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1010호/인터뷰 | 마지막 국감 마친 ‘쓴소리맨’ 새누리당 이한구 의원] 다른 나라 잔칫상에 안 오르려면 어떤 상황도 이겨낼 체력 갖춰야
국회의원들의 의정활동을 모니터링하는 ‘국정감사 NGO(비정부기구) 모니터단’이 해마다 ‘우수 의원’으로 꼽아온 새누리당 이한구 의원(대구 수성갑·사진). 그가 19대 국회를 끝으로 내년 5월이면 국회를 떠난다. 이 의원은 “지역구 관리에 매달릴 시간을 아껴 한국 경제의 나아갈 바를 위해 연구하겠다”며 올해 2월 20대 총선 불출마를 선언했다.
행정고등고시 출신으로 대우경제연구소장으로도 재직했던 그는 민관(民官)에서 두루 실물 경험을 쌓은 대표적 경제전문가다. 그의 식견은 의정활동 과정에서 빛을 발했다. 사실상 마지막 국회 국정감사(국감)였던 올해에도 그는 많게는 80쪽이 넘는 방대한 양의 국감자료를 발표하며 정부 경제정책의 잘잘못을 지적했다. 국세청에 대한 국감에서는 “비현실적인 통상 증가분 반영으로 지하경제 양성화 실적을 부풀린 것 아니냐”고 따졌고, 기획재정부에 대해서는 “정상 추진 중이라는 경제혁신 3개년 계획이 국민이 체감하는 실적과 너무 큰 괴리가 있다”며 “실적을 투명하게 공개하고 허심탄회하게 반성한 후 제대로 추진하라”고 질타했다. 10월 19일 국회의원으로서 사실상 마지막 국감을 마친 이한구 의원을 서울 여의도 국회 의원회관에서 만났다.
“창조경제는 혁신 작업”
▼ 가계, 기업, 정부 등 우리 경제의 세 주체가 모두 빚더미에 올라 한국 경제에 암운이 드리워져 있다는 지적이 많다.
▼ 어떤 점에서 우리 경제가 위험하다는 건가.
“세계 경제는 한동안 더 침체될 공산이 크다. 세계 경제에 대한 의존도가 높은 우리로서는 그만큼 소득을 만들어낼 기회가 줄어들 수밖에 없다. 그리고 국제경쟁력이 나빠지고, 성장잠재력이 떨어지는 등 우리 내부구조도 자꾸 나빠지고 있다. 소득창출능력은 갈수록 떨어지는데, 부채가 빠른 속도로 늘어난다는 것은 미래세대에게 돈벌이 기회는 안 주고 빚만 자꾸 넘겨주는 것과 같다. 미래세대가 어려워지면 결국 우리 세대도 함께 힘들어진다. 미래세대가 잘 벌어야 우리가 노후에 연금을 받든지 할 것 아닌가.”
▼ 대책이 아예 없는 것인가, 있어도 제대로 실행을 못하고 있는 것인가.
“잠재성장률이 떨어지는 것을 보충하고, 미래에 소득을 창출할 수 있는 자산을 만들어내야 한다. 결국은 창조경제를 제대로 해 새로운 분야에서 소득을 창출할 수 있는 능력을 키우고, 생산요소시장의 구조를 개혁해 생산과 거래 비용을 낮출 틀을 만들어야 한다. 그런데 창조경제가 지지부진하고, 4대 부문 구조개혁도 안 되고 있다. (경제가) 조금 어려워지면 빚을 내서 재정지출을 늘리거나, 가계빚을 늘려 소비하라고 장려하고 있다. 기업에게 빚내서 사람을 더 쓰라고 하는 것도 해결책이 될 수 없다.”
▼ 우리 경제의 잠재성장률을 끌어 올리려면 어떤 정책이 필요할까.
“정부가 창조경제를 한다고 한 지가 1년 반이 넘었다. 4대 부문 개혁은 (박근혜 대통령) 공약에서 제일 중요한 것 가운데 하나다. 경제혁신 3개년 계획도 이미 다 나와 있다. (정부가 하겠다고 한) 그것들부터 열심히 하면 된다. 그런데 진도가 잘 안 나가고 있다. 성과가 있다고 (정부가) 발표하지만 지금 수준으로는 어림없다. 또 진도가 나간다고 한 것 중에도 사실이 아닌 것이 있더라. 내가 국감에서 주문한 것이 그런 내용들이다.”
▼ 창조경제를 이해하지 못하겠다는 국민이 여전히 많다.
