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 공사 베베르 ‘한국 보고서’서 드러나
고종(왼쪽)과 황태자 순종이 나란히 서 있는 사진으로 촬영 장소와 시기는 밝혀지지 않았다. 김영수 동북아역사재단 연구위원 제공
김영수 동북아역사재단 연구위원은 31일 서울대에서 열리는 전국역사학대회에서 발표할 예정인 논문 ‘주한 러시아 공사 베베르 자료로 본 한러 관계와 을미사변’에서 1903년 카를 베베르 러시아 특명전권공사가 본국에 보고한 ‘1898년 전후 한국에 대한 보고서’를 분석했다.
베베르 공사가 고종의 궁궐 수비대 파견 요청을 러시아에 알린 전문. 김영수 동북아역사재단 연구위원 제공
이 자료에 따르면 고종의 처지는 말이 아니었다. 베베르 공사의 1903년 보고서는 아관파천 당시 ‘일본 보초가 궁궐에서도 국왕(고종)을 포로처럼 감시했다’고 전한다. 김 연구위원은 고종의 궁궐 수비병 지원 요청에 대해 “고종이 신변 불안을 러시아의 군사 지원을 통해 타개하려 했던 것”이라고 말했다. 러시아가 바로 궁궐 수비병을 파견하지는 않았지만 이는 이듬해 2월 고종이 정동의 러시아 공사관으로 피신하는 아관파천으로 이어진다.
베베르 보고서에는 아관파천 초기 민심을 알 수 있는 부분도 나온다. 보고서는 ‘아관파천 아침 대격변이 일어났다. 수많은 고관대작과 수천 명의 한국인이 러시아 공사관 구역 안으로 밀려들어왔다’고 전했다. 또 러시아 공사관이 있던 정동 길은 ‘군주에게 축하를 드리고자 찾아온 환호하는 백성, 군대, 경찰로 가득 찼다. 이것은 백성의 축제였다’고 묘사했다. 당황한 일본은 성난 군중으로부터 일본인들을 방어하기 위해 주둔군을 서울 남쪽으로 물렸다. 을미의병이 일어나던 당시 민중들의 반일 감정이 어느 정도였는지 짐작할 수 있는 대목이다.
조종엽 기자 jjj@donga.com