勞使政) 합의로 비정규직법을 개정한다는 계획이었지만 지난달 15일 대타협에서는 노사정이 공동으로 실태조사를 한 뒤 대안을 내기로 했다. 그러나 노동계와 야당이 기간 연장 자체를 반대하고 있어 개정 여부는 불투명한 상황이다.
정부는 당사자들의 이 같은 요구를 비정규직 대책에 반영한 것이라고 주장한다. 비정규직 1186명을 조사해보니 82.3%가 기간 연장에 찬성했다는 결과도 내놨다. 청년층의 피해와 악용을 막기 위해 기간 연장 대상을 35세 이상으로 한정하고, 당사자 동의를 거치는 등 안전망도 마련했다는 입장이다. 고용노동부 관계자는 “비정규직 대책은 이념으로 접근해서는 안 된다”며 “당사자인 비정규직이 진짜로 원하는 것을 가장 크게 고려했다”고 말했다.
하지만 노동계는 정부 조사가 신뢰성이 떨어지고, 비정규직의 뜻이 왜곡됐다고 주장한다. 한국노동조합총연맹은 비정규직 426명에게 물어본 결과 69.2%가 기간 연장에 반대했다는 자료도 발표했다. 한국노총 관계자는 “정부는 ‘기간 제한 필요 없음’(53%)도 기간 연장을 찬성하는 쪽에 포함시켰다”며 “고용불안이 심한 상황이어서 계속 일하고 싶다는 의지를 밝힌 것이지 기간 연장을 무작정 찬성하는 것은 아니다”라고 지적했다. 비정규직이 진짜로 원하는 게 뭔지를 두고서도 정부와 노동계의 해석이 첨예하게 엇갈리고 있는 것이다.
물론 메일을 보낸 파견노동자의 주장이 비정규직 다수의 뜻이 아닐 수도 있다. 하지만 “당사자가 원하는 정책을 만들어 달라”는 요구는 노사정 모두가 경청할 필요가 있다. 그는 “옛 말씀에 동냥은 못줄지언정 쪽박은 깨지 말라고 했다”며 “어떤 식으로든 비정규직의 현안을 풀어 주길 바란다”고 호소했다. 노사정위는 현재 진행 중인 실태조사를 다음 달 중순까지 끝내고 대안을 제시할 계획이다. 비정규직이 진짜로 원하는 게 뭔지, 노사정위가 주도하는 이번 조사에서만큼은 객관적으로 밝혀져야 하지 않을까. 언제까지고 실태조사만 하기에는 600만 비정규직이 감내해야 할 고통이 너무 커졌고, 또 이미 너무 늦었기 때문이다.
유성열 정책사회부 기자 ryu@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