“창조경제로 가는 길은 멀고도 급한데, 창조경제는 무엇이고 왜 해야 하는지, 언제까지 무슨 일을 하려면 각자가 지금 무슨 일을 해야 하는지 등 여전히 개념이 덜 잡혀 있는 것은 큰 문제가 아닐 수 없다. 국민과 이해관계자들이 (창조경제의) 비전을 공유하지 못하는 것은 정책 홍보가 제 기능을 다하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 지난해 ‘창조경제 시범사업 규제개혁 특별법안’을 대표 발의했는데.
“창조경제는 황무지를 개척하는 혁신 작업과도 같다. 정부한테 ‘알아서 잘해보라’고 해서 될 일이 아니다. 무인자동차와 무인항공기, 원격의료 등 미래지향적인 신기술이나 신제품, 신사업은 지금 같은 일률적 규제 속에서는 빛을 보기 어렵다. 특히 신기술을 개발해도 현재의 규제 속에서는 시험조차 해볼 수 없다.”
▼ 특별법안은 국회 논의를 거쳐 통과됐나.
“국회에 법안을 제출한 지 10개월이 지났지만 심의는커녕 논의조차 되지 않고 있다. 야당은 ‘창조경제’란 말만 들어가면 무조건 반대하고, 여당도 별 관심을 두지 않고 있다. 심지어 정부조차 법안 통과를 위해 열심히 노력하지 않는다. 황무지 같은 창조경제를 개척하는 것이 우리의 생존 문제인데도 손 놓고 있다. 우리가 주춤하는 사이 선진국은 더 빨리 무인자동차, 무인항공기 등 창조경제로 달려가고 있다.”
“롯데, 가족끼리 주도권 싸움 할 때인가”
창조경제 활성화를 강조하던 그는 지방정부에게로 화살을 돌렸다.
“지방정부들이 걸핏 하면 중앙정부에 재정 지출을 늘리라며 예산 타령을 하는데, 정작 정부 예산을 받아서는 생산적인 곳에 쓰지 않고 일회성 축제나 하고 건물이나 짓고…. 어떤 면에서는 수도권보다 지방이 더 먹고살기 쉬울지도 모른다. 지방정부가 규제를 더 과감하게 풀면 기업이 많이 내려가지 않겠나. 자신들은 규제를 잔뜩 틀어쥐고 ‘지방에서는 취업이 안 된다’ ‘기업이 안 온다’며 정부 예산만 나눠 먹자고 하니 답답한 일이다.”
이 의원의 ‘쓴소리’는 대기업이라고 예외가 아니었다. 그는 신동주-동빈 두 형제가 경영권 다툼을 벌이고 있는 롯데그룹을 겨냥해 “세계 경제의 구조가 확확 변하고 있어 몇 년 후 회사에 무슨 일이 닥칠지 모르는 판인데, 가족 간 주도권 싸움이나 할 때인가”라며 “앞으로 닥칠 위험에서 살아날 궁리를 하려면 최소한 창조경영이라도 해야 한다”고 말했다.
▼ 재정확대에 대해서는 어떤 생각을 갖고 있나.
“필요하면 할 수 있다. 그런데 몇 가지 조건이 충족돼야 한다. 첫째, 재정확대로 미래세대에게 부담이 전가돼서는 안 된다. 재정확대가 소득 창출에 기여할 수 있어야 세수 증대로 연결돼 다시 중·장기적으로 재정적자를 메울 수 있다. 그러려면 재정은 생산성이 높은 곳에 투입해야 한다. 그런데 지금의 재정확대는 복지, 그것도 계층별로 다 나눠 먹자는 ‘공짜공화국’ 비슷하게 돼 있다. 돈 있는 노인과 돈 있는 집 애들 무상급식과 무상보육한다고 재정을 소진하고 있다. 생산성 있는 곳에 초점을 맞춰 재정을 쓰려는 노력을 게을리하고 있다. 또 한 가지는 재정으로 경제가 좋아지려면 재정확대에 맞춰 민간이 함께 투자를 해야 효과가 나타난다. 민간투자가 따라주지 않으면 재정을 투입할 때는 반짝 경기 상승 효과가 나타날지 몰라도 막상 빚을 갚아야 할 때 세금이 덜 걷히면 오히려 경제를 죽이는 부작용이 생길 수 있다. 그 점도 염두에 둬야 한다.”
▼ 공공, 노동, 교육, 금융 등 4대 부문 개혁 추진 속도가 더디다는 지적이 많다.
“국회에서 입법으로 뒷받침해야 할 일이 많다. 그런데 지금 국회는 창조와 개혁 두 글자가 들어가면 논의조차 제대로 이뤄지지 않는다. 창조와 개혁은 진보진영이 먼저 나서야 할 주제인데도 그렇다. (여야가) 공천 방식 갖고 저렇게들 열심히 하는데, 창조경제, 4대 부문 개혁에 대해 연구하고 토론하고 노력했으면 벌써 됐지 않았겠나.”
