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술을 전공한 신현빈은 재능이 없음에 일찌감치 연기자로 진로를 바꿨다. 왕성하게 활동하진 않지만 28일 개봉한 영화 ‘어떤 살인’으로 앞으로를 더 기대하게 한다. “연기는 만족이란 게 없어 더 매력적”이라며 웃는다. 스포츠동아DB
■ 스릴러 영화 ‘어떤 살인’ 신현빈
남성들에게 짓밟힌 여성의 잔혹한 복수극
상처 가진 이들에 아픔 주지 않을까 조심
신현빈(29)은 앞으로 보여줄 게 더 많은 연기자다.
데뷔 이후 영화와 드라마를 넘나들며 왕성한 다작 활동을 벌이는 여느 연기자들과 비교하면 유난히 신중한 행보를 택하고 있기 때문이다. 2010년 데뷔작인 영화 ‘방가?방가!’에서 베트남 이주민 여주인공으로 관객에게 매력을 전했고 이후 SBS 드라마 ‘무사 백동수’ 등에도 출연했지만 공격적인 활동에는 나서지 않았다.
그런 의미에서 28일 신현빈이 내놓은 ‘어떤 살인’(감독 안용훈·제작 전망좋은영화사)은 반가운 영화다. 신현빈의 실력을 다시 확인할 기회이기 때문이다. 스릴러라는 장르나 이야기를 떠나, 한 편의 영화를 이끌어갈 만한 실력 있는 20대 여배우가 드물다는 점에서 신현빈의 활약은 더 반갑다.
하지만 영화 속 상황만 놓고 보면 그의 처지는 전혀 반길 수 없다. 남성들에 의해 처절하게 무너지는 여성의 비극을 온몸으로 그려낸 탓이다. 유망한 사격선수였지만 교통사고로 부모를 잃고 언어장애까지 얻은 뒤 직장 상사부터 공권력의 폭력에까지 시달리는 극중 모습을 무덤덤하게 바라보기란 쉽지 않다.
극적인 상황을 직접 연기하며 신현빈은 “참혹하고 처참한 순간을 지나왔다”고 했다.
“안 좋은 사건의 피해자나 그 가족까지 그리는 이야기라서 혹여 비슷한 상처를 가진 이들에게 아픔을 주지 않을까 조심스러웠다. 그저 평범한 삶을 원하는 소박한 여자였다. 그걸 허락하지 않는 가혹한 세상에서 여자가 할 수 있는 일은 거의 없었다.”
화장기 없는 얼굴로 107분 동안 이야기를 끌어가는 신현빈의 모습은 잔인한 상황과 대비되며 묘한 매력을 전한다. 평소에도 색조 같은 메이크업을 즐기지 않는 덕분에 담백하고 깨끗한 이미지를 강점으로 갖고 있기도 하다.
사실 신현빈은 뒤늦게 연기를 시작한 경우다. 한국예술종합학교에서 미술사를 전공했지만 “일찌감치 재능이 없음을 깨닫고” 원하는 연기를 시작했다. 대학 동기생이 대부분 큐레이터로 활동하고 있지만 그쪽 분야에 갖는 미련은 전혀 없다.
“미술을 좋아하는 일반 팬 정도다. 연기에는 만족이란 게 없다. 편안해지기도 어려운 일이다. 그래서 힘들고, 그래서 더 매력적이다.”
그런 신현빈에게는 남들과 다른 집요한 면도 있다. 이번 영화에서 언어 장애를 겪는 상황을 현실적으로 표현하기 위해 관련 의학서적들을 탐독했다. 그렇게 자신의 역할에 적합한 증상을 찾아내고, 비슷한 장애를 가진 이들이 구사할 만한 발음까지 고안해냈다. 전체 출연 분량의 절반 이상을 말로 하는 대사가 아닌 의성어로 표현해야 했지만 연기에 집중할 수 있던 것도 그런 집요한 ‘설계의 과정’으로 가능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