▼ 의원들 속성이 내년 총선 때 자신이 선거에서 떨어지면 아무 소용없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너나없이 공천에 매달리는 게 아닐까.
“정치인만 나무랄 일이 아니다. 주인이 괜찮은 머슴을 쓸 생각을 안 하고, 아부 잘하고 입에 발린 소리만 잘하는 머슴을 좋다고 자꾸 쓰면 결국 머슴에게 주인이 당하는 것 아닌가. 국민은 대한민국 주인이다. 주인이 좋은 머슴을 골라내려면 머슴이 무슨 일을 하는지, 일은 잘하는지 머슴의 능력을 평가하고 골라낼 줄 알아야 한다.”
▼ 화폐단위를 바꾸는 리디노미네이션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나.
“경제는 예측 가능성이 중요하다. 그래야 안심하고 저축도 하고 소비도 하고 경제도 돌아간다. 불가피할 때 구조개혁을 하는 것이다. 리디노미네이션은 엄청난 제도개혁이다. 결과가 반드시 좋다는 보장도 없고, 아주 험악한 상황이 됐을 때 하는 극단적 선택과도 같다. 지금은 그 얘기를 할 때가 아니다.”
박근혜 대통령(가운데)이 8월 27일 오후 대전 KAIST(한국과학기술원)에서 열린 창조경제혁신센터 페스티벌에 참석해 창조경제 성과물 전시 부스를 둘러보고 있다.
“트리플 악재? 언제나 있을 수 있는 일”
▼ 우리 경제가 미국발(發) 금리인상과 중국 경기 둔화, 원자재값 하락 등 트리플 대외 악재에 크게 흔들릴 수 있다는 지적이 많다.
“우리 경제는 무역도 그렇고, 금융 측면에서 해외의존도가 특히 높다. 그래서 세계 경제가 어떻게 변하느냐가 굉장히 중요하다. 하지만 세 가지 언급한 악재는 언제나 있을 수 있는 일들이다. 거기에다 브릭스(브라질, 러시아, 인도, 중국) 같은 신흥 중진국들이 3년 전부터 비실비실하더니 요새는 외환위기로까지 번질 조짐을 보이고 있다. 동아시아, 남미 국가 가운데 일부가 외환위기에 빠지면 우리 경제에 어떤 파장이 닥칠지 모른다. 과거 경제사를 보면 세계 경제가 장기침체를 겪거나 세계대전 같은 큰일을 겪은 뒤에는 반드시 경제 판도가 바뀌었다. 미래의 경제 상황을 모두 예측할 수는 없겠지만 예측 가능한 것들을 확인하면서 한편에서는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 그런데 더 중요한 것은 바깥에서 무슨 일이 벌어져도 우리 경제가 살아남을 만큼 체질이 강화돼 있느냐다. 눈보라가 치고 광풍이 몰아쳐도 그것을 견뎌낼 체력을 갖고 있으면 이겨낼 수 있다. 그런데 우리 경제가 시원치 못하면 작은 바람과 변화에도 다른 나라 잔치 밥상에 올라간다.”
▼ 1998년 외환위기 당시 우리가 다른 나라 밥상 위에 올라갔던 것 아닌가.
“우리가 또다시 그렇게 되지 않으려면 지금부터 대비해야 한다. 세계 경제가 장기 경기 침체 이후 어떤 질서가 만들어질 것인지, 그때를 대비해 어떤 조치가 필요한지 미리 연구해야 한다. 산업구조는 어떻게 바뀌고, 통화체계는 또 어떤 변화를 겪을지 예상해 그에 맞는 금융시스템을 갖추고 대비해야 한다. 선진국에서 제조업이 부활할 조짐을 보이고 있는데 우리 실물경제에는 어떤 영향을 미칠지, 서비스 품질이 달라질 때 우리는 어떻게 대응할지 그에 맞는 대응책도 마련해놔야 한다. 우리 사회는 인구구조 변화에 놓여 있고, 기능인력 노후화를 포함해 산업의 노후화가 심화되고 있다. 그뿐 아니라 사회체제의 비효율성과 사회 갈등구조에 휩싸여 있다. 이를 돌파하려면 창조경제를 위한 전제조건을 만들고 최소한 창조경제가 꽃필 수 있는 준비를 해야 한다. 앞으로 몇 년 뒤 노동력을 대체하는 기술혁신이 발전해 인공지능(AI), 사물인터넷(IoT), 합성생물 등의 시대가 왔을 때 우리 미래세대가 먹고살 토대를 구축해주는 것이 지금 우리가 해야 할 일 아닌가. 그것이 곧 창조경제다.”
구자홍 기자 jhkoo@donga.com
<이 기사는 주간동아 2015.10.28.~11.03|1010호 에 실린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